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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의로운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
2021-03-25
마태복음 27장 57-66절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58.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59.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60.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61.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의로운 용기! 의로운 일!아리마대 요셉은 의로운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오늘의 본문(57절)은 “저물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리마대’라는 지명은 사무엘 선지자의 출생지였던 구약의 ‘라마다임’(삼상1:1)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었다.산헤드린 공의회 소속이었던 아리마대 출신 요셉이 언제 어떻게 제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제자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요청했고,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허락을 받아 냈다.그런데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아리마대 요셉의 이와 같은 행동은 큰 결단과 용기를 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예수의 제자인 것이 밝혀지면 산헤드린 공회원의 영예가 박탈될 뿐만 아니라 유대교에서도 출교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셉은 당당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 땅의 영광보다 하늘의 영광을 선택했던 사람이요, 불의한 권세보다 의로운 그리스도인의 길을 선택했던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였다.요셉의 행동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한 가지는 의로운 용기가 있을 때 의로운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삶에서 의로운 용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로운 일들을 실천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예수님은 악을 뚫고 부활하셨다. 본문은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이 파수꾼을 세워 예수의 무덤을 지키도록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원하여 허락을 받아 내는 장면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생전에 말씀하셨던 말씀 즉, 자신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 시신을 훔쳐 간 후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헛소문을 낼까 봐 무덤을 굳게 지키기로 했다. 동시에 예수께서 혹여라도 다시 살아나신다면 다시 처단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목적대로 파수꾼들을 세웠고, 파수꾼들은 예수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의 악한 계교를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임을 증거가 되는 방편으로 삼으셨다. 파수꾼들이 지키고 있었기에 시체를 훔쳐 갈 수도 없었고, 예수께서 기절하셨다가 다시 깨어났다 할지라도 경비병들에게 발각될 수 있었기에 잠시 기절했던 것도 아니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즉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의 계략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과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오늘 하루 우리들의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함과 악한 자들의 계략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데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계속되고 있으며, 오히려 그들을 하나님 나라를 증명하는 통로로 사용하고 계심을 인정하고 멋지게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나는 부활의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수 십자가의 의미
2021-03-24
마태복음 27장 45-56절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증표십자가는 사랑과 공의의 결정체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소리를 지르신 후 운명하셨다. 예수께서 실제로 하셨던 말씀은 아람어였다. ‘엘리’는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이며, 라마는 ‘레마’라는 아람어 ‘왜?’라는 의문사이고, ‘사박다니’역시 아람어로서 “당신이 나를 버리셨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표현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의미로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님의 처절한 부르짖음이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셨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사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었고, 죗값을 받아 죽어야만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을만한 이유가 전혀 없으셨던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다.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표였고, 동시에 로마서 3장 23절과 6장 23절의 말씀에 근거한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만 했던 죄에 대한 대가였다.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결정체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달음과 동시에 죄를 결단코 간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루하루를 삶아갈 때 죄에 대하여는 엄히 경계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찬양하며 오늘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을 제거예수님은 십자가로 막힌 휘장을 찢어 여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다. 이 휘장은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이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은 구약시대부터 휘장을 치도록 하셨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레 21:23). 오직 대제사장 한 사람만 성결한 몸으로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 제사를 지내는 일만 허락하셨다. 왜냐하면, 죄인이 하나님을 보거나 죄 있는 상태로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중요한 휘장이 둘로 갈라졌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제사장 한 사람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으나,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보좌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을 통하여 변함없는 공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막힌 담을 허무시고, 막힌 장벽을 허물어 주신 예수님의 공로와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나는 십자가 은혜를 기억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겸손의 왕
2021-03-23
마태복음 27장 27-44절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군병들의 희롱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은 군병뿐만이 아니었다. 양용의 교수에 의하면 총독의 군병들은 유대 주변의 이방인 중에서 선발된 보조 군인으로서, 유대인들에게 호감이 없거나 혹은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목으로 십자가형에 처하게 될 예수님을 대하는 그들의 조롱과 희롱은 극에 달하였다.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 홍포를 입히는데 이는 당시 황제의 자주색 복장을 빗댄 행동으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예수님을 조롱하는 행동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가시를 엮어 면류관을 만들고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쥐여준다.가시 면류관 역시 왕이나 통치권자가 머리에 쓰는 왕관을 빗대었으며, 오른손의 갈대는 황제의 오른손에 들린 홀을 상징하는 조롱이었다. 황제 앞에 무릎을 꿇듯 군병들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환호를 하였다. 대제사장과 총독을 통해서도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임을 인정받았지만, 군병들 역시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도 잘 알지도 못한 채 진정한 왕 앞에서 그를 높이게 된다. 물론 칭송받는 세상의 왕이 아닌 조롱당하는 겸손의 왕으로. 본문에서 번역된 희롱은 헬라어로 ‘에네파익산’인데 이는 ‘아이처럼 논다’는 ‘파이조’에서 파생된 동사로 아이가 물건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군병들이 예수님을 향해 희롱했던 행위들이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대하였음을 말한다.여기서 우리는 가장 높으신 왕을 향하여 가장 낮은 피조물이 최악의 조롱으로 극에 달하는 죄악을 볼 수 있다.나는 때로 우리를 위하여 오래도록 침묵하시고 말씀이 없으신 주님을 향하여 비꼬는 마음과 말로 그를 조롱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힘없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작금의 기독교를 세워가며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할 수 있는 삶의 고백은 무엇이 있을까?골고다의 십자가전능하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집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지나가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모욕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등장한다. 그는 마가복음 15장 21절을 통해 루포와 알렉산더의 아버지임이 밝혀진다.로마서 16장 13절에 루포는 바울의 친애하는 사람 중 하나로 여김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든 상황을 유추하여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걸었던 시몬은 그 상황들 겪은 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믿음 생활을 온전히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당시 아무에게나 강제로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게 하는 것은 로마 군인들이 가진 특권이었는데,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 무의미한 것은 단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군병들은 예수님께 쓸개 탄 포도주를 전달한다. 이는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죄수들에게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베푸는 작은 호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어지는 고통을 온몸으로 그대로 받고자 쓸개 탄 포도주를 거절하신다.본문의 표준 원문에는 예수님의 행동을 ‘에델렌’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미완료 과거형으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나타낼 때 쓰이는 동사이다. 즉, 예수님께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는 의지와 계속해서 먹이려는 군병들의 작은 실랑이가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이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옷을 군병들은 제비를 뽑아 나누는데, 이 사건도 시편 22편 18절의 말씀의 성취적 요소를 가진다. 예수님의 수난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행동과 사건들 하나하나가 전부 유의미한 일들이며, 구약의 예언들에 대한 성취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그리고 모든 사람의 조롱과 비난을 그대로 받으시며 그는 십자가에서 서서히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계셨다. 능력이 없어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그분께서 친히 순종하심으로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심이 더 큰 은혜로 다가온다. 나의 삶 가운데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기 위해 참고 삭혀야 하는 일들은 무엇이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어디까지 참아내고 견딜 수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
2021-03-22
마태복음 27장 11-26절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예언의 성취자, 예수결국, 총독 빌라도와 예수님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 칭한 신성모독으로 인하여 종교적 관점에 의해 사형 집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관심과는 달리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이사야 53장 7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도살장에 끌려온 어린 양과 같이 침묵하셨다.개역 개정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는 것처럼 번역이 되어 있는데, 원문을 살펴보면 ‘프로스’라는 전치사의 역할이 있다. ‘~을 향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프로스가 ‘마디’로 번역된 ‘레마’와 만나 의미를 생성하게 되는데, 여기서 레마는 ‘고소, 비난’의 의미로 사용이 된다.즉, 예수님은 자신을 향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고소와 비난에 대하여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신 것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살기 위해 노력을 한다. 반면, 예수님은 약속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끝까지 참으시고 인내하셨다. 그 어떤 변명도 허락되지 않았다.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위하여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데 있어서 얼마나 참고 견딜 수 있는가?저주받은 자의 상징, 십자가대신 십자가 저주를 받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본문의 18절은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시기와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고발당함을 알고 그에게 특별사면을 내리고자 하는 장면을 담아내고 있다. 명절이 되면 총독의 권한 아래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는데, 빌라도는 ‘바라바’와 예수님을 사이에 두고 회중들의 선택을 요구한다.바라바는 아람어로 ‘아버지의 아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법정에 서신 예수님과 ‘아버지의 아들’로 법정에 동시에 서게 된 이 장면은 결코 우연적인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들이 많았음을 언급하며, 바라바의 이름 역시 ‘예수’였다는 기록을 남긴다.그러나 마태는 그 이름을 자신의 복음서에 기록하지 않은 채 ‘바라바(아버지의 아들)’로만 남겨 놓는다. 바라바는 아마도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민족주의적 혁명가로 추측이 된다. 빌라도의 마음속에는 그를 이미 십자가에 못 박기로 했었는데, 유대인들의 요구로 인하여 바라바는 석방이 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바라바의 석방을 요구하던 무리는 더 나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다. 무고한 자의 죽음 앞에서 무척이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빌라도의 모습과 는 다르게, 이스라엘 민중들은 실로 과감했다.십자가형을 앞둔 죄수에게 통상적으로 채찍질을 가하게 되는데, 이때 채찍질은 끈에 날카로운 조각들을 단 채찍으로 시행이 되었다. 심하게 채찍질을 당하면 뼈가 드러날 정도의 고통을 주기도 하였다. 아마도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배려 아닌 배려가 채찍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신명기 21장 23절에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묘사가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일이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저주받은 자가 되어주심이다.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통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저주받은 자가 되어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명백하게 선포한다. 죽음의 공포와 하나님과 의 단절의 아픔 앞에서 침묵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 가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원받게 될 우리를 생각하사 기쁨으로 나무에 달리셨다.그리스도가 달리셨던 그 저주받은 나무 위는 바로 나의 자리이다. 오늘 하루를 보내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어떻게 묵상하며 바라볼 수 있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후회가 아닌 회개를
2021-03-21
마태복음 27장 1-10절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살인 모의기득권을 지키려고 살인을 모의하다. 불법적인 작당 모의를 마친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은 새벽녘이 밝기를 기다렸다. 헬라어 ‘게노메네스’는 ‘기노마이’의 부정과거 분사형으로 ‘되었을 때’를 가리킨다. 따라서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합법적으로 회의를 열어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들은 공의회를 통해 내린 결론을 가지고 예수를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법한 일들의 연속 선상이었다. 당시 산헤드린의 규정상 유죄를 당일에 판결할 수 없고, 적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유죄 판결뿐 아니라 사형을 집행하는 일들을 당일에 처리하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인다.빌라도는 로마의 디베료(Tiberius) 황제의 파견을 받아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제5대 총독이었다. 그는 약 10여 년의 시간 동안 유대와 예루살렘 지역을 통치하였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줄 때 ‘파레도칸’이라는 헬라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자기 권한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처분을 다른 사람의 권한 아래 넘겨주는 것을 의미한다.산헤드린 공의회가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판결을 내렸다 할지라도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권한이 있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보내어 사형을 집행해주기를 바라고 요구했다.당신은 기득권을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 불법적이고 불의한 모의에 참여한 적은 없었는가? 언제나 자신의 이익과 만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 어떻게 하면 희생과 헌신의 자리로 내려가 설 수 있는가?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유다후회와 회개는 다르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나을 뻔했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낸 한 사람, 유다. 그는 자신이 은 삼십에 스승 예수를 팔아넘긴 일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이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 돈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예수는 무죄한 자요, 자신이 범죄했음을 이야기한다.그러나 이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완고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목을 매어 목숨을 끊는다. 사복음서에는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유다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수난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이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마태는 유다가 뉘우쳤다는 표현으로 헬라어 ‘메타멜레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회개하다’라는 ‘메타노에인’이라는 동사와 구분이 되는 단어로 완전한 회개와 돌이킴보다는 단순한 인간적 ‘후회’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결국, 그는 죽음으로 예수를 배반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유다가 던진 핏값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는데, 이는 예레미야 19장 1-13절과 스가랴 11장 13절의 말씀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성취로 볼 수도 있다.예수의 수난과 죽으심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미 창세기 3장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이와 동물의 무고한 죽음과 희생으로 죄와 수치를 가리는 가죽옷을 만드신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사의 예정된 하나의 과정이다. 이 세상 만물의 모든 역사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단 하나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오늘 회개가 아닌 후회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유다를 바라보며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이후 나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나는 그를 알지 못하노라
2021-03-20
마태복음 26장 57-75절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66.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공회 앞에 서신 예수님예수께서 잡히시자 모든 제자는 그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예수는 고독히 붙잡혀 대제사장 가야바와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인 공회에 끌려온다. 랍비들의 구전 율법 규정집인 미쉬나에 의하면 밤에는 그 어떠한 사형에 관한 재판도 열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붙잡히고 심문당한 시간은 새벽녘을 기다리는 깊은 밤이었다.새벽이 되어 공식적인 공회를 열어 예수의 사형 죄목을 선고하기 위해 비공식적이며 불법적인 심문을 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를 칠 거짓 증거를 찾지 못하였다. 여기서 ‘찾다’로 번역된 ‘에제툰’은 미완료 시제로 끊임없이 그들이 예수를 무너뜨릴 증거를 찾고 시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는 예수님의 발언을 문제 삼아 심문하기 시작한다. 보이는 건물로의 성전의 의미를 넘어 이제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마다 성전이 되는(고전 3:16) 새 성전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사흘은 완전한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예표로 보이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보낸 것과 당신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 나사로를 죽은 지 사흘 만에 살리신 모습들을 통해 완전한 죽음을 통하여 성전이 완전히 허물어짐을 선포하셨다.아이러니하게도 대제사장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많은 사람 앞에서 고백하게 하셨으며 끝내 이를 통해 유대인에게 최고의 형벌을 받을 수 있는 ‘신성모독’의 죄를 씌워 예수를 조롱하고 고통을 가한다.인간의 시선과 생각으로는 모든 것이 불합리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나 예수의 수난도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말씀들의 완전한 성취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과 사심, 그리고 죽으심은 예언과 성취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있다.예언된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온전히 성취됨의 제물로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과 희생을 볼 때,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삶으로 나아가야 하겠는가?베드로의 통곡회개는 후회와 다르다. 앞선 마태복음 26장 33절에는 베드로의 야심 찬 고백이 기록되어 있다. “모두가 주를 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고 따르겠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할 것을 이르셨다. 베드로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주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으며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를 따라 결말을 보고자 했다.그때 한 여종이 나아와 베드로를 향해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며 첫 번째로 예수를 부인한다. 이후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는 강도가 점점 세지는 것을 볼 수 있다.처음에는 모른다는 것에서 다음 여종을 만날 때는 맹세하며 부인을 하더니 기어이 예수를 저주하며 맹세하여 자신과 관계없음을 선포하는 데까지 다다른다. 모두가 주를 떠나도 기꺼이 주님을 따르겠다던 베드로의 호기로운 고백은 저주와 맹세를 담은 부인으로 결론을 맺는다.여기서 저주는 헬라어로 ‘카타테마티조’인데, 이는 자신의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저주가 내려져도 좋다는 일종의 자기 저주적 맹세를 가리킨다. 자신에게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베드로는 목숨을 걸고 거짓말을 뱉어냈다.그때 닭이 울었다. 일전에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을 이르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베드로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과 수치스러움, 그리고 주님에 대한 미안함이 복잡 미묘하게 섞여 큰 울음의 통곡으로 터져 나왔다. 마태는 부정과거 시제를 사용하여 단회적 울음을 표현했지만, 마가는 미완료 과거 시제인 ‘에클라이엔’을 사용함으로 베드로의 통곡이 계속되었음을 나타냈다.심히 슬퍼하며 통곡하던 베드로의 울음은 똑같이 주를 배반하고 떠났음에도 회개가 아닌 단순한 후회로 그친 유다의 죽음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베드로는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죄인임에 틀림이 없지만, 자신의 잘못과 부끄러움에 대한 눈물의 회개가 훗날 그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예수를 그리스도이심으로 증거가 되는 삶을 살아내도록 하였다.나도 우리의 삶의 현장 가운데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 하나로 위기와 곤경에 처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신앙
2021-03-19
마태복음 26장 36-56절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자기를 부인하셨다. 마태복음 25장에서 가르쳐 주신 종말의 신앙, 26장에서 가르쳐 주신 부활의 신앙이 이제 예수님의 기도와 고난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이것으로 인류가 말씀을 삶의 고난에 적용하는 신앙을 가지는 것에 실패한 것을 예수님의 모범으로 덮어 주시는 놀라운 장면이 시작된다.예수님은 먼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신다. 제자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는데, 기도하고 내려왔다가 다시 기도하러 올라가기를 3번이나 하셨다. 그만큼 기도를 많이 하셨는데 제자들은 이 긴 기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졸기까지 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가기 어렵지만, 이 기도를 얼마나 감당하느냐가 너무도 중요한 신앙 성장의 핵심 요소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먼저 처음 올라갔을 때는 자신의 연약함을 위해 기도하셨다. 여기서 그 유명한 자기 부인의 기도를 하신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39절). 이렇게 기도하면서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신다.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이다. 나의 원하는 바람이 있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먼저 구하고, 그 뜻 앞에 나의 뜻하는 바를 꺾는 것이다.두 번째로 올라가서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 이렇게 기도하며 더욱 하나님의 뜻을 구하신다. 세 번째로 올라가서도 동일하게 기도하고 내려 오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그 말씀이 나의 뜻보다 더욱 앞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고, 이를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로 영적인 싸움을 할 것을 직접 본으로 보여주셨다.이처럼 우리가 말씀을 들고 자기 뜻을 내려놓는 기도를 통해 참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도 그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자기 십자가를 지는 신앙예수님은 순종을 통해 자기 십자가를 지셨다.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 직후에 군인들이 찾아와 예수님을 체포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고 군인들과 함께 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의 손에 입맞춤으로 알려주고 군인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한다. 이를 본 베드로(요 18:10)가 칼을 꺼내어 그 군인의 귀를 자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고난의 시작을 이미 받아들였고 어떤 거부나 저항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예수님은 이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군인들이 왔을 때 ‘친구’(50절)라고 표현하시며 저항하지 않을 것을 표현하셨다. 심지어 베드로에게도 칼을 거두라고 하셨고 귀가 잘린 종을 기적으로 치유하신다. 이것은 고난에 저항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기에 순종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그리고 이 순종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신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56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 즉 말씀의 예언이 성취되는 일이기에 순종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앞서 기도하신 대로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을 실천하시는 장면이다.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고난을 겪을 때가 있다. 그 고난 앞에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과연 하나님이 이 고난을 왜 주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지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그 모든 응답이 말씀 가운데 있음을 기억하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기도와 순종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한다.한 가지 더 살펴볼 점은 예수님은 완전한 인성과 더불어 완전한 신성을 가진 분이시다. 따라서 베드로처럼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저항하여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셨다. 이 모습들이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중요한 신앙의 태도이다.내게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순종이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불신앙이 신앙이 되게 하는 은혜
2021-03-18
마태복음 26장 17-35절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가룟 유다의 거짓된 신앙가룟 유다는 예수를 파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본문에는 두 사람의 신앙이 소개된다. 바로 가룟 유다와 베드로이다. 한 사람은 예수를 팔았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예수를 부인했던 사람이다. 먼저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로 세워졌고 예수님께 늘 말씀을 배웠지만,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품고 살았던 사람이다. 결국,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은 30개를 받고 판다.그의 신앙은 예수를 팔아 욕심을 채우는 신앙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들을 눈과 귀로 확인했지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욕심대로 예수님을 통해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수난을 예고하면서 죽음의 길을 걸어가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크게 실망했다. 그러면 자신의 욕심을 채울 길이 없다고 생각하며 더는 필요 없고 가치 없는 예수를 팔아 돈이라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베드로의 거짓된 신앙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다. 하지만 지성적인 이해를 하는 것에 그쳤다. 그마저도 그 의미를 다 깨닫지 못해서 예수님이 정치적인 왕이 되리라 생각했다. 비록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거나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지성적인 고백으로 만족해 버렸다. 이 모습을 보며 예수님이 예언하기를 베드로가 자신을 3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반문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며 두려워했고 결국 도망쳤다. 자신도 예수님처럼 체포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것도 3번이나 부인했는데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부인했다. 이처럼 말씀을 믿지 않는 것도 문제이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여 믿는 것도 문제이다. 본문은 이 두 가지 신앙을 소개하며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도록 교훈하고 있다.참된 신앙참된 신앙은 부활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결국 회개하지 못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시 참된 신앙으로 거듭난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참된 신앙을 위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은혜를 가르쳐 주시는데, 바로 부활의 은혜이다. 예수님은 이 중요한 은혜를 가르치기 위해 성만찬을 베풀었다. 이 만찬은 예수님의 3년간 공생애 중에 처음으로 베푼 것이다. 바로 자신의 체포와 죽음 직전이었다.이제 시작될 수난들은 그의 죽음과 부활로 이어지며 인류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전 인류적 구속사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 이 부활은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사랑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날마다 이를 기념하여 부활의 은혜를 누려야 참된 신앙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영적 관문이 된다. 우리는 이 부활의 은혜를 묵상하며 내 안에 거짓되니 신앙들을 버리고 참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나는 예수님의 부활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향유옥합을 드린 신앙
2021-03-17
마태복음 26장 1-16절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5.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한 여인의 신앙이 여인이 누구인지보다 이 여인의 신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본문은 예수님이 유월절이 되자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일어날 자신에 대한 수난사를 예언하신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한편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잡아서 죽이려고 결의한 직후이기도 하다.한 여인이 예수님이 식사하던 곳으로 찾아와 그의 머리에 향유 옥합을 부은 이 사건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다. 이 향유 옥합의 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요한복음에 이 여인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였다.그러나 오늘 마태복음 본문의 여인이 요한복음에 기록된 ‘마리아’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들이 모두 하나의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많은 학자가 당시에 이렇게 귀한 손님이 왔을 때 향유 옥합을 그의 발에 부어 씻겨주는 문화가 있었기에 예수님을 찾아와 이런 신앙의 행위를 한 일들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몇 가지 다른 근거도 있다. 사건의 배경이 각각 다른데, 사건의 장소가 마태복음에서는 문둥이 시몬의 집, 누가복음에서는 바리새인의 집, 요한복음에서는 베다니 나사로의 집이었다. 다른 사소한 배경들도 조금씩 다른 것을 볼 때 더욱 확실해진다. 이 때문에 이 여인이 누군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지만, 그것보다 그녀의 고백한 신앙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가장 귀한 향유 옥합여인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가장 귀한 것을 드려 기념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 향유는 당시의 화폐가치로 따지면 약 300데나리온인데 이는 노동자의 1년 품삯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향유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먼저 관유라고 해서 성전에서 사용하는 기름으로, 또 의료용 약품으로, 또 향수로도 사용되었다. 여인들은 결혼식 지참금으로 이 향수가 사용되는 향유를 구했다.또 다른 용도로는 귀한 손님이 집으로 방문했을 때 손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냄새 제거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직분 세울 때도 사용했는데 기름을 머리부터 부어 몸 전체에 바르도록 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여인이 향유를 소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하지만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것에 대해 예수님은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하신다. 바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사용했다고 말씀하셨다(12절). 즉 시신의 급격한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몸에 바르는 용도였는데 예수님이 자기 죽음을 예고한 직후이기 때문에 그 수난 예고를 들은 여인이 집에서 다른 용도로 가지고 있던 이 향유를 들고 와서 장례를 기념하는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다른 여인들이 각각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몸에 바르거나 같은 목적으로 가지고 가는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다.순종하는 신앙어떤 말씀이든지 믿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지금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고 있다. 죽음을 예고하시니 그 죽음을 미리 기념하고 있다. 그녀는 이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드렸다. 그 믿음이 예수님께 칭찬을 받는 믿음이 되었다. 이것은 단지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는 표면적인 교훈을 넘어 더 본질적인 교훈을 준다.앞서 종말의 비유로 3가지 비유, 즉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를 통해 마지막 때 종말을 준비하는 신앙을 가르쳐 주신 것에 우리가 어떤 태도로 순종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고가 있었음에도 그대로 믿지 않았던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의 당시 모습과 비교된다. 더욱이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죽음에 동참하는 신앙으로 비추어진다.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태도로 반응하고 있는가? 사람들에게 자기 신앙이 건강하다고 장황하게 설명은 하는데, 과연 지금 예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질문하며 돌아보자.나는 지금 어떤 말씀에 어떤 태도로 순종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종말의 신앙을 준비하라
2021-03-16
마태복음 25장 31-46절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이 반드시 찾으시는 신앙마지막 때를 위해 참된 신앙을 준비해야 한다. 본문은 마태복음 25장의 종말에 관한 3가지 비유 중에 마지막 비유인 양과 염소의 비유다. 이 비유는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준비되어 있어야 할 신앙의 핵심을 알려준다. 가장 먼저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31절) 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의 공로를 내세울 틈을 차단하고 있다. 또한 ‘영광의 보좌’(31절) 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 재림 이후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다.이때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양과 염소로 구분하신다. 즉, 종말의 신앙을 준비한 사람과 준비 안 한 사람으로 구분한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신앙의 준비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필수 요소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구분의 기준이 되는 신앙을 준비한 자의 삶을 설명한다.먼저는 예수님이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으며,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재밌는 장면이 연출된다. 양이 그런 적 없다고 답을 한 것이다. 오히려 염소는 자신들이야말로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의 행위와 하나님 생각하는 행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메시지를 담은 또 다른 구절이 있는데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라는 말씀이다. 역시 신앙은 열매로 보아 알 수 있다고 의미이다. 예수님은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난다고 강조하셨다. 좋은 열매 맺지 못하면 불에 던지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구원의 확신을 하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구원 이후에 취해야 할 신앙을 말씀 가운데 확인하고 그 신앙을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하나님이 찾으시는 순종의 신앙우리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 앞에서 정직하게 순종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보시는 신앙과 사역의 구체적인 핵심은 무엇인가?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40절)에서 보듯이 신앙의 행위를 누구 앞에서 했느냐가 핵심이다.결국,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과시하기 위해서 했느냐,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해 했느냐이다. 마지막 때 우리가 준비해야 할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신앙이다. 누군가에게 자랑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나의 고집과 의를 드러내어 어떤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서 순종으로 실천하는 신앙을 준비해야 한다.우리는 평소에 드리는 예배 안에서 은혜를 깊이 구해야 한다. 큰 부흥회나 행사를 할 때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늘 구해야 한다. 자신이 일상 속에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특별한 사람을 찾거나 전도를 실적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복음을 사모하며 복음 자체를 전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섬겨야 한다. 섬김을 어떤 식으로든지 가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섬기면 더 좋겠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헌신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작은 것을 섬기는 자의 개념이며 마지막 때 우리에게 찾으실 신앙이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닌 예수님 앞에서 정직하게 순종하는 신앙을 가지도록 기도하자.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순종을 하고 있지 않은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백성훈 목사(이름없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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