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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찾을 것과 버릴 것
2020-09-27

골로새서 3장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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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위의 것을 찾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위의 것을 찾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전 단락도 ‘그러므로’로 시작했고, 1절에서 4절까지의 소단락이 끝나고 5절이 시작될 때도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통해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선명하게 대조된다.


‘위의 것과 땅의 것’, ‘옛 생명과 새 생명’, ‘옛 사람과 새 사람’과 같이 반복되는 선명한 비교를 통해 우리가 찾고, 생각하고, 입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 우리는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위의 것을 찾으라!”는 말은 결국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추구하라는 말이다(1절). 여기서 ‘찾으라’(ζητεῖτε, 제태이테)는 말은 광범위한 의미가 있다. 문맥상 목적이나 방향감각에 대한 추구를 의미할 수 있다. 즉, 온 종일 종교 생활에 심취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삶의 원리를 위에서 찾으라는 말이다.


이미 십자가에 못 박은 내 생명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새로운 생명에 집중하라는 말이다(3절).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된 자아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내라는 말이다.


‘찾으라!’, ‘생각하라!’는 현재 명령형으로 쓰여,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의지를 가지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거짓 교사들이 땅의 것을 찾는 활동을 하는 것과 대등하게 위의 것을 찾는 사람도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땅의 것을 찾는 자들이 자신의 자격을 스스로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 위의 것을 찾는 자들의 노력이란 그 은혜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은혜로 마치고자 하는 노력이다.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다.”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말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의 전적인 은혜로 시작된 구원을 끝까지 은혜의 선물로 여기는 삶을 지속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새 사람의 생활이 가능해진다.


옛 사람을 벗어야


옛 사람을 벗는 것은 새 사람을 입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다.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은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땅에 있는 지체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죽인다. 그러나 골로새 교회에는 아마 위의 것을 찾아야 할 성도들이 땅의 지체에 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


서로 싸우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아직도 우리는 이런 교회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살던 옛 사람의 모습이다(7절).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벗어 던져야 한다.


옛 사람을 벗는 것은 새 사람을 입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다. 새 사람을 입었지만 옛 사람을 벗어야 하는 새로운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의 접근이 오히려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 당하는 이유다. 새 사람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옛 사람을 벗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찾고 새롭게 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면 결코 옛 사람을 벗을 수 없다.


새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무엇인가? 그들에게는 차별이 없다(11절). 왜 그런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생각해 보라. 먼저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이나 늦게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삯을 받았다. 먼저 와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나중에 와서 덜 일한 사람과 비교하며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옆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정작 주인과 자신이 한 약속은 유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사람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여 대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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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김성호 목사(따뜻한 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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