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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순종과 따름의 과정으로 존재하는 교회
by 정갑신2023-02-19

교회에는 ‘좋은 교회’가 되려는 몸부림보다는 ‘교회’가 되려는 순종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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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동산교회에서 사역하던 때였다. 언제부턴가 여기저기서 ‘셀’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인쇄물들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청년부 담당 목사가 셀 목회를 청년 사역에 접목하여 성공적인 사역을 펼쳤고, 담임 목사님은 그것을 전 교회에 적용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그에 따라 일부 목회자들이 먼저 셀 목회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전임 목사 전원이 셀 목회 탐방을 위해 인도네시아까지 단체 출장을 떠났다. 교회의 과감한 지원 덕분이었다.


교역자들은 회의를 수없이 반복하며 셀 목회 양육 프로그램의 초기 그림을 완성하였다. 교회는 이 미완의 틀을 과감하게 수용하였다. 이 큰 모험의 근본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이 모험에 대한 마음 깊은 동의 여부가 어떠했든, 그 과정에서 교회의 교회 됨을 향한 몸부림에 참여하는 절호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셀 목회의 핵심에서 선명한 ‘그리스도 중심성’이라는 선언이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거기에 붙은 결정적인 부제가 ‘관리조직으로서의 소그룹 공동체’가 아니라 ‘이미 충분하고 완전한 교회로서의 소그룹’ 공동체라니! 그 공동체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니! 이 명백하고 단순한 진리, 누구나 다 알 만하고 또 알고 있었을 진리가 이토록 새롭게 내 영혼에 들어올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것은 이후 내 마음에 형성되기 시작한 ‘교회의 얼굴’을 위한 결정적인 밑그림이 되었다. 교회는 더 이상 조직과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는, 성장을 욕망하는 공동체가 아닌 것이 분명해졌다.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는 생명적 연합을 통해 예수께서 정하시고 끌어가시는 방식과 분량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라가는 살아있는 유기적 본질로 작동한다. 그 신학적 진술은 얼마든지 현실 안에서 물리적 형태로 나타나는 사건일 수 있었다.

 

교회에는 ‘좋은 교회’가 되려는 몸부림보다는 ‘교회’가 되려는 순종이 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과 세상의 시선을 살피는 선포와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을 따라 강건하게 대답하는 ‘따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이 가슴에 들어왔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정형화된 형태로 드러난 어떤 건물과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사건에 대답하는 ‘과정’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에 가깝다. 끝없는 대답의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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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신, 대답하는 공동체(아르카)에서 간추린 글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세상의 시선을 살피는 선포와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을 따라 강건하게 대답하는 ‘따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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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갑신

정갑신 목사는 예수향남교회의 담임목사로 총신대 신학과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원,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009년 8월 예수향남교회를 개척한 후 예수향남기독학교 이사장직을 겸하고 있으며, (사)복음과도시 이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대답하는 공동체’, ‘사람을 사람으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