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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닉

# 네가 틀렸어_자기 의에 빠져 있는 문제

폴 트립의 복음적 SNS 클리닉: 반응성 3

#yourewrong - Our Problem with Self-Righteousness (Reactivity Episod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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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Paul Tripp /  작성일 2023-07-20

본문

소셜 미디어 문화의 한 단면이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에 들어와 이러한 해로운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기중심성입니다. 관계를 나 중심으로 하는 겁니다. 이것이 생성하는 것은 이의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의견이 항상 옳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것을 항상 보게 되는데요. 누군가가 정당하게 어떤 사람이 게시하거나 말한 것을 성찰해 보게 하면 즉각 분노로 반응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성찰의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아마 내가 틀렸을 거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세상의 중심에 있고 그들이 중요하며 그들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고 그들의 의견이 언제나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 의의 한 측면인데 그런 식으로는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내가 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이기주의에 대한 치료법이 있다면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오신 이유는, 이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안의 이러한 모습을 치료하시고 나를 나로부터 구해 내려 하신 것이며 그 치료법은 겸손의 은혜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한 가지만 생각해보십시오. 내 속에 여전히 죄가 있고 죄는 눈이 멀게 하는데 그럼 첫 번째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 자신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보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다음처럼 말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시각은 부정확하기 때문이며 죄의 기만성 때문입니다. 또한 다음처럼 말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가진 모든 의견이 올바를 것이고 내가 게시하는 모든 것이 최선이며 최고이다’고 해도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내 삶의 모든 것이 내 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죄에 의해 어떻게든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교정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도전을 받아야 하고 질책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로 여러분이 누구이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시인하게 하실 때만 여러분은 이런 것들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문제는 여러분이 화를 낼수록 더 당당할수록 더 반응적일수록 더 많은 ‘좋아요’를 얻고 더 많은 조회수를 얻고 더 많은 관심을 얻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것 때문에 보상받아서는 안 됩니다. 분노하기 때문에 보상받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아는 듯이 행동하며 상대방이 나를 바로잡아주려 하는데 내가 그걸 조롱함으로도 보상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행동은 사랑으로 도전 받고 은혜로 교정 받아야 하지만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에 분노로 반응하는 것이 보상을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의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의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죄와  약점과 실패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자기의 죄와 약점과 실패보다도요. 그래서 이기주의의 결합 곧 자기 중심이 자기 의와 결합하여 다음처럼 생각하는 특이한 위험을 생성합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는 자이다. 나는 도덕적으로 올바르다. 나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상대방은 그 도덕적 표준에 이르지 못했으니 나는 그를 비판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죠. 하지만 자기 의는 다음처럼 말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와 당신은 똑 같은 존재이며 당신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같은 은혜를 당신에게 주고 싶다’고 말입니다. 

겸손해야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의는 그렇게 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복음은 자기중심성과 자기 의와 싸우고 있는 우리를 대면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것이죠. 첫째로, 복음은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그 동기가 자기 영광에 있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에서 무대 중앙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고 모든 것이 그분께로 향한다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은 위험하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이 또한 자기 의에 대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건 우리에겐 우리 자신의 독립적인 의가 없다는 겁니다. 

폴 트립이 가지고 있는 의는 나의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의인데 이제 내게로 돌려진 거라는 말입니다. 나는 독립적으로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관계의 중심에 결코 내가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주제는 복음 전반에 나타나 있습니다. 자기 영광의 위험과 자기 의의 위험이요. 자기 영광의 파괴적인 본성과 자기 의의 파괴적인 본성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은 이기적이고 자기 의 가운데 있는 우리를 만나주시고 정죄하지 않으시며 오직 용서하시며 힘을 실어주는 도움을 주십니다. 

겸손의 의미는 내가 상대방과 논쟁거리가 있을 때 내가 나를 관철시키는 게 아닙니다. 나의 완전한 견해를 관철시켜서 내 능력과 내 권위를 세우는 게 아닙니다. 내가 거기 있는 건 상대방과 대화하고 바라기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거지만 주고받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에서 받은 명령은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할 때에 은혜를 베풀지 않는 방식으로는 결코 말하지 말고 듣는 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겸손은 나를 중심에 두지 않고 우리가 서로 필요하며 이 대화는 하나님께서 참여하심으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그 중심에 두고 있나요? 모든 것을 전부 여러분에게 관련 있게 만드나요? 자기 의에 대해서 성찰해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 자신의 것보다 다른 이들의 죄와 약점과 실패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까? 이것을 성찰하는 동안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 안에 계시니 감사합니다. 주께서 인내와 은혜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구해내시고 우리를 해롭고 파괴적인 본능에서 구해내시고 주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참된 잠재력으로 살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스피커 Paul Tripp

폴 트립은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The Center for Pastoral Life and Care와 Paul Tripp Ministries의 대표로 목사, 작가, 국제 컨퍼런스 강사로 활동 중이다.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Instruments in the Redeemer’s Hands)와 ‘눈보다 더 희게’(Whiter Than Snow)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