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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닉

# 악플_분노로 반응하는 문제

폴 트립의 복음적 SNS 클리닉: 반응성 2

#meantweets - Our Problem with Anger (Reactivity Episod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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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Paul Tripp /  작성일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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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제가 소셜 미디어에서 팔로우하는 사람 50 명 정도 경건한 목소리와 지혜로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는데요. 저는 그들의 목소리에 매우 감사하며 통찰력과 격려를 얻으며 죄를 깨닫곤 합니다. 그들의 게시 글에서 말입니다. 최근에 제가 매우 존경하는 한 분이 어떤 게시 글을 올렸는데요. 첫 번째 댓글이 "인마 입 닥쳐 입 닥쳐"였습니다. 저와 함께 한 번 생각해봅시다. 그것은 숙고한 생각이 아닙니다. 주의 깊게 가다듬어서 다음의 대화로 이어 나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감정적인 반응에 불과합니다. 총 쏘며 스쳐 지나가는 듯한 반응입니다. '나는 네가 말한 것이 싫으니 한 방 쏘고 지나간다'는 식입니다. 

이것이 설명하는 것은 요즘의 해롭게 반응하는 문화의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성향입니다. 정말이지 이 말은 꼭 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감정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감정적으로 풍성한 삶의 모습을 그립니다. 감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매우 주의할 것은 여러분의 삶이 그 순간의 감정에 의해 즉흥적으로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것은 정말로 해롭게 반응하는 문화입니다. 그 순간의 감정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나를 반응하게 몰고가서 돌이켜보지 않고 주의 깊게 숙고하지 않고 내가 반응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이런 문화를 몰고가는 주된 반응 두 가지는 두려움의 문화와 분노의 문화입니다. 이렇다면 두려울 겁니다. 내 주변 삶은 통제 불능이어서 내가 뭔가를 해야 하고 내가 응답해야 하며 내가 반응해야 한다면 말입니다. 

또한 이런 것도 두려울 겁니다. 내가 진지하게 대우받지 못하니 내가 뛰어들어서 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거나 내 동료들이 나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이 통제되고 있다고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통제 아래 있지는 않을지라도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가 좋아하거나 이해하지는 못해도 누군가 계셔서 나를 돌보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그분의 세상을 돌보시되 내가 하는 것보다 더 깊고 온전히 하신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그분의 임재와 능력을 의지할 때 여러분은 긴장을 풀고 사려 깊게 보다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대화에 임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과 분노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있을 때는 늘 내가 상대방을 원수로 보고 그가 나를 두렵게 한다고 생각해서 일종의 전쟁을 하는 식으로 그에게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편이 아니고 같은 것을 원하지 않으며 상대방은 내 생각이나 내 존재에 대해 대적하는 원수이므로 그에게 분노로 대응하는 겁니다. 소셜 미디어가 이런 두려움의 독성과 분노의 독성을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비인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대방의 옆에 서 있지 않고 그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으며 그의 어조를 듣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젊은 목사일 때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저보다 나이가 있으신 그분이 제가 화난 것을 아시고 자기 의자에서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습니다. ‘폴, 나를 보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서는 그런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거기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인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비인격적인 인간 관계 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그 방식을 인격적인 관계 속으로 가져 가는 겁니다. 당신이 직접 인격적으로 할 수 있는데, 더 나은 방식으로 관계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두려움은 상대방을 원수로 보는 분노를 낳고 그것은 존중일 수 없습니다. 존중하지 않게 되기가 쉽습니다. ‘나는 너를 쓰러뜨릴 거야 나는 너를 넘어뜨릴 거야. 그 생각이 내 목표가 아니라 네가 내 목표야’라는 식이죠.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모든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너무나 다릅니다. 

들어보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창조주시라면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데 사람들이 그분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데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존귀함이 있고 모든 사람은 존귀함과 존중함으로 대우받아야 합니다. 설령 우리 생각이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도 설령 근본적으로 불일치하더라도 상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여기고 그를 모욕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 무례함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바로 소셜 미디어에 있는데 그것은 그저 조롱하는 문화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마 입 닥쳐"라고 말한다면 그건 조롱입니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난 네게 주목할 필요가 없어.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하는 것이며 그것은 조롱하는 것이고 심한 인신 공격입니다. 상처를 주려는 겁니다. 도와주려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대화로 초대하는 게 아닙니다. 한 대 때리는 겁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가 이런 해롭게 반응하는 문화 속에서 다르게 살도록 도우시는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마지막에서 성령의 열매라고 불리는 인격적인 덕목의 목록이 나옵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절제이죠. 이것은 여러분과 제가 달성해야 하는 도덕적 목표로서 제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자신을 이런 종류의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셔서 이것들이 제 잠재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선, 절제가 하나님의 자녀인 저의 잠재력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제가 그 잠재력에 도달하겠습니까? 제가 아직 거기에 이르지 않았는데 말이죠. 

우리 주께서 하신 두 번째 일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성령께서 말 그대로 우리 마음을 여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그 잠재력에 맞게 살 능력을 가지게 하십니다. 그것이 매우 격려가 되고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아침에 일어나게 됩니다. 저는 제 잠재력을 압니다. 그리고 그 신분으로 살도록 제게 주어진 능력을 압니다. 이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감정이 들끓는 순간에 그것이 두려움이나 분노이거나 존중함 없이 조롱하며 반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 여러분이 능력이 있어  ‘안 돼!’라고 말하며 돌이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지금 성령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는 거지만 자신을 살펴보는 질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며 답변해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잠재력으로 살고 있습니까? 그러한 성품들 곧 성령의 열매를 여러분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까? 그렇게 살도록 성령의 능력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까? 소셜 미디어와 여러분의 일상의 관계 양쪽에서 말입니다. 아니면 해롭게 반응하는 문화가 이끄는 대로 끌려갑니까? 

다음 주에 우리가 이야기할 것은 자기 중심의 문화와 자기 의에 대한 겁니다. 저는 그것이 매우 도움이 되는 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가 없다면 저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희가 저희 자신에게 맡겨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무나 감사하옵는 것은 주님 안에서 저희에게 단지 새로운 잠재력만 아니라 새로운 능력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딱 저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저희가 주님의 자녀로서 지녀야 할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며 주께서 저희에게 그 방향으로 나아갈 능력을 주셨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옵소서. 주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스피커 Paul Tripp

폴 트립은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The Center for Pastoral Life and Care와 Paul Tripp Ministries의 대표로 목사, 작가, 국제 컨퍼런스 강사로 활동 중이다.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Instruments in the Redeemer’s Hands)와 ‘눈보다 더 희게’(Whiter Than Snow)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