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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설교 듣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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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형익  /  작성일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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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eadway on Unsplash

평생 그토록 많은 설교를 듣고 있고, 설교를 듣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면, 교인은 과연 설교를 잘 듣는 법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던가? 목사가 설교하는 법을 배우듯이 설교 듣는 법을 배운 교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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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기관에서 ‘설교 듣는 법’에 대해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이 주제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주제였고,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시리즈로 설교를 하기도 했었다. 내가 이 주제를 오래 생각해 온 이유는, 그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무시되어온 주제도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의 교인들은 말씀에 대한 수용성이 좋은 편이다. 겉으로 들릴 정도로 ‘아멘’을 외치는 것이 일상화된 교회도 그렇지만, 조용한 교회에서도 회중은 말씀을 잘 듣는 편이다. 한 번은 말씀사경회에 청함을 받아 말씀을 전하는 중에 너무나 말씀을 잘 듣는 회중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떤 목사가 와서 무슨 말을 하든지 다 이렇게 듣는 것은 아닐까?” 단지 목사가 말을 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이것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이다.


목사는 복음의 사역자 또는 말씀의 사역자라고 불린다. 목사 직분이 갖는 가장 중요하고 우선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그래서 모든 목사는 예외없이 신학교에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전하는 훈련을 받는다. 성경과 신학, 그리고 교회 역사를 이해하는 과목들 뿐 아니라 아예 설교학이라는 구별된 분야의 훈련도 받는다. 내 서재에도 설교와 설교학에 관련된 책들이 정말 많다. (그렇게 신학교에서 배우고 훈련받고 수십 년 동안 설교를 해왔고 설교에 대한 책들을 그렇게 읽고 보면서도 왜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부끄럽다.)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목사가 된다. 그리고 적어도 30년 이상(너무 늦게 시작하지 않았다면) 매주일 두 번에서 많게는 여덟 아홉 번의 설교를 한다.


그렇다면, 회중석에 있는 교인들은 어떤가? 목사가 설교를 하는 것 만큼이나, 교인 한 사람이 일평생에 듣는 설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자신이 속한 교회 강단에서 전해지는 설교 외에, 팟캐스트나 유튜브로 설교를 찾아 듣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직접 하나님의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설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영광스러운 수단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 듣는 것은 신앙의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하지만, 설교를 많이 듣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목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설교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잘 하는 것이 아닌가! 이점에서 설교를 잘 듣는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잘 하는’ 설교를 전제로 한다.


평생 그토록 많은 설교를 듣고 있고, 설교를 듣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면, 교인은 과연 설교를 잘 듣는 법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던가? 목사가 설교하는 법을 배우듯이 설교 듣는 법을 배운 교인은 거의 없다. 말했듯이, 나는 설교와 설교학에 대한 책들은 그 제목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설교 듣는 법에 관련한 책은 단 두 권 뿐이다. 단 두 권 말이다! 이것은 너무 목사 중심적인 것 아닌가!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성경이 말씀을 듣는 주제를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이 다루고 있는지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잘 알려진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네 밭의 비유(마 13:1-23; 막 4:1-20; 눅 8:4-18)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설교를 하는 것에 대해 다루는가 아니면 설교를 듣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는가? 누가복음에서 이 비유는 이렇게 마친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눅 8:18).”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고 권면할 때, 설교를 잘 듣는 것이 우리 신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도 말씀을 듣는 것에 관한 교훈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신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설교를 잘 들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가? 맥체인 캘린더에 따라 오늘 아침에 읽은 예레미야서에서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렘 25:3–4).”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설교를 듣지 않아서 망한 이야기다. 사실 그들의 행과 불행은 설교를 잘 듣는 것에 달려 있었다. 다음은 모세의 설교 일부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3).”


주님께서 네 밭의 비유에서 말씀하신 바, 설교를 잘 듣는 법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눅 8:15).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설교를 듣는 것은 몇 가지를 전제로 한다.


1. 믿음


설교를 잘 듣는 것은 믿음으로 듣는 것이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 4:2).”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설교를 많이 들은 사람들도 없을 것 같다. 그것도 모세의 설교를 말이다. 하지만 그들 다수는 그 설교의 유익을 누리지 못했다. 믿음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2. 분별력


설교를 잘 듣는 것은 분별력을 가지고 듣는 것이다. 목사가 말한다고 해서 다 ‘아멘’할 일이 아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태도가 중요하다(행 17:11). 이렇게 할 때, 가짜 목사들이 걸러지고 형편 없는 설교들이 강단에서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비판과 분별은 다르다. 분별은 설교에 흠을 잡으려는 의도나 내가 말씀을 전하는 목사보다 낫다는 교만함이 전제되는 비판과는 다르다. 도리어 ‘간절한 마음으로’(이것이 착하고 좋은 마음이고 믿음으로 듣는 것이다!) 듣지만, 성경을 통해서 그것을 확증(confirm)하려는 태도다.


3. 순종


설교를 잘 듣는 것은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 7:24,26).” 회중석에서 귀를 막고 있지 않다면 설교는 다 들릴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의 문제일 뿐이라면 주님께서 굳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눅 8:8)라는 말씀을 하실 필요가 있었겠는가? 회중석에 앉아 있다고 해서 다 들을 귀가 있는 것은 아니다.


4. 자기 기만을 피할 것


예루살렘이 멸망한 뒤에 남은 자들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청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렘 42:3).” 그들은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렘 42:5–6).” 결론은,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기만을 피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목사가 설교를 잘 하는 것만큼, 교인이 설교를 잘 듣는 것은 중요하다. 인터넷 설교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설교 듣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직접 하나님의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설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영광스러운 수단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 듣는 것은 신앙의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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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형익

김형익 목사는 건국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총신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인도네시아 선교사, GP(Global Partners)선교회 한국 대표 등을 거쳐 지금은 광주의 벧샬롬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 ‘율법과 복음’, ‘참신앙과 거짓신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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