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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와 초기 한국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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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옥성득  /  작성일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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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te Hermitage Museum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여집사 뵈뵈(Phoebe)는 ‘첫 방문 간호사’였다. 초대교회는 여집사들의 간호 활동으로 흑사병이 유행할 때 환자들을 돌봄으로써 사랑의 공동체로 각인되어 성장했다. 중세에는 수도원의 수녀들이 병자들을 돌보며 간호사 역할을 했다. 루터를 비롯한 개신교의 종교 개혁자들은 수녀원을 폐쇄하고 수녀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어 주부가 되도록 했다. 그 결과 독일 등 개신교 지역에서는 숙련된 간호 수녀들이 사라지면서 간호 체계에 상당한 차질이 생겼고 전염병이나 질병을 제대로 대처하는 병원이 부족해졌다. 칼뱅의 제네바에서 괴질이 나돌자 경험이 없는 주부들이 간호하면서 병은 더 유행했고, 상당수 여성들이 전염병을 퍼뜨리는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첫 근대적 간호사양성학교는 1836년 독일 카이저스베르트(Kaiserswerth)에서 프리드너 목사 부부가 설립한 여집사(Deaconesses) 간호단 학교였다. 이 카이저스베르트 간호사양성소는 실용 간호학과 조직적인 간호 훈련을 시작했으며, 1850-52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이곳에서 정규교육을 받았다.


영국에서는 영국 성공회와 연관하여 간호가 발전된 측면도 강했으며, 해외 의료 선교에 수녀들이 참여했다. 영국에서는 고참 간호사를 ‘sister’라고 불렀는데 수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내한한 첫 정식 간호사는 1891년에 내한한 영국 성공회 소속 성베드로수녀회의 수녀(sister)인 히스코트(Gertrude Heathcote)였다. 1904년까지 한국에서 최고의 간호는 정동의 성마태병원과 성베드로병원, 인천의 누가병원에 있던 성공회 독신 수녀 시스터 간호사들이 제공했다.


한국에서 근대 간호는 개신교 선교와 함께 시작되었고, 간호사 양성도 감리회와 장로회의 선교 병원을 통해 시작되었다. 1885년 서울에 첫 근대병원인 제중원이 개설되었을 때, 훈련된 간호사가 없어서 알렌 의사는 조선 관청에서 ‘약방 기생’으로 불리기도 했던 관기 중에서 간호를 맡았던 기생들을 고용하였으나, 그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자 해고했다. 1886년 제중원의 첫 ‘여의사’로 내한한 엘러즈(Annie Ellers)는 보스턴시립병원 간호사양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했다가 한국에 왔기 때문에 의사로 불렸다. 간호사였으나 명성황후의 시의 등 의사로 활동했다. 그녀가 벙커와 결혼하고 병원을 떠나자, 1895년 4월 제중원 첫 간호사로 노르웨이 출신 야콥슨(Anna Jacobson)이 내한하여 헌신적으로 환자를 돌보다가 1897년 1월에 질병으로 사망했다. 그녀 후임으로 1897년 10월에 제중원의 두 번째 간호사로 내한한 쉴즈(Esther Shields)는 1906년 6월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하고 1935년에 은퇴할 때까지 봉사했다.

미국 북감리회의 해외여성선교회는 한국 선교를 위해 1887년 첫 여의사 하워드(Meta Howard)를 파송했다. 그녀는 1888년 한국의 첫 여성 병원인 보구여관을 설립했다. 그녀를 이어서 셔우드(Rosetta Sherwood), 커틀러(Mary Cutler), 해리스(Lillian Harris) 여의사가 내한했다. 병원의 첫 간호사는 1903년에 내한한 캐나다 출신의 에드먼즈(Margaret Edmunds)였다. 그녀는 1903년 12월 보구여관 안에 한국의 첫 간호원양성학교를 설립하고 1906년 1월에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에게 간호사 모자를 씌어주었다. 마침내 1908년 11월 5일 제1회 졸업식에서 김마르다와 이그레이스를 한국인 최초의 졸업 간호사로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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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년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 첫 예모식, 김엘렌, 이그레이스, 에드먼즈(중앙), 김마르다, 정와티 ⓒ옥성득


선교사 간호사들은 1908년 3월 20일 ‘대한졸업간호원회’를 조직했고,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와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양성학교의 간호사들은 1910년 6월 10일 ‘간호원회’를 조직했다. 이들이 발전하여 1923년 조선간호부회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1907년 군대 해산 때 부상을 입은 대한제국 병사들을 나이팅게일 외과 간호학으로 돌보았다. 1919년에도 삼일 운동으로 다친 수많은 부상자들을 간호했으며, 그 비참한 모습을 본 일부 간호사들은 시위에 참여하여 형무소에서 몇 달을 보내며, 기도하고 찬송했다. 이후 간호사 중에는 애국부인회 등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거나 중국과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몰래 돕는 자들이 많았다.


1905년 통감부가 설치되고 1906년 서울에 대한의원이 일본인 의사와 간호사들에 의해 운영되면서 일본 간호사와 일본 간호학이 한국에 진출했다. 총독부의원과 지방의 자혜의원에 근무한 간호사는 거의 일본인이었다. 의사가 일본인이었고 환자도 일본인과 일본인 관리가 우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초반까지 도립 자혜병원에서 한국인 간호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1905년 이후 콜레라와 천연두를 비롯한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경찰이 한국인의 이동을 통제하고 방역과 격리를 담당했다. 한국인은 식민지의 피지배자요 병자로서 시찰 대상이었으며, 그 몸은 평시에는 생산의 도구요, 전시에는 총알받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병에 걸리면 정부 병원 대신 한국인 의생(한의사)이나 개인 병원을 찾았고, 중병이면 대개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이나 동대문부인병원, 주요 도시의 선교 병원을 이용할 수 있었다. 선교 병원은 세브란스병원을 제외하면 일제의 병원들에 비해 시설이 열악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한국어를 하는 한국인 간호사들이 있었다. 한국인 기독교인 간호사들은 일제 36년 간 한국인을 돌보고 위로하며 식민지 백성의 설움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간호사는 저임금 속에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기 때문에 1920년대에는 많은 파업을 일으키며 병원 측과 협상을 하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간호사들의 헌신적 수고가 언론에 자주 소개되었다. 그들을 ‘백의의 천사’로만 이미지 메이킹하면 곤란하다. ‘영웅’이 아닌 전문 직업인이자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다. 정당한 임금과 보수, 차별 없는 근무 조건, 복지 혜택 등이 보장될 때, 환자들은 더 나은 간호를 받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일선 의료진, 특히 간호사들이 지나친 노동으로 혹사당하기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 


최근 대한간호협회는 소록도에서 40년 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 오스트리아인 두 간호사 스퇴거(Marianne Stoger)와 피사렉(Margaritha Pissarek)을 노벨상 후보로 추천했다. 맨손으로 ‘아픈 자를 돌본’ 그들에게 노벨상이 아니라도 하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간호는 초기에는 영국, 미국, 노르웨이, 캐나다 등 여러 나라의 외국 간호사들에 의해 발전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북미와 유럽의 여러 나라 간호사들이 봉사했다.


이제 K-간호는 한국인만 아니라 세계인의 고통을 줄이며 생명을 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도로서 기독교인은 인류는 물론 지구 생태계를 치유하고 간호하는 일을 맡은 집사요 청지기들이다. 초기 개신교가 한국인의 건강과 위생을 위해 헌신했듯이, 팬데믹 시대에 교회는 면역력이 강한 교인,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겨레와 세계인을 구호하는 K-Church-nursing 모델을 만들어 나갈 때다. 코로나 이후 교회는 주일만의 교회가 아니요 매일의 교회며, 예배당만의 교회가 아니요 일터와 병상에서의 디아코니아 교회다. 맘몬을 섬기는 의료 제국을 위한 간호가 아니라,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선한 사역을 감당하는 간호사들을 양성할 때다.  

작가 옥성득

옥성득 교수는 서울대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거쳐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ThM),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ThD)에서 공부하고, 현재 UCLA 한국기독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성서공회사’(전 3권), ‘첫 사건으로 본 초대 한국교회사’,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 The Making of Korean Christianity, '한국 기독교 형성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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