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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와 같은 개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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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ai Hankey  /  작성일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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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k Asthoff on Unsplash

롤러코스터를 신나게 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어떤 날은 짜릿한 스릴에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반면, 또 어떤 날은 멀미에 온몸이 비틀거리고 속이 메스꺼운 고통을 겪는다고 말이다.


교회 개척 사역을 했던 지난 20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떠오르는 기억도 많고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도 많다. 언젠가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했을 때 교회 개척으로 인도하시는 그분의 소명을 깨닫던 순간이 기억나는가 하면, 또 차라리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면 나을 뻔했다고 원망하던 곤혹스러운 시절도 생각난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역


또 나는 처음으로 세례를 주었던 교인뿐 아니라, 처음으로 자살을 했던 교인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질곡의 세월을 지나면서, 교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가 탕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울기도 했고, 그들이 다시 주님께로 돌아오는 모습에 기뻐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영광스러운 회심만이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비통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마치 아름다운 결혼과 쓰라린 결별을 동시에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또 교회의 리더들을 세웠다가, 다시 그 리더들을 잃는 아픔도 경험했다. 거기에 나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하면, 또 나의 등에 비수를 꽂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그 둘이 같은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역사로 잠 못 이룰 만큼 에너지가 충전되던 때도 있었고, 너무 두렵고 절망적인 나머지 마음에 낙심하여 침대에서 기어 나오지 못한 때도 있었다.


이런 세월을 간단히 요약해 주는 잠언 한 구절이 있다.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잠 14:13). 이 말씀은 교회 개척에 뒤따르는 고통과 축복을 묘사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 어머니와 아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어 그 모자의 구원 소식이 교회 전체에 큰 기쁨이 되었고, 그에 대해 나는 감격하며 세례를 준비한 적이 있다. 그런데 또 언젠가는 세례를 주고자 했던 한 형제가 만취한 상태로 나타나서 우리의 기쁨을 앗아 가기도 했다. 그날 다른 세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사이, 나는 그 형제가 술에서 깨어나도록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와 동시에 함께 술에 취해 격앙되어 있던 다른 친구들의 거친 행동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도 주의해야 했다.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갈 즈음이 되자, 머리가 어지러워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고생스러운 이야기가 꼭 교회 개척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아마 사역에 깊이 몰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가 개척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비슷한 일에도 상처받고 깨지기 쉬운 약점이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역은 더욱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제 막 심긴 어린 묘목은 깊은 뿌리와 두꺼운 줄기를 가진 성숙한 나무보다 거센 풍파에 훨씬 더 아픈 상처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개척했던 첫 번째 교회를 섬긴 9년의 세월 동안, 나의 신앙이 크게 성장한 때도 있었고, 입이 벌어질 만큼 놀라운 은혜를 목도한 적도 있었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깨달으며 기쁨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이 개척해서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루면서도, 가까스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만 겨우 고비를 헤쳐 나오는 고통에 시달리곤 했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사역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사도행전을 훑어보면서 나는 이 선로 위에는 무엇인가 다른 결론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평범하지 않았던 초대 교회로부터 배우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서두에서 제자들이 기도하는 중에 약속된 성령이 찾아오셔서 교회를 하루 만에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런 급진적인 은혜의 역사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고,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나며, 하나님의 말씀이 초자연적인 권능과 더불어 전파되는 역사가 시작된다.


그런데 4장으로 가면, 베드로와 요한이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공회로 불려 가서 예수님에 관해 가르치지 말라는 경고를 받게 된다(행 4:18). 하지만 그들은 그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행 4:29). 그러자 하늘에서 응답하시고, 그들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계속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조금 더 진전되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모습이 소개되는데, 우리는 그 죽음이 교회를 진멸하고자 마음먹은 한 청년의 찬성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한다(행 7:58-8:1). 그런데 그 잔인한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던 청년 역시 결국에는 그리스도에게 항복하고 만다(행 9:4-6). 그리하여 그도 역시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며,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세계 각지를 다니며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다.


자,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들리는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들처럼 들리는가? 왜 초대 교회는 그렇게 교회 개척을 계속하였을까? 또 왜 우리는 그와 같은 교회 개척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을까? 왜 굳이 이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할까?


답변은, 여기에 타는 일이 쉬워서가 아니다.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이 일을 명하신 우리의 왕이 너무도 고귀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왕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되어 육체를 입으시고 인간의 모든 감정을 느끼셨고, 승리하기도 하시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시며, 찬양도 받으시고 배반도 당하셨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늘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후, 그분의 몸은 무덤 속에 놓여 졌다. 바로 그 죽음과 그에 이어진 부활을 통해 사망을 정복하신 예수님은 모든 나라와 민족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오르셔서 지금도 통치하고 계신다.


바로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 우리에게 주신 소명은, 푹신한 쿠션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라는 부르심이었다(마 16:24-25).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서 길 잃은 자, 비천한 자, 소외된 자에게 다가가고자 할 때, 그리하여 그 복음의 빛을 발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할 때, 우리는 아픔과 슬픔과 반대와 핍박과 쓰라린 고통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정신이 나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롤러코스터를 빠져나와 다 멈추고 쉬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분을 바라보아야 한다(히 12:2).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어디서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든지 간에,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곧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는 각자가 지던 십자가를 내려놓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약 1:12). 그날에는 고통스러운 시절을 뒤로 하고, 그 왕을 마주 대하게 된다. 거기에는 수많은 성도가 함께 모여 있을 텐데, 우리가 복음을 전해 준 사람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된다. 비록 현재의 사역이 오르락내리락하더라도 이 길에서 우리를 붙드시며 구원을 완성하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영원히 즐거워할 왕으로서 종착지에 나타나실 것이다.


그런데도 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리고 싶은가? 아마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달려보자!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Church Planting Is a Roller Coaster

번역: 장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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