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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가르치고 고치고 전파하신 예수님
2021-01-21
마태복음 9장 27-38절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치유함을 받는 믿음온전한 믿음이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 두 맹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고백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로마서 말씀(롬10:17)대로 그들은 들음을 통하여 고침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두 맹인은 예수님께 고침을 구하지 아니하고 ‘불쌍히 여기실 것’을 구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두 맹인을 향하여 물으신다.“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이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믿느냐’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튜에테’의 위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어의 순서를 보면 믿느냐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테가 가장 서두에 자리를 잡는다. 따라서 이 구절에 대한 바른 순서는, “네가 믿느냐?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음을?”이 된다. 이를 통해 마태가 이 사건을 기록하며 독자에게 알리고자 했던 중심 내용이 단순히 치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유 받는 자들의 ‘믿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결국 그들의 믿음대로 두 맹인은 눈을 뜨게 되었다. 예수님은 엄중하게 그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할 것을 경고하셨다. 그러나 31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그들은 온 동네방네에 소문을 내며 사건을 알렸다.예수님께서 침묵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메시아관이 서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인간적인 욕구와 욕망을 채우는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그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오늘 나에게도 불가능함 가운데 치유를 일으키시는 주님을 향한 믿음이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가?긍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일꾼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 마태복음 9장 35절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살아가시며 이 땅에서 집중하셨던 3대 사역이 등장한다. 그 사역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는 삶을 사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역에 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다.36절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에는 긍휼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본문에서 ‘긍휼’로 번역이 된 헬라어 ‘에스플랑크니스테’는 내장, 창자를 뜻하는 ‘스플랜’이라는 단어에서 파생이 되었다. 따라서 긍휼의 뜻을 가진 에스플랑크니스테는 내장이 뒤틀리고,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동반한 감정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실 때 바로 이러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사역에 임하셨다는 뜻이다.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심은 단순히 감정에서 그치지 않은 데 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고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영육 간의 구원을 친히 행동으로 베풀어 주시고 채워 주셨다. 주님의 긍휼하심은 항상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의 긍휼히 여기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제1순위로 필요한 도움이다.이어 주님은 때가 가까움을 알리는 추수에 대해 말씀하신다. 추수할 때가 가까워 왔으니 일꾼을 보내어 추수에 동참하게 해달라는 간구를 하나님께 요청하도록 하셨다. 눈여겨 볼 점은 일꾼을 모집하는데 있어서 세상적 기준이나 자의적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능력이나 조건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일꾼의 최우선 순위가 된다. 우리 스스로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선택하심, 그리고 보내심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에 의해서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021-01-20
마태복음 9장 14-26절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다가와서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행보에 대해 질문한다. 그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가며 금식을 하는데 반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속죄일과 신년제(나팔절)에 의무적으로 금식을 했을 뿐만 아니라,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며 기도를 했다. 따라서 그들은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예수님은 혼인집 신랑에 대한 비유를 들어 그에 대한 답을 주신다.일주일간 지속되는 혼인 잔치에는 특별한 자유함이 있었다. 이 기간은 종교적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일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며 형식보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욱 집중해야 함을 은유적으로 들려주셨다.이어지는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가죽 부대를 통하여 예수님은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셨다. 이전에 그들이 전부라 여겼던 율법과 전통을 넘어서서,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본체이신 메시아가 임재하심을 전했다. 의사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 인하여 새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온전히 선포하신다.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새롭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형식과 습관, 전통에 매여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것들이 있지는 않은가?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믿음18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등장한다. 한 관리로 기록된 야이로의 딸(막5:22)이 죽은 사건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한 여인의 사건이다. 평행본문으로 등장한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야이로는 딸이 죽기 전, 긴급하게 예수님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바라는 그의 부탁에 흔쾌히 야이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셨다.이때 12년간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인이 갑자기 등장하여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 아마도 자궁 출혈로 인해 지속적으로 피가 흐르는 고통을 당했을 이 여인은 레위기에 기록된 율법상으로(레15:25-30) ‘부정한’ 여인이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 여인은 최후의 방법으로 지나가는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자 했다. 그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자신이 나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문제는 이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을 때의 일이다. 율법상 부정한 사람이 닿는 모든 것은 다 부정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율법대로 한다면 이 여인이 자신이 낫고자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예수님도 부정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부정함이 전가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결함이 여인에게 전가되었다.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의의 전가’라고 한다.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적실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정결하고 깨끗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악 가운데 거했기에 그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이 사실을 믿고 그에게 나아가는 자마다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신다. 여인은 육과 영의 구원을 동시에 맛보았다.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이동하는 도중 그의 딸이 죽게 된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야이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다.이는 “처음 나를 찾아와 딸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여전히 너에게 있느냐?”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질문이다. 두려움이 아닌 믿음을 택했던 야이로는 그의 딸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는 영광을 받았다.나 역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죄 사함을 넘어 병까지 고치시는 주님
2021-01-19
마태복음 9장 1-13절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죄 사함과 병 고침 (1-8절)예수님은 육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문제도 해결해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본 동네(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다. 이 중풍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주시기보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신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절).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하였다고 생각한다(3절).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악한 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5절).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 우리는 말씀의 문맥 속에서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것과 병을 고치는 것 모두다 가능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질문 이후 곧 바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6절). 그러자 병자는 고침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7절). 그 당시 죄를 사하는 것은 제사장도 가능하였지만 병자를 고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 그러자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무리들은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8절).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보며 ‘자기가 뭔데 감히 죄 사함을 선포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말로는 얼마든지 죄를 사한다고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죄 사함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을 병 고침을 보여주심으로 자신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으심도 여실히 드러내신 것이다.한편, 중풍병자와 그 지인들은 병 고침이 최우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중풍병자에게는 병 고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죄 사함임을 아셨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를 먼저 사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셨다.우리도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소원보다도 나의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자하신다는 응답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신 그분을 신뢰하며 기다릴 수 있는가?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해 (9-13절)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마태를 보시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다(9절). 마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10절). 그런데 세리를 비롯하여 당시 죄인으로 여겨졌던 이들과 예수님께서 같이 식사하시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는 문제로 보였다(11절).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자가 아닌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함을 말씀하시며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12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3절).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예수님으로 인해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의 문턱이 높아졌다. 예전에 어떤 유명한 작가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남루해 보이는 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교회에 갔다가 그 교회 장로님으로 보이는 분에 의해 쫓겨났고, 그 뒤로 교회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고 소외받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을 품기 위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최준영 목사(품는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수님 말씀의 권능
2021-01-18
마태복음 8장 23-34절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바다의 풍랑과 예수님의 말씀믿음이란, 풍랑 속에도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육지를 떠나 바다로 향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난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야단치시고 말씀으로 풍랑을 잠잠케 하신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26절) 라는 표현을 통해 그들의 두려움의 근원을 믿음의 문제로 분석하신다.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의지하기보다 바다를 의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들은 바다가 스스로 잠잠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했던 바다는 큰바람이 불자 오히려 위협했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다를 잠잠케 하셨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또다시 말씀으로 역사하셨다.우리의 믿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분명 우리의 육신은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바다를 의지한다. 마치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매주 예배도 드리지만 우리 마음은 일상에서 세상을 의지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과 같다.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마음은 세상에 있다. 그런 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에 예수님이 믿음의 문제로 분석하신다.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게 되면 세상 때문에 두려움에 떨게 된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한다. 오직 우리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요, 인도자가 되신다. 이 믿음이 간절할 때 풍랑이 일어도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다.지난 이틀간 묵상한 대로 병이 들어도 말씀으로 치유 받는다. 귀신이 들려도 쫓아낸다. 풍랑을 만나도 잠잠케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역사한 결과이다. 결국 믿음은 그 말씀을 내 현실에서 얼마나 신뢰하는가의 문제이다.귀신들린 사람과 예수님의 말씀믿음이란 어떤 현실에서도 오직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다. 바다의 풍랑을 잠잠케 하신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귀신을 쫓아내시는 사건으로 연결된다. 마태복음 8장에서 반복되는 이 연결구조는 나병과 중풍을 고친 후 귀신을 쫓아낸 사건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바다의 풍랑에서 다시 귀신을 쫓아 낸 사건으로 연결되며 반복된다. 이 모든 과정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영적인 맥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다.이번 사건은 이 연결구조를 마무리 짓듯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을 가장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병자와 귀신, 바다와 바람까지 일방적으로 야단을 치시며 해결하셨지만, 마지막 이 귀신과는 직접 대화를 나누신다.귀신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 앞에 엎드리고 스스로 죽기를 자처한다. 지나가던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을 구하고 결국 돼지 떼에게 들어가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서 바다에 몰살한다. 이 장면은 왜 돼지 떼인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 앞에 귀신이 얼마나 두려워하며 물러가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묵상해 왔다. 마태복음 초반에는 예수님의 생애가 공생애로 이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온다. 그 후에 5장부터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산상수훈 설교로 이어지며 말씀의 권능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8장에서는 그 말씀이 질병과 재해, 귀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온 세상을 다스리고 주관하시는 권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것이 마태복음 8장의 전체 주제이다.예수님의 말씀과 권능은 우리의 삶 가운데 말씀을 의지하는 근거가 된다. 이 내용을 정확하게 묵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왜 말씀이 중요한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말씀은 우리의 모든 현실을 주관한다. 질병도 재해도 귀신도 그 말씀 앞에 엎드릴 것이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무엇보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나는 이 말씀의 권능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
2021-01-17
마태복음 8장 14-22절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베드로 장모 열병예수님은 질병을 치료하심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신다. 본문은 2가지 핵심 요소를 묵상해야 한다. 첫째는 열병이라는 질병이다. 신약 성경에 기록된 병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었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 또한 ‘심한 열병’으로 해석되는데 그 치료법이 마술적 처방이었다. 보통 일반 의료 행위의 범주를 벗어난 치료법이었다. 예수님은 이 열병도 손을 대어 만지시고 치료하신다.여기까지 보면 앞서 묵상한 나병환자와 중풍병자의 경우처럼 병자에 대한 치료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묵상해야 한다. 바로 이 환자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베드로의 장모라는 표현은 베드로와 여성의 관계보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이 더 강조하고 있다. 이 여성은 치료 직후에 예수님을 수종 들게 된다(15절).이는 예수님의 사역에 여성이 동참하게 되는 첫 행보가 된다. 즉 질병을 치료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씀과 순종을 강조하면서 제자들과 섬기는 이들을 불러 모으신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이거나 소외되거나 기피할 만한 사람이었다.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고 사용하신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돌보시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세워 그의 나라를 향한 일꾼이 되게 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에 중요한 요소이다.우리는 질병이 치료되는 것으로 만족해 버린다. 마찬가지로 구원 받는 것으로 만족해 버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가르치시고 기도하심으로 참된 성도의 삶으로 인도하신다. 그 크신 사랑 앞에 우리는 스스로의 잘못된 만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야 한다.말씀의 중요성말씀으로 치료하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찾아오는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를 다 고치신다. 성경은 계속된 치료의 행진 속에 그 치료 방법이 결국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물론 지금도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료하신다(16절).성경은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시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말씀 사역은 구약의 이사야서에 예언된 것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친히 담당하신다는 예언의 성취와 연결된다(17절).구약의 말씀이 신약의 말씀으로 연결되는 이 영적 연결고리는 다시 지금 우리에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의 사역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우리 믿음의 방향예수님이 내게 주신 말씀에 지금 순종해야 한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다고 고백한다(19절). 당시 서기관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모의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예수님은 아주 강력한 아군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다(20절). 이후, 부친의 장사를 지내고 싶다는 제자에게 지금 당장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다.이 모든 일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다른 어떤 환경이나 기대보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 앞에 지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자신이 대단히 큰 아군이 되는 사실도, 자신이 중요한 일을 끝내고 따르겠다는 약속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내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모두 내려놓고 지금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이처럼 믿음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데 그 순종을 미루지 않아야 한다. 내 공로와 자랑, 내 신분과 자격, 내 우선순위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분이 지금 말씀하실 때 순종해야 한다. 결국 믿음은 순종이다.나는 말씀에 집중하고 있는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그 즉시 순종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2021-01-16
마태복음 8장 1-13절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나병환자와 예수님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길로 나아가면서도 우리의 아픔을 치료하셨다. 나병은 만성 전염병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나병과 같은 전염성 질병은 질병 자체로 분류되지 않았다. 그것은 부정한 것으로 생각되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모든 접촉을 끊어지게 하고 일정한 장소에서만 살도록 가두기까지 했다. 혹시라도 나병환자를 만나면 ‘부정하다’고 외치면서 저주했다.그런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2절) 라고 말했다. 치료를 위한 어떤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의 절박한 심정을 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고백을 받으시고 그를 만지고 기도하셨다. 그를 만졌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3절) 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그 크신 긍휼과 사랑을 대변해 주기에 충분하다.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세상이 포기하고 저주하는 아픔일지라도 친절히 그 손을 대어 기도하시고 치료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치료를 받은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다.이로 예수님은 제사장들에게 율법을 어긴 예수님을 고소할 명분을 스스로 주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이 치료를 기적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역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예수님은 결국 스스로 십자가 고난의 길로 걸어가고 계신다.이처럼 그분은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면서도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치료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다.중풍병자와 예수님이번에는 중풍병자를 치료하신다. 그러나 이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치료를 받았다. 이 병자는 백부장의 하인이었다. 당시 하인들은 병을 치료받기 위해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가기 힘들었다. 주인들은 병에 걸린 하인을 고치기보다 저주했고 쫓아내는 경우도 많았다.그러나 주인인 이 백부장은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가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성경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자세히 증명하고 있다. 그 백부장은 예수님께 2가지 믿음의 고백을 했다.첫째는 하인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말씀으로 치료하실 수 있다고 고백한다(8절). 이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며 그 권능이 말씀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고백한다(9절). 이는 기존에 예수님을 찾아오는 환자들과 구별되는 태도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한편으로 는 기적 자체보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원하셨다.지금 우리의 신앙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 물질과 건강, 상황과 사건, 성공과 번영에 대한 기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따르기를 원하신다. 모든 기적이 오히려 말씀과 순종으로 연결된다면 그 신앙이 곧 백부장과 같이 칭찬을 듣는 신앙이 될 것이다.예수님은 백부장을 천국에 들어갈 믿음이라 칭찬하셨다. 반대로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12절) 지옥으로 갈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영어로 ‘the subjects’라고 되어 있다. 즉 그들이 자칭 천국의 백성이라 말하고 이스라엘의 주인 노릇을 하던 자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천국의 믿음이 아니다.우리는 연약하다. 아프고 상처받고 시험에 든다. 그래서 치료와 회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말씀으로 병을 치료하고 풍랑을 잠잠케 하신 사건을 통해 기적 자체보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바른 선택
2021-01-15
마태복음 7장 13-29절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생명을 얻는 선택고통스러워도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수님의 기준은 너무 높고 엄격하다. 마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나 협착하다(τεθλιμμένη, 테쓰림메네).이 말은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서서 짓눌리는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고린도후서 4장 8절에서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고통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말과 같은 단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고통스러운 길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결국, 모든 것은 훗날에 다 드러나게 된다. 좋은 나무였는지 못된 나무였는지 시간이 지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님의 이름만 내세웠는지, 주님과의 깊은 사귐이 있었는지 마지막 날에 알게 된다. 모래 위에 집을 지었는지, 반석 위에 지었는지 심각한 환난을 겪게 되면 결국 다 드러난다.그러므로 지금 당장 쉬워 보이는 길을 선택하거나, 어려워 보이는 길을 가는 척하는 방식은 버려야 한다. 당장 아무리 편하고 안전해 보여도 결국 멸망하는 길로 가지 않아야 한다.나는 타협하지 않고, 결국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가고 있을까?예수를 따르는 선택나쁜 열매를 맺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좋은 열매를 맺는 예수님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오늘 본문이 포함된 마태복음 7장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동사는 ‘행하다(ποιέω, 포이에오)’로 총 11번이 쓰였다. 그만큼 예수님은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함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참된 믿음의 증거와 같은 역할 때문에 그런 것이다.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믿음이 중요하냐? 행함이 중요하냐?’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한 말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내쫓고 권능을 행하여도(ποιέω, 포이에오), 행함 자체가 효력을 내는 것이 아니다.참된 믿음은 믿음에 걸맞은 결과를 낸다. 그러므로 나의 행위와 열매는 나의 믿음과 기초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된다. 온통 나쁜 열매를 맺고, 위기가 오면 기초가 흔들리며, 할 수 있는 일은 위선을 떠는 일이 전부이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지 못한다면 그것보다 미련한 일은 없다.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열매를 보게 한다. 동시에 이제 예수님이 맺는 열매가 무엇인지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8장부터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한 가지다. 나쁜 열매를 맺는 삶의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좋은 열매를 맺는 예수님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성호 목사(따뜻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착각하지 마라
2021-01-14
마태복음 7장 1-12절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외식하는 자들은 남들의 티는 보면서 자신들의 들보를 보지 못한다. 오늘 본문에 “비판하지 말라”는 명령은 해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명령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명백한 죄악과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서 단호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행 5:3-4, 살후 3:14,15). 한편 상대방으로부터 비판받지 않기 위해 비판하지 않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적 윤리관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는 비판받지 않기 위해 비판하지 않거나,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비판할 때 그 비판으로 다시 비판을 받는 것은 상대방의 일을 넘어서서 일어나는 일이다. “비판을 받을 것이요”(2절)의 수동태 동사는 ‘신적 수동태 동사’로 봐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을 비판하는 우리가 그 비판으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비판하지 말라”는 명령은 외식하는 자들이 결국 자신이 비판한 그 비판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꼬집는 권면이다. 외식하는 자들은 형제의 티는 보지만,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흠잡는 습관에 젖어있고, 비판을 통해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여기서 들보(δοκὸν, 도콘)는 건축물의 큰 기둥이나 나무의 매우 큰 조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도저히 모를 수 없는 것을 모르는 외식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수사적 표현이다. 심지어 6절의 말씀은 외식하는 자들에게 너무나 치욕적인 말이다. 자신을 모르고 남들만 비판하는 그들은 막상 자신 앞에 있는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 진주가 무엇인지 모른다. 곧 개, 돼지 같은 존재이다.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잘 보지 못한다. 혹시 나는 이런 어리석음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기도가 내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도 좋다는 착각외식하는 자들은 기도하면서도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로 이어지는 현재 명령형의 동사는 하나님께 지속해서 반복적으로 요청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구하는 것을 줄 것을 약속한다.심지어 하나님은 인간들의 아버지들이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주실 준비가 되어 있고,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면 된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이 단락을 읽을 때 우리는 기도를 우리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착각할 수 있다.이 단락 또한 계속되는 청중인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자신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들의 티를 보는 그들을 향한 권면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봐야 하고, 자신을 봐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기도해야 한다. 구해야 한다. 찾아야 한다. 두드려야 한다. 자신의 코앞에 진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한다.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간절하게 요청하면 받을 수 있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기도를 이해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자신이 대접받기 원하기 때문에 남을 대접해야 한다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황금률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의 기도는 자기실현의 도구가 되고, 우리의 선행은 조건이 된다.황금률을 이해하는 방법은 그것을 율법이요, 선지자로 이해하는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가 무엇을 하는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우리를 세우면 황금률은 다르게 읽힌다.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대접하셨는데, 나는 왜 다른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고 있단 말인가!”기도는 자기실현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를 세우고 있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성호 목사(따뜻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하나님을 보는 사람
2021-01-13
마태복음 6장 16-34절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무엇을 보느냐가 결국 모든 것을 결정한다. 공식적으로 교회에서 직분을 맡게 되는 것이 유익할 때가 있다. 직분을 맡은 사람들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대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책임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보이는 사람들을 의식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면, ‘척 하는 기술’만 터득하게 되기 때문이다.유대교 지도자들은 이런 기술에 능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금식할 때에 일부러 얼굴을 흉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보여주기식 경건은 효과가 빨랐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인정과 칭찬으로 재빠르게 되돌아 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강조하며 말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이미 그들의 상을 받았다.문제는 ‘척하는 기술’이 능숙해질수록 훨씬 더 심각해진다.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눈은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눈은 중요한 기관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서 눈이 어두워지면 온몸(whole body)이 어두워진다(22,23절). 보는 것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땅을 보고, 사람을 보는 경건은 결국 자기 자신을 어둠 속으로 몰아간다.나는 하나님을 보고 있는가? 사람을 보고 있는가?가장 먼저 볼 것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찬양을 할 때 우리는 얼마나 경건한가? 그 고백 속에서만큼은 하나님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면 하나님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가 결국 ‘나’일 때가 많다. 내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우리는 어쩌면 “너희는 먼저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너 자신과 너의 생활을 돌보라 그리하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너희가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해하는지도 모른다.예수님은 우선순위에 대해 역설하신다. 그것은 사람보다 하나님이고, 땅보다 하늘이고, 나의 생활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다. 우선순위가 잘못되면 우스운 지위를 갖게 된다.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자리다.예수님은 금식을 할 때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서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을 원천봉쇄하라고 권면한다. 가장 먼저 우리가 의식해야 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하나님이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부분을 책임지고 공급하신다. 확실하게 하나님 편에 서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전쟁터가 된다.하나님인가? 돈인가? 무엇이 먼저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성호 목사(따뜻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나를 위한 움직임
2021-01-12
마태복음 6장 1-15절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나를 위한 구제드러내고 싶은 욕망으로는 사랑할 수 없다. 농구를 주제로 한 만화책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다. 농구부에 가입하고 싶으나 거절당한 빨강 머리의 주인공이 있었다. 그는 매일 밤 농구부 라커룸과 경기장을 청소했다.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혹시나 아무도 몰라줄까 염려가 되어, 자신의 빨간색 머리카락을 여기저기 일부러 떨어뜨려 놓았다. 주인공의 열심은 농구부원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주님께서는 같은 맥락으로 구제를 돌아보게 하셨다. 하나님의 공급으로 얻게 된 나의 작은 것들을 당연히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구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구제를 더 가진 내가 덜 가진 이웃을 돕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자랑을 한다. 내가 이만큼 나누었다고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미 네게 공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너의 은밀한 구제를 비워짐에서 채워짐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데서 왜곡된 구제를 하게 된다.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엘리야를 먹인 것은 까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음을 기억해야 한다.나를 위한 기도기도마저 나를 향했다. 기도란 무엇일까?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이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도하는 것을 즐겼다. 길에 서서 큰 소리로 중언부언 떠들며 기도하는 자신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즐거웠다.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로포즈 하는 사람이 있다. 만일 고백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프로포즈를 한다면, 고백을 받는 사람이 행복할까? 자신이 이 사람을 위해 얼마나 멋지게 준비했는지, 어떤 멋진 옷을 입었는지, 어떤 멋진 문장으로 고백 했는지만 신경 쓴다면, 그 고백은 고백이 아니라 자기 자랑일 것이다.기도가 그렇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이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기 위해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1:1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하셨다. 조용하게 아버지 하나님께 집중하여 고백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결국엔 이웃사랑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그 이유는 더이상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이 외식하는 기도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가르쳐 준 기도의 내용은 충격적이다.처음엔 하나님 나라를 구하도록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는 우리의 삶에 대한 기도를 하도록 하셨다. 우리의 삶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회복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웃을 용서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우리에게 이웃을 위해 살아가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 그리고 이웃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핵심적인 진리이다.그렇다면 나에게 관심이 없으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웃이 되기 때문이다. 서로 용서하게 될 때, 이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그것을 믿는다면 지금 가서 이웃을 용서하라.나의 신앙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조병옥 목사(움직이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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