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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
2021-03-05
마태복음 22장 15-22절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올무를 놓는 무리들악인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 바리새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는가 였다. 그래서 늘 상의했다(15절). 그들에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진리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퍅하고 딱딱하게 굳은 마음에는 조금도 부드러운 면이 없었다. 바리새인들만이 아니었다. 헤롯당도 마찬가지였다.친 로마적 성향의 헤롯당은 바리새인들과 늘 적대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예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거부하며, 예수님을 죽이려는 일에는 서로 하나가 됐다. 이처럼 악함은 서로 연합한다. 그들은 예수님께 아첨하며 묻는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옳습니까?”(17절).이건 단순히 세금 문제가 아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예민한 이슈를 건든 것이다. ‘세’는 헬라어로 ‘켄손’으로서, 모든 성인들이 해마다 바치는 인두세를 뜻한다. 이로써 로마에 점령당하고 있는 현실을, 좀 더 고통스럽게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때 만약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대답하시면 민족의 배반자로 몰고 갈 수 있었고,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시면 로마의 통치에 대한 반란을 선동했다고 몰고 갈 수도 있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속셈으로만 가득했다.나는 예수님에 대해, 진리에 대해 진정 부드럽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 나의 기대와 맞지 않는 예수님의 음성에 강퍅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진 않은가?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가이사의 통치보다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셈을 바로 아셨다. 그리고 그들의 악함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책망하셨다.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18절). 예수님은 중심을 아신다(막 2:8). 예수님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말씀하신다. 당시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1절).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저버렸기에 고통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것이었다. 로마의 식민통치로 인해 분노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 차갑게 반응했던 스스로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했다. 그들의 심령에 이미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형상 앞에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순전함이 회복됐어야 했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다스리고 있는 가이사는 그들의 진짜 주인이 아니다. 그들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급선무였다.내 심령 가운에 진하게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 앞에, 나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기뻐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정대진 목사(안산오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초청에 합당한 자가 되라
2021-03-04
마태복음 22장 1-14절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임금의 초청을 거부한 백성들임금은 은혜를 베풀고자 하나, 백성은 끝내 거부한다. 예수님은 또 비유로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떤 나라의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잔치는 왕자를 왕의 후계자로 임명하겠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임금은 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넉넉히 준비했다. 그리고 미리 초청했던 사람들을 부르려고 종들을 보냈다(3절).이 이야기에서 임금은 어떤 모습인가? 자신의 백성들에게 짐을 지우는 게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고 베풀려는 은혜로운 임금이다. 이 임금은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지만 임금의 초청을 받은 백성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초청을 거부한다. 온통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큰 은혜를 베풀며 함께 기뻐하려는 임금의 의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임금이 보낸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6절). 이유는 한 가지다. 임금의 아들이 임금의 뒤를 이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내면에는 자기의 구미에 맞는 임금이 세워지기를, 심지어 자신이 왕이 되기 원하는 교만함으로 가득했다.임금의 은혜에 교만과 불순종으로 반응하는 모습은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오늘날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모습이다. 결국, 임금은 군대를 보내어 끝까지 반역한 백성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나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여전히 내 삶에만 몰두한 채 은혜의 초청을 너무 쉽게 거부하진 않는가?임금의 초청에 합당하지 않은 백성들혼인 잔치에는 누구나 초대받지만 아무나 가진 못한다. 결국, 임금은 종들을 시켜 다른 백성들을 혼인 잔치에 초청한다. 이미 준비된 혼인 잔치에 먼저 초청된 사람들이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혼인 잔치에 초청했다(9절). 그래서 왕자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전혀 없던 사람들도 그곳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혼인 잔치에 걸맞은 예복도 받았다. 당시 사회에서는 초대한 손님에게 미리 예복을 보내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창 45:22, 에 6:8~9).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혼인 잔치에 온 사람 중에 준비된 예복을 입지 않고 온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11절). 왜 예복을 입고 오지 않았냐는 임금의 질문 앞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수치를 당하고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12~13절). 혼인 잔치에 누구나 올 수 있었지만 아무나 오진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신다(14절).여기서 ‘택함을 입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클렉토스’는 ‘선별된 자들, 선택된 자들’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진정한 제자들을 가리키실 때 사용했던 단어다. 잔치에 초정되어도 실제로 다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니듯이, 복음이 선포될 때에도 선택받아 참된 믿음으로 반응하는 이들만이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게 된다. 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합당한 예복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로 옷 입어야 한다. 천국은 거룩한 흰옷을 입은 주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나는 하나님께서 미리 베푸신 은혜에 온전히 반응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나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쉽게 생각해서 안일하진 않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정대진 목사(안산오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은혜에 반응하는 자인가?
2021-03-03
마태복음 21장 33-46절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신앙과 불신앙신앙은 은혜에 반응하는 것이고, 불신앙은 은혜를 배척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포도원의 농부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이사야 5:1-7의 포도원의 노래가 그 배경이며, 앞에서 언급한 두 아들 비유를 의미 면에서 더욱 구체화하고 보충해 준다. 이사야서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포도나무를 심으신 이유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였다(사5: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열매 없는 종교지도자들의 완악한 마음을 책망하기 위해서였다.포도원 농부 비유에서 집주인은 하나님, 농부는 이스라엘, 종들은 선지자, 아들은 예수님, 다른 농부는 이방인을 상징한다. 이런 의미 안에서 비유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집주인은 포도원에 산울타리를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과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났다(33절).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먼저 택하시고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율법의 가르침과 교훈으로 보강하기 위해 제사와 여러 의식 등과 같은 보조수단도 주셨다는 것을 상징한다(호크마주석). 더 나아가 주인이 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하나님은 열매가 거둘 때가 되어 그 열매를 받으시려고 자기 종인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에게 보냈다(34절).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리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돌로 치는 악행을 저질렀다(34-35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해 더 많은 선지자를 보냈는데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악행을 저질렀다(36절).그런데도 하나님은 악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래 참아주셨다. 심지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셨으면, 그의 아들까지도 보내주셨다(37절). 그러나 그들은 주인이 베풀어 준 은혜를 잊어버리고 아들의 유산까지도 차지하기 위해 그 아들마저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다(39절). 은혜에 반응하는 것이 신앙이다. 불신앙은 은혜를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것이다. 불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찾을 수 없다.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가?하나님의 심판의도적으로 신앙을 배척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다시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물어보았다(40절). 종교지도자들은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제때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41절). 이 결론은 종교지도자들의 입을 통해서 나왔지만, 예수님께서 내리신 결론과 같다.예수님은 시편 118:22의 말씀을 인용하여 악한 농부로 비유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메시아로 적합하지 않아서 버린 돌이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가르쳐 주셨다(42절).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은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또한, 예수님은 불신앙의 사람들이 스스로 넘어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됨을 ‘돌 위에 떨어지는 자’와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는 모습’으로 말씀하셨다(43-44절).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고 경고하신 이유는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원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회개가 아닌 더욱 완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다(46절). 종교지도자들은 더는 회복될 수 없는 저주 아래 떨어졌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배척하였기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나는 의도적으로 내 유익을 위해서 신앙을 배척했던 일이 없지는 않은가? 혹시라도 생각나는 게 있다면 주님 앞에 자백하고 회개하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지현호 목사(올리브선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누구를 두려워하는가?
2021-03-02
마태복음 21장 23-32절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의 권위교만한 자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하였다(23절). 첫 번째 질문은 예수님이 무슨 권위로 많은 표적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권위가 하늘의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것인지에 대한 것으로 예수님의 자격에 관한 질문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이 이렇게 질문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통하여 신적 권위를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두 번째 질문은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는 것이다. 즉, 권위의 출처를 묻는 것인데 여기서는 세 가지 답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늘로부터 오거나, 사단으로부터 오거나, 자신에게서 온다”(Interpretation 주석). 종교지도자들이 질문한 이유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그들의 덫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였다.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악한 의도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는지 사람에게서 왔는지를 물으셨다(25절). 예수님의 질문은 종교지도자들의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예수님의 활동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how to 주석).이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서로 의논하였다(25절). ‘서로 의논하였다’라고 번역한 헬라어 ‘디엘로기존토’(διελογίζοντο)는 미완료시제로서 그들이 스스로 딜레마에 빠져 계속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딜레마에 빠진 그들은 예수님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27절).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백성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26절).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자들은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범적으로 지켜야 할 종교지도자들이라면 사람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과 진리를 말해야 한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주님을 볼 수 없는 영적 소경이 되었고, 자신들의 직무를 유기한 타락한 자가 되었다.내 안에는 사람의 반응을 두려워하는 교만이 있는가? 나는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진리를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두 아들의 비유천국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을 책망하기 위해 두 아들의 비유를 이야기하셨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대답하여 포도원에 가겠다고 했으나 가지 않았다(28, 29절). 맏아들은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맹세하면서도 성전 밖에서는 그 맹세를 지키지 않는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을 가리킨다.반면에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가기 싫다고 말했으나, 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갔다(30절).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뜻에 대해 싫다고 거절한 것은 잘못한 일이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동시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포도원으로 갔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 전체, 즉 ‘뉘우치고 간’ 바로 그 행동 자체가 올바른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에오’가 되었다”(호크마주석).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종교지도자들에게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냐고 질문하자 종교지도자들은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하였다(31절).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반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끝내 뉘우치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악함을 책망하셨다(31, 32절).나는 교회 안과 밖에서 주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는 자인가? 내 안에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위선적인 모습은 없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지현호 목사(올리브선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성전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2021-03-01
마태복음 21장 12-22절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성전 청결성전은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곳이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12절).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왜 그러셨을까?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타락해서 강도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13절).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보다 돈 버는 일에 더 열심이었다. 그들은 성전세를 환전하는 것과 흠 없는 제물을 검사하는 직임을 이용해서 엄청난 부를 누렸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성전을 방문한 19세 이상 유대인들은 성전세로 반 세겔(2일분의 임금에 해당)을 내야 했다. 성전세는 성전에서 사용할 돈으로 환전해야 했는데, 순례자들은 환전세로 무려 하루분의 임금을 추가로 내야만 했다.또한, 성전을 방문한 순례자들은 흠 없는 제물을 가지고 와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살펴보고 적격 여부의 판정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고자 성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가져온 제물은 대부분 부적격 판정을 내려버렸다.결국, 순례자들은 성전에서 파는 값비싼 제물을 사야만 했다. 순례자들은 가장 가난한 자들이 제물로 드릴 비둘기 한 쌍을 밖에서 사는 것보다 무려 20배 이상 주고 사야만 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성전이 타락하여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그렇다면 성전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성전은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곳, 기도하는 곳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영적인 시각장애인인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육적인 시각장애인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시며 백성들이 주님을 찬양하게 하셨다(14-15절).‘이상한 일’(15절)로 번역한 헬라어 ‘다우마시아’(θαυμάσια)는 ‘놀라운’, ‘찬양할 만한 일들’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육체의 장애인들을 고치신 일뿐만 아니라 성전을 성결하게 하신 일까지도 백성들에게 찬양받을 만한 일이었음을 암시한다(호크마주석).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까지도 주님을 찬미하는 것을 통해 성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셨다(15-16절).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바로 성전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나는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자인가? 나는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무화과나무 저주사건기도 응답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잎사귀밖에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19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일을 이상히 여겼다(20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화과나무가 마른 일뿐만 아니라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여도 그렇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21절). 더 나아가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모두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이라 가르쳐주셨다(22절).그렇다면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내가 원하는 어떤 기도도 내가 확신을 하고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것을 말하는가? 내 뜻, 내 생각들을 믿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내 뜻과 내 생각들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믿음의 기도는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명령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믿음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자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지현호 목사(올리브선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진정한 왕, 위장된 백성
2021-02-28
마태복음 21장 1–11절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진정한 메시아주인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며 찬송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로마 황제보다 훨씬 더 큰 적을 물리치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 고독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그 사랑의 깊이에 더욱 감사하게 된다.마가와 누가와는 달리 마태는 ‘나귀 새끼’만 언급하지 않고, ‘나귀와 나귀 새끼’를 함께 언급한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마태복음의 일차 독자인 유대인들에게 오실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전쟁에서의 승리를 선포하는 왕의 행차 시에 보통 말을 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상징하는 나귀를 타심으로 평강과 겸손의 왕이심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바쳐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기 위한 ‘평화의 메시아’임을 보여 주신다.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어 맞은편 마을에 매여 있는 나귀를 끌고 오게 하신다. 사전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마치 자신의 소유처럼 가져오도록 명령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선언하시는 장면이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3절).‘주’로 번역된 ‘퀴리오스’는 ‘주인, 지배자’라는 뜻이다. 퀴리오스 앞에 정관사 ‘호’가 붙어서 ‘그 주인’이 된다. 나귀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말씀해주신다. 짐을 옮기는 데 쓰여왔던 나귀가 예수님을 태운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보잘 것 없는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모시면 그 인생은 천국이 된다.위장된 신앙확고해야 휘둘리지 않는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행렬 앞에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길에 펴 놓았다. 자신의 겉옷을 벗어 깔아놓는 행위는 왕을 영접하거나 왕이 즉위해서 말을 타고 갈 때 백성들이 행하는 최고 존경의 표현이었다. 또한 사람들이 깔았던 나뭇가지는 종려나무(요12:13)였는데, ‘승리’와 ‘기쁨’을 상징하는 나무였다. 예수님의 행렬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반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다수’라고 번역된 ‘플레이스토스’는 ‘매우 많음’의 의미이다. 유월절 명절 기간을 앞두고 정말 많은 사람이 이 기쁨의 행렬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이 행렬로 인해서 온 성이 소동했다고 기록되었다. ‘소동하다(세이오)’라는 단어는, 지진으로 인해서 땅이 흔들리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이다. 그 현장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말해준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따랐던 그들이 어떻게 변했나?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선동당한 그들이 빌라도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마 27:23).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소망을 믿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갇혀서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실 구원이 무엇이었는지? 세우실 새로운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 그들은 알지 못함으로 쉽게 휘둘렸다.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예배하고 있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영광 목사((The Story Church)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무엇을 원하느냐?
2021-02-27
마태복음 20장 17–34절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욕심으로 구하는 두 제자욕심은 눈과 귀를 멀게 한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해주신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클라이맥스를 찍는 매우 중요하고도 무거운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과 함께 예수님께 나아와 절하며 간청한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1절).단순히 아들들을 출세시키려는 극성맞은 어머니의 모습이었을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22절). ‘너희’라는 복수형을 쓰셨다. 그뿐만 아니라 평행구절인 마가복음에서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막10:35)라고 기록되었다. 이는 명확히 야고보와 요한의 욕심이었다.그들의 요구를 말하기 전에 예수님께 와서 엎드려 절을 했다. ‘절하다(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는 ‘입 맞추다’라는 뜻으로, 당시에 통치자를 신격화하거나 로마 황제숭배와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경외하는 엎드림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의도를 가진 엎드림이었다.다른 제자들은 어땠을까?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24절). ‘분히 여기거늘’로 해석된 ‘아가나크테오’는 ‘많이’라는 뜻의 ‘아간’과 ‘슬퍼하다’라는 뜻의 ‘아코마이’의 합성어로, ‘격분하다’, ‘분개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정치적 욕망을 가진 야고보와 요한을 격하게 질투하는 나머지 제자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중심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평행구절 누가복음에서는 마태와 마가가 기록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눅18:34).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욕심이 귀를 막았기 때문이다.절실함으로 구하는 두 맹인기회를 잘 잡으면 인생 역전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동하던 중 두 맹인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외친다. “소리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30절).‘소리지르다(크라조)’는 까마귀가 우는 소리에 근거하여, 귀에 거슬리거나 목이 쉰 소리를 뜻한다.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나 정말 간절하게 울부짖으며 외쳤다. 당시에는 장애가 있는 이들을 혐오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들을 꾸짖으며 조용히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더욱 크게 소리질러 간청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외침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앞서 두 제자의 구함과 달리 두 맹인의 구함은 절실했다.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어!” 마지막 희망이기에 사람들의 만류에도 절실하게 외쳤다. 욕심을 채우기 위한 구함이 아니라 살기 위한 구함이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34절). 그들이 눈을 떠서 가장 처음으로 본 것은 바로 예수님이었다. 그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눈을 뜨게 된 기쁨만 만끽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를 따랐다.나는 예수님을 이용하는 사람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인가?“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이라”(28절).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영광 목사((The Story Church)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포도원 품꾼 비유의 교훈
2021-02-26
마태복음 20장 1–16절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편협한 관점감정적인 사람은 큰 뜻을 품지 못한다. 19장에서 어린아이들은 예수님께서 용납하시고 부자 청년은 거절하신 교훈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천국)의 원리가 무엇인지 알려주신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는 많이 소유한 자가 아닌 많이 공유한 자이다. 또한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자이다. 이런 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쉽게 알 수 있다. 포도원의 주인은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고대 근동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노동을 했다.‘이른 아침(프로이)’이라는 단어는 ‘새벽’으로도 번역하며 해가 뜨는 시간을 의미한다. 유대시간으로는 0시경, 로마시간(오늘날 시간)으로는 6시경이다. 마태복음은 유대시간으로 표기되었다. ‘집주인(오이코데스포테스)’은 ‘집주인’, 혹은 ‘가장’을 의미한다. ‘하나님’이나 혹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단어로도 사용된다.주인은 이른 아침(6시), 제삼 시(9시), 제육 시(12시), 제구 시(15시), 제십일 시(17시)에 5번 나가서 품꾼을 고용했다. 오전 6시에 고용된 품꾼들에게만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다. 한 데나리온은 로마 화폐로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일과가 끝나고 품삯을 정산하는데 오후 5시에 온 품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이 지급되었다. 1시간 받고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12시간 일한 품꾼은 당연히 더 많은 품삯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모든 품꾼이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가장 먼저 온 품꾼들이 불만을 품고 주인에게 따진다. 1시간, 3시간, 6시간, 9시간, 12시간 노동한 자가 모두 품삯이 같다면 12시간 일한 품꾼이 가장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12시간 일한 품꾼에게 주인이 약속한 금액은 한 데나리온이었다. 정확히 약속대로 받았다. 그런데 왜 화가 난 것일까? 그 품꾼들이 화가 난 원인은 주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세운 ‘상대적 기준’ 때문이었다.하나님의 관점기준에 따라 행복 지수가 달라진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 기준은 돈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뜻에 가치를 둬야 한다. 품삯은 같았지만 일 자체의 가치를 따져본다면, 12시간 일한 사람이 가장 큰 보람을 느끼지 않았을까? 일과 시작부터 일할 수 있도록 자신들이 선택받았을 때 인정받는 뿌듯함과 함께 주인에게 정말 감사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약속을 지켜준 주인에게 오히려 원망을 쏟아내고 있다. 12시간 고생한 것을 주인이 몰랐겠는가? 더 좋은 일을 맡겼을 수도 있다. 그들의 감정적 반응으로 인해서 주인에게 찍히고 말았다.“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행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5절).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절대적 기준이다. 하나님의 기준이 없으면 인생은 불안정해지고 혼란과 다툼만 일어난다.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 가장 완벽한 선이다.‘다 뜻이 있으실 거야!’ 당장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순종할 때 더 큰 뜻을 깨닫고 풍성한 감사를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이 자리 잡으면 그 무엇에 사로잡혀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한 채 눈뜬장님으로 불안한 인생을 살게 된다.나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영광 목사((The Story Church)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2021-02-25
마태복음 19장 23-30절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구원의 걸림돌좋은 선택을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예수님과 대화를 마치고 청년은 근심을 안고 돌아간다. 예수님께서 이 일화를 통해 제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우니라”(23절). ‘어려우니라’로 번역된 ‘뒤스콜로스’는 어려움, 방해, 반대 등을 나타내는 접두사 ‘뒤스’와 음식을 뜻하는 ‘콜론’의 합성어다. 따라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찾기 어려움’을 뜻한다. 청년이 ‘영생’을 찾고자 했으나 그가 가진 많은 재물로 인해서 오히려 곤란함에 처하게 되었다.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낙타가 바늘귀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어려운 것처럼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돈에 마음을 뺏긴 사람은 예수님께 온전히 마음을 내어드릴 수 없다. 그 청년의 문제는 재물의 많음에 있지 않았다. 재물에 마음이 빼앗긴 것이 문제였다.예수님의 교훈에 제자들은 몹시 놀랐다. 마태는 ‘몹시(스포드라)’라는 최상급 부사를 사용하여 제자들이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강조하고 있다. 제자들이 이토록 놀란 이유가 무엇일까? 유대인들은 소유한 재물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증거(신 28:1-14)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많은 재물이 오히려 구원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예수님의 교훈은 그들의 상식을 깨는 큰 도전이었다. 굳게 믿어온 신념을 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묵은 신념을 깨야만 한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자기 확신은 구원의 걸림돌이 된다.구원의 누림하나님 나라에서는 심는 것 이상을 거둔다. 놀란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쭤본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모든 것을 헌신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대한 보상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의 대답은 장차 새롭게 될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29절)라고 약속하신다.당시 유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자들은 가족에게 버림을 받기도 하고, 가진 재산을 잃기도 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헌신한 자들에게 반드시 보상이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여러 배’로 번역된 ‘헤카톤타플라시오나’는 일백이란 뜻을 지닌 ‘헤카톤’과 형성하다는 뜻의 ‘플랏소’의 합성어다. ‘여러 배’보다는 ‘백 배’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뜻에 가깝다. 문자적으로 딱 100배의 의미겠는가? 예수님과 동행하며 영생을 누리는 구원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사람들은 먼저 되기를 좋아한다. 누가 먼저 되고 누가 나중 될 것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무조건 먼저 된 자리에 선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순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어디든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막연한 구원을 실제로 누리기 위해서 내가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영광 목사((The Story Church)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천국에 합당한 자
2021-02-24
마태복음 19장 13-22절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천국은 어린 아이들의 것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 모여 천국을 이룬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려왔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할 권위 있는 분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안수를 받고자 하였다. 당시 사회는 어린 아이를 존중하지 않았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사역이 어린 아이들로 인해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이를 데려온 사람들을 꾸짖었다(13절).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의 중요성을 ‘용납’과 ‘금하다’라는 단어로 표현하셨다(14절). ‘용납하고’(아페테)란 능동태 명령형으로서 ‘상관치 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는 뜻의 강한 요구이다. 그리고 ‘금하지 말라’의 원어 ‘메콜뤼에테’는 강한 부정의 의미를 지닌 ‘메’ + 현재 명령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당장 그만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그들을 제재하는 일을 당장 포기하라’, ‘당장 허락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 정당하다는 뜻이다.또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란 말은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 모여야 천국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어린 아이들도 공동체에 속하므로 아이들을 받아들여 진지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구체적인 헌신과 사랑을 표현하는 자“행위는 존재를 따른다.”(Agere sequitur esse.) 종교심이 깊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질문한다(16절).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권면하신다(17-19절). 이에 부자 청년은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답한다(20절).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의 핵심 문제인 재물 포기를 거론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온전하게 되려면 재물을 팔고 와서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21절).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근심하면서 돌아갔다(22절). 부자 청년은 자신의 선행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헌신과 사랑의 행위였다. 물질을 우선순위로 두고 사는 사람은 물질을 주인으로 섬기기에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말은 부자 청년이 지닌 치명적인 과오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사실 ‘영생’이란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오직 하나님의 지적이고 선택적이며 개방적인 은총에 의해서만 부여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부자 청년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어떠한 선행을 쌓아야, 메시야의 나라에서 그 영생을 쟁취할 수 있는지 질문하였다.부자 청년이 이러한 왜곡된 생각을 한 데는 그 당시 랍비들의 그릇된 구원관 교육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청년은 그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메시야의 나라에서 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고상한 행위법을 예수님께 물었다. 그러나 영생을 얻는 길은 바리새인들처럼 규율을 준수하는 데(doing)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은 어린 아이처럼 절대 선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수한 영혼과 순종의 마음을 지니는 겸손한 존재가 되는 데(being)에 있다.나는 과연 천국에 합당한 자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은우 목사(대구평강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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