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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터치 & 큐티

조심조심

7월 4일 와플 QT_민수기 2장 1-34절

2022-07-04

민수기 2장 1-34절

2백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이동하고 숙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장에서 주신 구체적인 지침은 이스라엘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막은 그 중앙에 자리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도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있나요?
1-2 여호와께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막 주위에 각 지파별로 기를 중심하여 진을 쳐라. 3-4 성막 동쪽에 진을 칠 세 지파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이끄는 74,600명의 병력을 가진 유다 지파, 5-6 그 옆에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이끄는 54,400명의 병력을 가진 잇사갈 지파, 7-8 그 옆에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이끄는 57,400명의 병력을 가진 스불론 지파이다. 9 이와 같이 유다 진영에 진을 칠 전체 병력은 186,400명이다. 이들이 선두에서 행군하게 하라. 10-11 “성막 남쪽에 진을 칠 세 지파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이끄는 46,500명의 병력을 가진 르우벤 지파, 12-13 그 옆에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이끄는 59,300명의 병력을 가진 시므온 지파, 14-15 그 옆에는 르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이끄는 45,650명의 병력을 가진 갓 지파이다. 16 이와 같이 르우벤 진영에 진을 칠 전체 병력은 151,450명이다. 이들이 두 번째로 행군하게 하라. 17 “그 다음에는 레위 지파가 성막을 가지고 행렬 중앙에서 행군하게 하라. 그리고 행군할 때에는 진을 치는 순서대로 각 지파가 기를 앞세우고 자기 위치에서 행군해야 한다. 18-19 “성막 서쪽에 진을 칠 세 지파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이끄는 40,500명의 병력을 가진 에브라임 지파, 20-21 그 옆에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 이끄는 32,200명의 병력을 가진 므낫세 지파, 22-23 그 옆에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이끄는 35,400명의 병력을 가진 베냐민 지파이다. 24 이와 같이 에브라임 진영에 진을 칠 전체 병력은 108,100명이다. 이들이 세 번째로 행군하게 하라. 25-26 “그리고 성막 북쪽에 진을 칠 세 지파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이끄는 62,700명의 병력을 가진 단 지파, 27-28 그 옆에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이끄는 41,500명의 병력을 가진 아셀 지파, 29-30 그 옆에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이끄는 53,400명의 병력을 가진 납달리 지파이다. 31 이와 같이 단 진영에 진을 칠 전체 병력은 157,600명이다. 이들이 제일 뒤에서 행군하게 하라.” 32 이상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징집 명단에 등록된 전체 인원은 603,550명이었다. 33 그러나 여기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레위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34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각 지파별로 기를 앞세우고 진을 치기도 하고 행군하기도 하였다

“회막을 중심으로 자기 가문의 깃발 아래 정렬하라.” 다들 얼굴만 쳐다보았다. “너희는 여기, 거기 너희들은 저쪽… 다른 너희들 은 이쪽이다.” “저희는 어떻게 됩니까?” “너희 레위 가문은 열외다.” 지리하고 고단한 마음이었지만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정비했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방의 한 노인과 아이가 언덕에 올라 멀리 광야에 이는 뿌연 먼지구름을 바라보고 있다. 그 노인은 그것이 마치 광야의 구름 기둥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후로 그 먼지바람은 피바람으로 바뀌리라는 것을 말이다.


가만히 앉아 묻는다. 이제부터 시작될 이방인 말살의 명령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건지 아니면 광야 생활에 지쳐 독기를 품은 사람들에게서 왔는지, 누군가 주장하는 바대로 살상의 전쟁이 아닌 영적 싸움을 의미하는지… 물음 위에 얹혀진 돌덩이의 무게가 느껴진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빛으로 산다고 말하며 주변을 불사르듯 하는 건 아닐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주변을 이롭게 하기는커녕 해로움을 더하는 건 아닌가? 하며 말이다.


예수님은 죄와 원수를 향해 폭력이 아닌 용서와 생명을 말씀하셨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셨다. 죄사함과 구원이라는 귀결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오역[誤譯]하는 기득권에 대항하신 결과이기도 하다.


때로 성도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변인으로서 있는 듯 없는 듯 걸음 하며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을 향해 조심조심 걸음 하며 그분을 헤아리고자 한다.




작성자 : 나무엔(싱어송라이터)

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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