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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터치 & 큐티

와플 QT_아름다운 결말을 알고 있기에
2021-06-24

느헤미야 13장 16-31절

폐허가 되어버린 예루살렘의 처참함을 전해 들은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통해 성벽을 재건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거룩함을 요구하는 외침을 합니다. “하나님 이 모든 것을 그리고 저를 기억하소서.” 신앙인의 삶과 외침은 세상의 방향과 부딪히는 일이 많습니다. 어려운 상황 앞에 용기가 필요한 순간들이 계속해서 찾아오게 됩니다. 용기를 잃지 마세요. 느헤미야의 기도를 하세요. “하나님 저를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16. 나는 또 예루살렘에 사는 두로 사람들이 물고기와 그 밖의 다른 상품을 가져와 안식일에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팔고 있는 것을 보고
17. 유다 지도자들을 불러 책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째서 이런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더럽히고 있소?
18. 여러분의 조상들이 이런 짓을 했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 성에 이 모든 재앙을 내리신 것이 아니오? 그런데도 여러분은 지금 안식일을 범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더 많은 분노를 사게 하고 있소.’
19. 그리고서 나는 안식일이 시작되는 전날 저녁부터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성문을 열지 말라고 명령하고 성문마다 내 종들을 배치하여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20. 그러나 각종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밤을 보내므로
21. 나는 그들에게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하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들은 안식일에 오지 않았다.
22. 그리고 나는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때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이 일에도 나를 기억하시고 주의 크신 사랑을 따라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23. 그리고 나는 이 당시에 유다 사람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과 결혼하여
24. 그 자녀들의 태반이 아스돗 말과 그 밖의 다른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5. 그래서 나는 그 부모들을 책망하며 저주하고 몇 사람을 때리며 그 머리털을 뽑고 다시는 그들의 자녀들을 이방 사람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한 다음
26.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 솔로몬왕도 이런 일로 범죄하지 않았느냐?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그와 비길 만한 왕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셨으나 그는 이 이방 여자들 때문에 범죄하고 말았다.
27. 그런데 너희가 이방 여자들과 결혼하여 악을 행하고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느냐?’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이며 요야다의 아들 중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나는 그를 예루살렘에서 떠나게 하였다.
29. 그때 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저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 대한 규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소행을 기억하소서.
30. 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이방 사람들의 모든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 하여 그들의 직무를 맡아 수행하게 하고
31. 또 정한 때에 제물을 태울 나무와 첫 열매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이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어쩌면 느헤미야는 직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앞으로도 수없이 무너져 내릴 것을. 남은 평생 지난한 싸움을 반복하고 자신의 생을 갈아내어도 아무런 열매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마지막 장인 13장에서 느헤미야는 ‘저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기도만 세 번을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기억해 달라는 말을 할까 생각해 봅니다. 온 힘 다해 달려왔는데 나는 그저 바위에 내던져진 깨진 달걀에 불과했음을 알아차렸을 때, 옳다 여기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에도 아무런 성과도 열매도 보이지 않을 때, 결국 나의 애씀도 나의 존재도 하릴없이 잊혀질 거라 여겨질 때가 아닐까요. 나를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며 느헤미야는 많이 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루살렘의 재건을 포기했다면 느헤미야는 왕궁의 술 시중으로 안락하게 살았겠지요. 일부러 고생길을 자처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처참한 상황을 알게 된 후 밤낮으로 울며 기도한 느헤미야. 그의 마음에 애통과 긍휼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이 시대의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고 ‘정의와 공의’를 버리고 ‘사랑’을 포기한다면 삶은 꽤나 쉬워질 거예요. 하지만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이들이 어찌 나만 위해 살 수 있을까요. 무너져내리는 이 세상을, 부서져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며 어찌 울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린 하나님을 쏙 빼닮은 그의 아들이고 딸인데 말이죠.


평탄한 길을 버리고 굳이 끝없이 이어진 험한 산길을 택한 우리는 앞으로 느헤미야의 기도를 수없이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 것이 회복되고야 마는 눈부시게 빛나는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요. 13장 31절 시점의 느헤미야는 알 수 없었을.


2021년 6월 24일, 오늘의 시점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니 무너지지 말기로 해요. 한 번 더 일어나 선한 싸움을 해나가기로 해요. 분명 우리의 결말도 눈부시게 아름다울 테니까요.




작성자 : 고요(작가)

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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