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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닉

#덤벼: 논쟁하려고 안달하는 문제

폴 트립의 복음적 SNS 클리닉: 반응성 5

#fightme - Our Problem with Craving Controversy (Reactivity Episod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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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Paul Tripp /  작성일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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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역동 중 하나는 저는 그것을 ‘연쇄 역동’이라 부르는데요. 뭔가 논란 거리가 생겨서 어떤 사람이 논란이 되는 일을 하거나 논란이 되는 것을 설정했을 때 마치 벌들이 꿀 주위로 몰려드는 것처럼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그저 흥분해서 뛰어들어 이 논쟁에 참여합니다. 그런 일이 말 그대로 소셜 미디어에서 날마다 일어납니다. 흔히 대중에 회자되는 것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에 있는 이러한 논쟁 문화가 우리의 다른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진리 사랑과 논쟁 사랑 간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쁨과 옳은 것을 찾고 참된 것을 증진시키는 일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것과 그저 논쟁을 사랑하고 전투를 사랑하며 전쟁을 사랑하고 논쟁에 들어가 추잡해지는 걸 좋아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것은 매우 다른 것입니다. 만약 진리 같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실제로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진리의 저자시라면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신데요. 말씀이 참되다면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데요. 그러면 저는 저 자신도 진실되게 살기를 바라고 상대방에게도 당연히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진리에서 떠나 방황하고 있다면 제가 염려하는 건 당연합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 염려의 동기는 진리 사랑과 사람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문자 그대로 두 큰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진리를 사랑하는 거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진리 가운데 살기를 원하는 겁니다.
논쟁 사랑은 그 동기가 참된 계명 즉 두 큰 계명에 있지 않습니다. 논쟁 사랑엔 하나님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그 현장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분명히 내가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그 논쟁의 순간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논쟁 속에서 내가 말하는 것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것은 사냥과 같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내 반응 능력이 무기가 되어서 먹잇감을 사냥하고 있는 겁니다. 상대방은 내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나 내가 존중하고 내가 존경하고 내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언쟁 무기를 발사할 기회를 준 사람인 겁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쏘고 나면 12명이 쏩니다. 그러고 나면 50명이 쏩니다. 갑자기 전쟁과 같이 됩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소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이런 걸 보았는데요. 제가 지도하는 젊은 목사들과 관계하면서 알게 된 거죠. 그것은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논쟁 거리를 찾는다는 겁니다. 그건 그들이 설교를 정치적으로 들을 수 있거나 들으면서 신학적 논쟁 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설교를 들으며 오히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건 ‘이 건 내 삶에 필요한 진리이네. 하나님 말씀으로 문제를 직면하고 격려받고 자극받아야 하니 내가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하겠는 걸’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논쟁 거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죠. 그래서 목회자들이 그들의 설교 내용 중 일부에 대해서 반응을 받는 겁니다 .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은 그 설교의 전체 주제를 놓치는 것이고 설교 전반에 걸쳐 전하고 있는 의미를 놓치는 겁니다. 그들이 뛰어들기 원하는 대상은 오직 그들이 발견한 그 논쟁 거리일 뿐입니다. 그것이 사냥꾼으로서 예배에 참석하여 먹잇감을 찾아 총을 쏘는 것이며 때로는 설교 도중에도 그렇게 합니다.
논쟁에 관한 대화에서 설명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진실한 것이 있고 거짓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짓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가 제시하는 거짓말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것이고 말씀에서 떠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알았다고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우리 마음이 상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슬퍼해야 하고 울며 탄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상한 마음으로 대응한 것이면 그것은 사랑이며 인내이고 온유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구출과 방향 전환과 진리의 도구가 되길 원하는 겁니다. 진리를 발견한 순간을 결코 기뻐하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진리에 대한 사랑은 결코 여러분을 그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진리를 사랑한다면 거짓이 부추기는 논쟁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논쟁에 대한 대응 방법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삶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위협받으셨을 때 이렇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우리가 그 모범을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것이 있는데 예수께서 지상 사역 후에 이 땅을 떠나시려고 할 때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대응 방법은 진리를 외면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하며 동시에 하나됨을 증진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옹호하면서 하나됨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둘을 동시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이 논쟁에 끌려서 반응하기를 원하는 것을 보거든 이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으로 인한 반응인가?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한 반응인가?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도움이 되도록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논쟁에 대한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인가?’ 제 생각에 이런 질문이 매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음 질문을 드리고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소셜 미디어에서든지 직접적인 관계에서든지 여러분이 논쟁 사랑과 진리 사랑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우리가 고백합니다. 때로 우리는 정말로 잘못 이해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을 사냥하기 좋아하는 것, 저격하는 걸 좋아하는 것, 치명타 치기 좋아하는 것과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연쇄 역동에 참여하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강력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오니 주께서 우리를 도우사 우리가 주님께 대한 겸손한 사랑과 주님의 사람들에 대한 겸손한 사랑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스피커 Paul Tripp

폴 트립은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The Center for Pastoral Life and Care와 Paul Tripp Ministries의 대표로 목사, 작가, 국제 컨퍼런스 강사로 활동 중이다.  ‘치유와 회복의 동반자’(Instruments in the Redeemer’s Hands)와 ‘눈보다 더 희게’(Whiter Than Snow)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