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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결산을 기다리는 청지기
2021-03-15
마태복음 25장 14-30절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청지기로서의 부르심우리는 청지기로 부름을 받았다. 오늘 본문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질문은 “왜 주인은 모든 종에게 똑같이 자신의 소유를 맡기지 않았는가?”이다. 왜 주인은 각기 그 종의 능력대로 자신의 소유를 다르게 맡긴 것일까?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불공평하게 느낄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나면서부터 평생 치유하지 못할 장애를 갖고 태어나서 불편하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오늘 본문은 이런 우리의 질문에 전혀 답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인생은 주어진 것이고, 우리는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할 청지기라는 것을 가르쳐 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질문에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성경의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된 것이냐고 제자들이 물을 때,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요 9:3).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일일지라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하시는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불평하기보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도록 청지기로서 부름을 받아 사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내가 가진 것이나 환경 때문에 속상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고자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가?충성으로 평가되는 청지기지금 우리 자신을 ‘충성’이라는 지표로 평가해야 한다. 본문을 대충 읽으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나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좋은 결과를 내었기 때문에 주인이 칭찬한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결산의 날에 칭찬을 받았던 이유는 그들의 충성이었다(21, 23절). ‘충성된(πιστέ, 피스테)’이란 말은 통상 신실함으로 번역되거나 명사형으로 쓰여 ‘믿음’으로 번역하는 단어이다. 믿음 생활과 충성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을 보여준다.한 달란트를 가진 자가 혼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책망받는 것이 아니다. 그의 (충성되지 못한) 악하고 게으른 마음 때문에 책망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되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지막 날 평가받게 될 것은 충성이고, 우리가 지금 스스로 점검해야 할 것도 충성이다.충성으로 평가한다면 나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마지막 날만 기쁘지 않고 마지막까지 기쁘게 사는 청지기충성된 청지기로 사는 사람은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무엇인가를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 우리가 각자에게 주신 것을 어떻게 충성스럽고 신실하게 사용했는지를 하나님이 계산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악하고 게으르게 사용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그러나 마지막 날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그날만 고통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 내내 악하고 게으른 종들은 그들이 당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마지막까지 신실하게 하나님이 주신 것을 충성되게 사용하는 사람은 주님의 칭찬 덕분에 최상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 내내 주님의 기쁨을 머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나에게는 기쁨이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성호 목사(따뜻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마침내 드러나는 슬기
2021-03-14
마태복음 25장 1-13절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현재가 되는 미래확실한 미래는 현재가 된다. 1세기의 팔레스타인 혼례예식을 정확하게 복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비유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혼례식은 신랑의 집에서 치러진다. 신랑은 신부의 집에 찾아가서 신부를 데리고 올 것이다. 신부의 들러리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기름을 채운 등을 준비하여 신랑이 오는 길을 밝혀줘야 한다.그러나 열 명의 들러리 중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 슬기로운 다섯 명의 처녀는 기름을 담아 등을 가져갔지만, 미련한 자들은 신랑이 생각보다 늦어지자 심지어 잠이 들어 버렸다. 이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이 오자 급히 기름을 빌려보고자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기름을 사러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신랑은 그새 기름을 잘 준비하여 등불을 밝히던 지혜로운 다섯 처녀를 데리고 신랑의 집으로 가 혼인 잔치를 열었다.이것은 천국의 비유다(1절). 천국의 문이 기름을 준비한 자에게 열려있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닫혀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기름이 성령을 의미하든, 은혜를 의미하든, 행함 있는 믿음이나 선행을 의미하든,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우리는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 종말에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는 저 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맞이하게 될 확실한 미래는 현재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확실한 미래는 더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슬기롭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마침내 드러나는 슬기미련한 자가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신랑은 예상보다 늦게 온다. 심지어 밤중에 온다. 보통 혼례식이 초저녁에 열렸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신랑은 예상할 수 있는 시간보다 매우 늦게 온 것이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도 잠이 들었을 정도니 신랑은 매우 늦게 도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5절).신랑이 더디 왔다는 사실은 천국을 기다리는 일이 인내와 참을성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늦어진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오히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기름을 충분하게 준비하지 못한 자들의 미련함은 보이는 미련함이 아니다. 그들의 미련함은 신랑이 더디 왔기 때문에 드러나게 된 미련함이다.만약 신랑이 예상대로 왔다면,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사람이 오히려 더 미련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미련한 자들은 기름을 준비한 자들을 미련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신랑이 더디 왔기에 누가 진정으로 슬기로운지, 미련한지가 밝혀진다. 그저 마지막까지 깨어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철저히 준비하는 자가 자신의 슬기로움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나의 하루하루는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성호 목사(따뜻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마지막 날이 두렵지 않은 삶
2021-03-13
마태복음 24장 36-51절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예측 불가능한 종말우리는 마지막을 예측할 수 없다. 예수님은 앞서 종말의 징조에 대해서 알려주셨지만, 종말의 때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하늘의 천사도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도 모르신다(36절). 그날을 예측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도 모르시는데 누가 안단 말인가! 그날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만약 집주인이 도둑이 오는 시간을 알 수 있다면, 그 시간에만 조심해서 집을 지킬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종말의 때를 예측하는 행위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위험하다. 종말의 징조를 통해 종말의 때를 지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종말의 때가 더디올 것으로 예측하는 행위도 위험하다.노아의 때에 인자가 임함같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종의 주인이 오는 것 같이 마지막 날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 날이 두렵지 않은 오늘을 살아야 한다. 종말을 예측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에 불성실함이 있을 수 있다.나는 왜 마지막 때를 궁금해 하는 것인가?확실한 심판마지막 때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마지막 날의 심판은 분명하다. 그날에는 반드시 방주에 들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받아들여지는 사람과 버려지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사람과 가진 모든 것을 잃을 뿐 아니라 외식하는 자들이 받은 혹독한 저주를 받을 사람이 있다(마 23:13-36).심판은 가혹하고 분명하다. 조금의 자비도 없다. 중간도 없다. 확실히 둘 중에 하나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복음은 가혹한 심판도 넉넉하게 견디게 하는 은혜다. 그러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는 은혜는 없다. 우리는 확실히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이 두려움이 우리를 은혜로 이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 날이 두렵지 않은 오늘을 살아야 한다. 확실한 심판을 두려워할 때 은혜를 붙들기 때문이다.내가 붙드는 은혜는 무엇인가? 죄를 방관하게 하는 은혜인가? 죄를 미워하는 은혜인가?청지기의 삶청지기가 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있으라(γρηγορεῖτε, 그래고레이테), 준비하고 있으라(γίνεσθε ἕτοιμοι, 기네스떼 헤토이모이)라는 동사는 현재 명령형으로 반복되어 사용된다. 종말을 준비하는 것이 종말에 다다른 어느 때에 일어나야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일상에서 일어나야 함을 느끼게 해주는 표현이다.종말을 잘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오늘을 잘 사는 사람이다. 내가 청지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주어진 시간을 살고, 맡겨진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 청지기의 삶이다. 특별히 이 사명이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일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45절).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나는 오늘 내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영육 간의 양식을 나눠주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성호 목사(따뜻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비상벨이 울리면 결정해야 합니다
2021-03-12
마태복음 24장 15-35절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비상벨이 울릴 때비상벨은 위험하다는 신호이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마지막 때의 비상벨이 어떤 소리로 울릴지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다니엘의 때와 같이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게 될 때(15절)가 멸망의 시작임을 말씀하신다. 인용하신 말씀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제사를 없애고 우상을 세웠던 당시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때가 바로 경보기의 비상벨이 울리는 때이다.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게 되는 것에 대한 의견은 학자마다 분분하다. 어떤 학자들은 로마 총독이 성전 안에 건립한 신상으로 해석하였다. 실제로 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신성시되는 장소인 성전에 로마의 신상이 세워지는 것만큼 가증한 일도 없었다. 또한, 예루살렘이 로마 군인에게 에워싸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그러나 앞서 9-12절에 언급한 교회 분열의 맥락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곧 하나님의 전인 교회와 교회로 세워져야 할 우리 내면의 상태를 분열시키는 거짓 선지자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가증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는 ‘브델뤼쏘마이’로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을 의미한다. 곧 교회와 성전이 세워져야 할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로 인하여 분열될 때, 그 상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역겹고 혐오스러운 상태라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위기이며 산으로 피해야 할 때이다.이와 같은 때, 경고의 비상벨이 울릴 때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산으로 도망해야 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산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도 산이었으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도 산이었다. 그로 인해 산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의 근원으로 인식된다.교회가 분열되고, 성전이 세워져야 할 우리의 삶이 분열되는 위가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피하여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의뢰하여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단, 산으로 올라갈 때 반드시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집안에 어떤 물건도 가지러 가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신다. 위기는 결코 기다려 주지 않으며, 한순간의 미련도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면 안 된다. 하나님을 찾을 때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야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 이와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고의 순간을 분별해야 한다.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거룩한 곳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 있더라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멸망의 자리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나는 신앙의 위기가 올 때,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선택받은 자주님의 말씀을 듣고 분별하는 자들이 마지막 때에 선택받을 수 있다. 주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환난들이 닥쳐올 때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24절).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이 먼저 택함을 받지 않는 자들을 미혹할 것이라는 말이다. 또 가능하면 택하신 자들마저도 미혹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행히 이 말은 반드시 미혹 당하게 될 것이라는 완료형이 아니라. 가능성을 뜻하고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그 말씀대로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면,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 당하지 않을 수 있다.오류로 인해 잘못 울린 비상벨들은 진짜 재난 상황에서 생명을 잃게 할 수 있다. 이 역시 오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을 갖고 그저 머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비상벨에는 오류가 없다. 그 비상벨이 울렸다면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이대로 그 자리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동수칙대로 움직일 것인가?창세로부터와 이후에도 없을 환난의 시간이 닥쳐오기 전 비상벨이 울렸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움직여야 한다. 환난의 기간이 감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미혹하는 자들을 피해야 한다. 이곳저곳에서 “그리스도다” 하는 이들이 큰 기사와 표적으로 등장할 때 그들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마지막 때임을 깨닫고 더욱더 힘써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힘겹고 괴로운 환난의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를 견뎌내는 성도들에게는 비로소 선택받은 자가 되는 은혜가 있다.“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31절). 주님이 오시는 마지막 그날까지 견디고 인내하는 택함을 받은 자들을 주님께서 모으신다고 하신다.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연하여 지면 여름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깨닫듯(32절), 주님께서 말씀하셨듯 비상벨이 울릴 때 주님이 문 앞에 오셨음을 깨닫고(33절), 환난을 견뎌내야 한다.나는 우리를 미혹하는 자들을 분별할 영적 분별력이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조병옥 목사(움직이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마지막에 웃는 자
2021-03-11
마태복음 24장 1-14절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지막 때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의 일을 언급하기에 앞서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신다. 당시 성전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집과 같은 곳이었다(마23:38). 그들로 인해 성전은 왜곡되었고 우상화되어 있었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감람산에 올라갈 때까지 제자들은 뒷말을 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3절). 주님께서는 왜 마지막 때를 말씀하시기에 앞서 성전의 파괴를 말씀하셨을까?앞서 말한 대로 성전은 본질적인 의미를 잃은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온갖 죄악들이 판을 치며, 용인되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곧 주님께서 보실 때에 당연히 파괴되어야 할 것이었다. 온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왜곡되고 부정해진 교회를 허무는 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때의 요약된 모습이다. 참된 것의 세워짐을 위해 거짓된 것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다.이것은 마지막 때의 비유를 통해 원수들이 뿌린 가라지를 다 자랄 때까지 뽑지 않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마 13:29). 추수할 때에 다 자란 가라지는 알곡과 더욱 선명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를 말씀하실 때 미혹 당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신 이유가 그것이다.마지막 때에는 미혹하는 자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성도 곁에 숨어 있다.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거짓 증거를 바탕으로 성도를 미혹한다. 마지막 때는 그렇게 거짓과 진짜가 구별되고, 거짓이 무너지고 진짜가 세워지는 때이다.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진짜일까? 가짜일까?마지막에 웃는 자마지막 때에 있어야 할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끝이 온다. 본문을 보면 두 가지 시점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시간을 의미하는 ‘때’라는 단어이다. 두 번째는 결말을 의미하는 ‘끝’이라는 단어이다.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징조를 알기 원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의 모습을 말씀하신다.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며, 난리가 일어나며 전쟁과 기근, 지진이 일어난다. 그것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향한 핍박이 시작됨을 말씀하셨다. 또한, 불법이 가득하여 사랑이 식은 시대가 도래한다. 이때가 마지막 때이다.주님이 말씀하시는 그때는 성도들은 웃지 못하는 때이다. 성도들을 미혹하고 핍박하는 무리가 웃는 때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주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절). 왜냐하면, 마지막 때가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이 모든 일이 있어야 드디어 끝이 난다. 그리고 그 끝에 웃는 자는 따로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 끝에 웃을 수 있는 자들은 누구일까? 환난과 미혹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견딘 자들이다(13).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난과 핍박을 견디며 즐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끝이 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고난으로 인해 믿음을 포기한 적이 없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조병옥 목사(움직이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일곱 번째 저주
2021-03-10
마태복음 23장 29-39절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외식하는 자들겉모습을 꾸미는 자들에겐 저주뿐이다.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저주하신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여주는 마지막 외식은 무엇일까?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선지자들의 무덤과 비석을 치장하는데 굉장한 공을 들이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아니하였으리라”(30절). 라는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도덕성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저들의 교만함을 지적하신다. 그들은 “나는 우리 조상들과 달라, 나였다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였다. 후로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결국, 주님께서 말씀하셨듯 “나는 우리 조상과는 다르다”라고 말한 그들은 “스스로 증거함이로다”(31절) 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루었다. 그들 역시 조상의 자손인 것을 증명하는 삶을 살며 그 조상의 남은 죄의 분량을 채우게 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이와 같이 외식하는 자들이 받게 될 구체적인 저주에 대해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33절)라는 말씀을 하신다. 여기서 ‘피하겠느냐’라는 표현은 가정법적 표현임과 동시에 심판이 피할 수 없이 닥치게 되었다는 강조적 표현이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말씀과 같이 주께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구박하는 것(34절)으로 주님의 말씀을 이룬다.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모든 이에게 경고하신다. 그 경고의 말씀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 결국엔 저주의 성취로 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고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 회개하는 자들에겐 기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주님의 말씀 앞에 외식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저주의 실체주님의 저주를 두려워해야 한다.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어지는 저주의 실체는 아벨의 피로부터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돌아가게 되는 것(35절)이다. 이 말씀은 저들의 조상에게 죽임을 당한 의인의 피에 대한 책임이 그대로 전가되었음을 뜻한다. 공동번역에서는 ‘피’를 ‘핏값’으로 번역하여 조상들의 악행에 더불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악행의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말하였다.또한, 저주의 대상을 바리새인과 서기관에서 이 세대(36절)로 확장 시키신다. 비단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국한된 저주가 아니다. 율법주의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며 회개하지 못하는 모든 세대에게 저주가 있음을 최종적으로 선언하신 것이다.그렇게 저주를 마치신 주님께서 한탄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37절). 한탄스러운 주님의 외침에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주님의 심정이 담겨있다.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할 그들의 삶의 터전은 황폐하여 버린 바 되어 주님을 탄식하게 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게 되는 구원을 잃은 자들이 돼버리게 된다.주님의 저주는 폭력적이지 않다. 저주를 두려워하여 돌이키는 자에겐 저주받은 자에게 주어지지 못하는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주어진다.나는 주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조병옥 목사(움직이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성도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2021-03-09
마태복음 23장 13-28절13-1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성도의 사명성도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연결이 실력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으며 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을 잘 연결해주는 사람이 실력 있는 사람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뜬 이유는 결국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성도는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고, 또한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사람이다. 그것을 전도라고 하고, 혹은 삶이라고 한다. 성도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도의 사명은 잘 연결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연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단절시켰다. 막아서는 역할을 했다.마태복음 23장 13-33절까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일곱 번의 화를 선언하신다. 마태복음 안에 있는 숫자들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그중 7이라는 숫자도 그렇다. 예수님은 완전수 7을 사용해서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연결의 실패다.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를 단절시킨 죄를 가장 먼저 지적하신다.“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천국 문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막는다.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해 사람을 붙들었다가, 더 지옥의 자녀가 되게 한다.”그들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단절시켰고, 잘못된 삶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단절시켰다.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해주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 죄에 대해서 엄하게 말씀하신다. 여기서 ‘화 있을 진저’는 ‘얼마나 큰 고난을 겪게 될지’ 혹은 ‘얼마나 끔직한 고난이 닥쳐올지’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만큼 큰 잘못이라는 의미다.성도는 장애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이어주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고, 하나님을 알려 준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 가깝게 지내도록 살아간다. 성도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다.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성도는 하나님을 소개해야 한다. 다리 놓는 삶이 되려면 하나님을 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 돈에 집중하게 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했다. 성전으로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성전의 돈으로 맹세하면 지키라고 말했다. 기도하는 드림보다, 헌금하는 드림만 강조했다.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에게 집중하게 만드셨다. 심지어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선택하신다. 그 십자가가 다리다. 오로지 하나님에게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다리가 된다. 성도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이다.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다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본질은 요란하지 않다
2021-03-08
마태복음 23장 1-12절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본질본질은 요란하지 않다. 가짜의 특징은 화려하다. 진짜가 아니기에 자신이 없다. 그래서 화려하게 본인을 꾸민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은 화려하다. 누가 봐도 대단해 보인다. 그들의 가르침을 들으면 입이 쩍 벌어진다. 그들의 복장도 화려하다. ‘경문’이란 히브리어로 ‘테필린’인데 신명기 6장 8절 말씀에 근거해서 생긴 관습이다. 말씀을 손목과 미간에 두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적은 종이를 작은 상자에 담아 손목과 미간에 묶고 있었다. ‘옷술’을 길게 한다는 말은 민수기 15장 38-41절과 신명기 22장 12절의 말씀 때문에 시작되었다. 파란 실과 하얀 실을 꼬아서 만든 후 겉옷의 네 귀퉁이에 달았던 술이다. 히브리어로 ‘지지트’라고 부른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옷술을 크게 해서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늘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는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 속에는 속이려는 몸부림이 들어 있다. 본질이 빠진 텅 빈 노력이 들어 있다. 본질은 요란하지 않다.예수님의 탄생은 요란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겸손했다.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주로 사역을 감추신다. 감추려고 하는데 드러난다. 진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요란함 속에 감춰지면 안 된다. 요란함을 내려놓아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진실한 신앙하나님께 인정받아야 진짜다. 바리새인은 너무나 요란하고 화려해서 스스로 속았다. 사람들의 대접과 인정에 속는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처럼 우쭐한다. 우리의 신앙은 요란함이 아니다. 본질을 추구하는 진솔함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다.사람에게 인정받으려면 자꾸 꾸미게 된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진실하게 된다. 신앙은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진솔하게 인정할 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바리새인과 같은 겉모습의 화려함은 내려놓고, 소박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진실함이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화려함과 요란함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사랑하는 삶이 믿음이다
2021-03-07
마태복음 22장 34-46절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계명사랑하는 삶이 믿음이다. 성숙은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이 살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삶이기 때문이다. 교리를 많이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칠판에 쓰여진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삶에 쓴 내용은 기억에 남는다. 솔로몬의 지식이 신앙을 지켜주지 못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앎이 믿음은 아니다.성경 교리를 누구보다 아는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의 앎은 100점인지 모르지만 삶은 0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말씀으로 예수님을 옭아매려 했다.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지를 묻는다. 그들의 질문에서 말하는 ‘크다’는 헬라어 ‘메갈레’로 가장 크다는 의미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형태는 질문인데 실상은 도전이다. 이미 자신들이 알고 있는 답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답은 알고 있는데, 그 답과 다르게 행동한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사랑의 말씀으로 도전하고 있다.그러나 예수님은 말씀대로 사셨다. 이 본문은 예루살렘 입성 다음 사건이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살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오셨다. 예수님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다. 예수님은 사랑을 위해 예루살렘에 오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사랑의 말씀으로 미움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큰(메갈레) 계명은 무엇인지 아는데, 큰 계명을 작게 여기며 살고 있다. 믿음은 삶이다. 삶 중에서도 사랑하는 삶이다. 사랑하는 삶이 바로 믿음이다.예수님의 질문하나님께 고정되면 흔들리지 않는다. 예수님께 계속 질문하던 사람들이 모였다.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이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신다.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대하여 질문하신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데 다윗이 왜 주라고 칭했는가?” 예수님이 원래 말씀하실 때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메시아’로 질문하셨다. 헬라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번역이다. 마태복음은 그리스어가 교회에서 통용될 때 쓰였기 때문에 ‘메시아’라는 용어 대신 ‘그리스도’를 사용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에 대한 질문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더욱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당시에는 신앙의 중심 주제였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앎의 뿌리가 든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한 번 질문에 흔들리고 무너진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실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신앙은 나의 ‘앎’에 달려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심’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면 흔들리고 방황을 할 수밖에 없다.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성도는 내 생각으로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한다. 그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나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앎보다 삶이 우선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부활을 논쟁하다
2021-03-06
마태복음 22장 23-33절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사두개인들의 소모적인 질문사두개인은 어리석었고 예수님은 지혜로우셨다. 사두개인들은 지극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다르게, 부활을 믿지 않았다(행 23:8). 그랬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부활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을 시작한다. 계대결혼 제도를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반박하려 한다.계대결혼이란 형이 자손 없이 죽었을 경우,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낳은 첫 아이를 죽은 형의 아들로 간주하여 기업을 잇는 제도다.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했다고 단언하셨다. 그들의 관심은 부활에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소모적인 논쟁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에 흠집 내기를 원했다.이는 불신 현대인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태도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가지고, 설령 성경 지식을 많이 알아도 그 안에 담긴 목적과 의도에는 무관심한 채 궤변을 늘어놓는다. 자기 생각에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본심이나 진리의 목적과 어긋나는 모든 궤변과 질문은 비본질적이며 소모적이다.물론 우리는 불신 현대인들과 충분히 대화하며 온유하고 따뜻한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진리를 수용하려는 조금의 마음도 없이 이야기만 늘어놓기 좋아하는 대화는 결국 평행선을 그릴 뿐이다. 대화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고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문에도 현답을 주시는 분이시다. 나는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나만의 생각에 가로막혀, 더 깊은 진리의 은혜를 깨닫기를 거부하고 있진 않은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힘쓰는가?부활의 확실성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잘못은, 성경과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구절에 사용된 헬라어 ‘메 에이도테스’는, 원인을 나타내는 분사형으로써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사두개인들의 실상은, 그들 자신의 정경 즉 모세오경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신다.부활 때에는 결혼이 필요 없다. 우리의 몸도 질적으로 바뀌게 된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 인류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허락하신 제도이지만 천국에선 그렇지 않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고 천국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져 가는 중요한 공동체이지만, 천국에서는 더는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 천국은 말 그대로 천국이기 때문이다.예수님은 출애굽기 3:6절을 인용하시며 부활의 확실성에 관해 설명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실 당시는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 후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가리켜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들이 죽어서 사라진 게 아니라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을 믿고 천국을 소망한다.나는 부활의 영광에 소망을 두고 있는가? 혹시 이 땅의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쏟고 사느라, 천국의 영광을 소홀히 여기고 있진 않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정대진 목사(안산오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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