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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말씀 QT_다윗의 값진 실패
2020-10-11

사무엘하 6장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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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이유 있는 실패


내 힘을 빼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무식하게 힘만 세면 곤경에 처한다. 방법을 모르면 긴장하게 되고 긴장하면 힘이 들어간다. 힘이 너무 들어가면 결국 실수하게 된다.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이동하던 중 웃사가 죽고, 다윗은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실패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궤를 옮겼던 웃사와 아효가 아비나답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다(3절). 하나님의 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70여 년을 머문 것으로 생각하면, 아들보다는 손자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하나님의 궤가 웃사와 아효에게 매우 익숙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궤에 대해 무지한 채, 익숙함만으로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경험하게 된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3절)” ‘모니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기본형 ‘나하그’는 “동물이나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간다”는 의미를 가진다. 웃사와 아효가 하나님의 궤를 어떤 마음으로 다뤘는지 엿볼 수 있는 단어이다. 수레를 끌던 도중, 소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궤가 흔들렸고, 웃사가 급하게 궤를 붙든다. ‘웃사’이름의 뜻이 ‘강한 힘’을 의미한다. 자신의 힘과 방식으로 하나님의 궤를 지키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다윗에 의해 그곳이 “웃사를 치셨다”라는 의미인 ‘베레스웃사’라고 명명된다. 웃사를 치시기도 했지만, 무지한 인간적인 힘과 방식을 치시기도 했다. 하나님 앞에서 과한 힘을 내려놓아야 한다.


배움 있는 실패


아는 만큼 보인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아무나 실패를 통해 배움을 얻는 것은 아니다. 다윗이 삼만 명(1절)의 사람을 뽑았다. ‘삼 만’이라고 번역된 원어의 뜻은 1,000명으로 구성된 30개 부대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이 블레셋 지역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30개의 부대를 준비시켰다. 또한, 하나님의 궤를 실을 새 수레도 준비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기 위한 다윗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당황스러운 웃사의 죽음을 목격한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알게 되므로 인한 두려움 보다 모름으로 인한 두려움이 더 무섭다. 이 두려움이 다윗을 겸손하게 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완벽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도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연약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윗은 실패를 통해서 겸손히 배우고 말씀으로 더욱 견고히 서갈 수 있었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웃사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궤’라고 언급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궤’라고 언급한다. 전능자, ‘엘로힘’은 ‘전능하신 창조주’의 의미이며,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인 신의 개념으로 이해되는 단어이기도 했다.


‘여호와’는 인류 역사에 개입하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신실하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호칭할 때 쓰인다. 각각 일반적인 신의 개념, 그리고 구별된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신에 대한 호칭이다. 웃사와 다윗에게 각각 하나님이 어떤 존재였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우리 인생에 개입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 내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기 위한 죄를 지우는 ‘고상한 지우개’인가? 아니면, 내 인생을 이끄시는 ‘참 주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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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김영광 목사(The Story Church)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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