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에스라서를 사모합니다. 물론 성경 전체를 사모하지만 에스라는 더욱 사모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 하나님이 하실 일이 아직도 있구나’고 말할 겁니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데리고 아마도 무언가 하실 수 있겠지만 에스라를 읽을 때 보게 되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서 여러분께 요청하려는 것은 이 진리를 여러분의 신학의 틀에서 잘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혹시 이 표현이 언짢으…
[질문] 요나서는 목사님 말씀처럼 긴장을 유발한 채 끝납니다. 요나가 그런 관점에서 자신에 관한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답변] 훌륭한 지적입니다. 요나가 요나서를 썼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요나서를 썼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고 있지만 그가 그 자료를 제공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물고기 안에 있었다는 말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가 하나님과 한 대화 내용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래서 가장 타당성 있는 추론은 요나가 자기에 관해 말한 것을 누군가가 나중에 적었다는 겁니다. 대부…
요나 3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됩니까? 우선, 주석가 대부분이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방 국가들에게 선포할 때 보통 그들의 폭력과 불의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는 겁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요나의 임무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노하심을 선포하여 사회 개혁을 불러일으키는 겁니다. 지금 세상을 둘러보며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노하심을 설교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회의 정의와 불의에 대해서는 별로 애쓰지 않습니다. 한편 실제로 나가서 사회를 도우며 …
앞서 두 번째로 말씀드린 것이 인종에 관한 것입니다. 요나서에 이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다음 10분 정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이미 언급한 사회 정의에 관한 주제입니다. 흥미 있는 것은 요나가 바다로 던져졌을 때 이방 선원들은 회심한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에는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들이 제물을 드리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것은 여호와, 언약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이상하게도 요나는 이방인들이 주님을 참되게 믿도록 인도하라는 부르심에 불순종했지만 그는 사실 결과적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참되게 믿도록 인도합…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하라는 건가요? 첫 번째로 누군가를 돕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게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일은 복음을 고양시키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일이며 인류를 사랑하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 교리는 이웃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걸 보여 줍니다. 그럼 부차적인 것인가요? 네, 분명 부차적인 겁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 말하자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인종 차…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매우 놀라운 구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사회 정의의 의미를 하나님의 형상 교리로 설명합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그는 놀라운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웃에 외국인이 살고 있거나 비도덕적인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으니 내게 내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그들에게 실제적 원조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칼빈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비도덕적이더라…
그럼 세 번째로 내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유대인이 말을 타고 가다가 길 위의 사마리아인을 발견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놀랍게도 ‘내 이웃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말을 타고 가고 유대인은 길을 걸어가는 상황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건 ‘이 사마리아인을 아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이교도이고 인종과 종교가 다르지만 그들은 분명 위대한 선행을 할 수 있고 놀라운 지혜가 있다’라는 겁니다. 선한 사마리아…
제가 요나서는 은혜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요나서는 또한 인종과 선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선, 인종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제가 ‘인종’과 관련하여 무엇을 말씀드리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사실 요나서는 요나를 요나가 경멸하는 이방인에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앗수르 사람들에게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라고 합니다. 그들은 다른 인종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며 그들은 이방인이고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물론 그들은 이스라엘의 안정을 매우 위협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들에게 가서 회개하라고…
선한 사마리아인에 상반된 모습의 요나를 선한 사마리아인과 비교하여 성경에서 묻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어느 인종과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이웃이 되겠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답을 하자면 그것은 단지 ‘가서 온정을 느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서 온정을 느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 유대인을 보고 그에게 큰 온정을 느꼈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실제적 도움을 주라는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