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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주님만이 나의 힘
2020-11-15
사무엘하 22장 29-51절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34.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7.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38.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 멸하였사오며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39. 내가 그들을 무찔러 전멸시켰더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 40. 이는 주께서 내게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를 내게 굴복하게 하셨사오며 41. 주께서 또 내 원수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내게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 버리게 하셨음이니이다 42. 그들이 도움을 구해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43. 내가 그들을 땅의 티끌 같이 부스러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밟아 헤쳤나이다 44.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5. 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그들이 내 소문을 귀로 듣고 곧 내게 순복하리로다 46. 이방인들이 쇠약하여 그들의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47.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8.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하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하시며 49. 나를 원수들에게서 이끌어 내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높이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51.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내가 주님을 의지하며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승리한다.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에 해당하는 ‘뺄로하이’는 “주를 의뢰하고”와 같은 의미이다. 강조의 용법으로서 다윗 자신이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뛰어넘나이다’에 해당하는 ‘아달레그’의 원형 ‘딸라그’는 “앞에 가로막힌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다윗이 높은 성벽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거나 앞으로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성벽이라도 뛰어넘을 정도의 용기와 힘이 생긴다는 비유적 표현이다.30절에 ‘성벽을 뛰어넘다’라는 이 표현은 앞서 ‘내가 …달리며’에 해당하는 ‘아루츠’와 마찬가지로 미래적 의미를 갖는 미완료형으로 쓰였다. 즉, 실제로 성벽을 방패 삼아 버티고 있는 적들을 반드시 섬멸하고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겠다라는 의미가 있다.다윗은 과거에 이방 족속들을 하나하나 정복할(8:1-14절) 당시 경험했던 하나님의 도움을 생생하게 기억하였다. 또한 미래에도 이러한 승리를 거둘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전쟁의 승패 여부가 군사력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한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실제로 승리의 행진을 계속할 수 있었다.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면 앞에 가로막혀 있는 어떤 사단의 장애물이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할 것이다.나의 힘이 되신 주님40절에 한글 성경에 나오는 접속사 ‘와우’를 ‘이는’으로 번역한 데서도 잘 드러나듯이 여기서 ‘와우’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으로, 이어지는 문장이 앞 절, 즉 다윗이 적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를 제시하는 문장임을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타즈네니’는 “띠를 띠다 (삼상2:4)”라는 뜻의 ‘아자르’의 강의형(Piel)으로 “당신이 나에게 띠를 띠었다”라는 뜻이다.여기에서 ‘타즈네니’는 계속적 ‘와우’ 다음에 사용되어 완료의 의미를 갖는데, 이는 적과 대치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전쟁을 위해 필요한 힘과 모든 준비를 이미 다윗에게 제공해 주셨음을 가리킨다.한편 ‘하일’은 보통 ‘군대(대하16:8절)’, ‘재물(에31:25)’을 가리키지만, 본문에서는 ‘힘(전10:10절;슥4:6절)’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33절에서도 ‘하일’이 사용되어 하나님 자신을 가리켰는데, 본문에서도 ‘하일’은 다윗에게 힘이 되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이에 따라 본문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당신께서 전쟁을 위하여 나를 능력으로 띠 띠웠기 때문입니다”이다. 이를 통해 다윗은 원수에 대한 승리의 원인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힘을 공급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다. 우리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한 것만이 참된 승리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주님만이 나의 힘임을 잊지 않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찬열 목사(노크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의롭다 여기시고
2020-11-14
사무엘하 22장 21-28절21.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22.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3.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4.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7.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의롭다 하신 분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에서의 ‘의’라는 개념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확실해진다. ‘의’에 해당하는 명사 ‘체다카’는 아브라함과 연관해서 성경에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창 15:6). 따라서 ‘의’는 인간의 완전한 행위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신뢰하는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을 가리킨다.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행위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여 하나님이 보상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세상적인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언약을 신뢰하는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의로 여기신 것이다. 그렇다면 21절에 ‘내 의’에 대한 대응 구절로 등장하는 “내 손의 깨끗함”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다윗의 모든 행위가 전혀 흠잡을 것 없이 완전히 깨끗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윗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했으므로 전반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는 데서 비롯된 다윗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아름답게 보셨다. 그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삼는 상을 베푸셨던 것이다.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분인 예수님께 인정받는 것이 참된 열매이다.구원하시는 분겸손한 자에게 복이 있다. 28절에 ‘곤고한’에 해당하는 ‘아니’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 성경에서는 주로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신 24:12;욥 24:9), 사회적으로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자(시 10:2;35:10;사 3:14), 겸손한 자(잠 16:19;슥 9:9), 심령에 통회하는 자(사 66:2) 등을 가리키는데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그러나 본문에서 ‘아니’는 악인에게 고난당하는 의인을 가리킨다(시 37:14;습 3:12).한편 ‘아니’는 70인역에서 ‘프토코스’로 번역된다. 이 용어는 산상 수훈에 그대로 등장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프토코스)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악인의 핍박이 있더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겸손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축복이 있을 것임을 나타낸다.이러한 점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위기의 상황마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여호와만 신뢰하는 겸손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를 원수의 손에서 안전하게 구원하셨고 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으로 세우셨다. 언제나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겸손하게 엎드리라. 그 이유는 그가 때가 되어 우리를 높이실 것을 믿고 더더욱 엎드리는 자에게 복이 있기 때문이다.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을 닮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복을 구해야 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찬열 목사(노크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하나님이 답이다
2020-11-13
사무엘하 22장 1-20절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2.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3.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4.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5.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6.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7.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8.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의 기초가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9.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10.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 11.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12. 그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13. 그 앞에 있는 광채로 말미암아 숯불이 피었도다 1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15.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시며 번개로 무찌르셨도다 16.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기초가 나타났도다 17.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8.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 19.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20.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성도는 하나님 품으로 피하는 사람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이고 요새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방패이고 구원의 뿔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구원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야샤’다. 다윗은 자신의 ‘야샤’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한다.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그의 선택을 통해 증명된다. 사울이 자신을 잡으러 왔을 때, 다윗은 그를 살려준다. 표면적인 이유는 ‘기름부음 받은 자’를 해치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내 삶의 구원자. ‘야샤’는 하나님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를 구원해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은 당당하게 결정한다. 잘못된 일과 타협하지 않는다.성도의 구원자도 하나님이다. 우리 영혼을 구원해주신 분이고, 동시에 우리 삶을 구원해주시는 분이다. 그러니 성도도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비록 손해가 찾아오고 아픔이 찾아와도, 구원자 하나님을 믿으며 당당하게 결정한다.안전한 상황을 찾기보다, 하나님 품을 찾는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선택을 한다. 성도는 어려움이 왔을 때 안락한 곳을 선택하지 않는다. 하나님 품을 선택한다.나는 지금 세상의 안락함보다 하나님 품을 선택하고 있는가?문제를 만나면 판을 흔들어라어느 대기업 면접시험에 나온 문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 운전 중, 당신은 버스 정류장에 갇힌 세 사람을 봤다. 병으로 신음하는 할머니, 당신을 치료해 준 의사, 당신의 이상형. 차는 단 한 명만 태울 수 있다. 당신은 누구를 태울 것인가?” 최고의 대답은 자신은 차에서 내리고 의사에게 자동차 키를 주어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도록 하는 것이다. 대신 본인은 버스 정류장에서 이상형과 함께 폭풍우 속에서 사랑을 만들면 된다.‘A’를 선택할 것인가? ‘B’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다. 판 자체를 흔들어야 좋은 답이 나온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판 자체를 흔드신다. 땅이 진동하고 하늘의 기초가 요동한다. 스케일이 다르다. 다윗은 문제 하나만을 놓고 기도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다윗을 지켜 주신다. 그런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윗은 이런 엄청난 고백이 담긴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믿음 생활을 하면서 눈앞에 문제 때문에 고민할 때가 많다. 그때 그 문제를 보지 말고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라. 문제가 아무리 많이 찾아와도, 우리 하나님을 이기지 못한다. ‘A’를 선택해야 하는가? ‘B’를 선택해야 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문제를 만나면 판부터 흔들어라!내가 선택을 고민할 때,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성도는 혼자 힘으로 살지 않는다
2020-11-12
사무엘하 21장 15-22절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1.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22.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하나님 나라는 함께 세우는 곳다윗은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승리가 그를 궁지에 몰았을 정도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너무 많은 승리로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런 다윗의 승리는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 용사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들은 다윗과 함께 싸웠고, 다윗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했다.하나님 나라는 혼자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함께 세워가야 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인디언 격언처럼, 믿음의 여정은 함께 걷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바울도 늘 다른 사람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다. 예수님도 전도여행을 보낼 때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서 보냈다. 함께 하는 것이 능력이고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내가 더욱 함께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골리앗을 진정 죽인 자?19절에 엘하난이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다고 말한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아우 라흐미’라는 말이 없다. 그 말을 빼고 19절을 읽으면 “베들레헴 살마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을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이다.골리앗은 누가 죽였을까? 다윗이 죽였을까? 엘하난이 죽였을까? 그런데 엘하난의 특징이 우리가 아는 누구(다윗)와 비슷하다.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이다. 엘하난도 베들레헴 사람이다. 결정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비슷하다. 엘하난의 아버지 이름 야레는 히브리어 읽기에 따라 ‘이새’라고도 읽을 수 있다. 히브리어 알파벳 ‘쉰’을 잘못 표기하면 ‘아인’과 ‘레쉬’ 두 단어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ㅁ’을 ‘ㄷ’과 ‘ㅣ’로 착각할 수 있는 것처럼 같은 이치다.아인과 레쉬를 쉰으로 보고 읽으면, 엘하난의 아버지는 이새가 된다. 게다가 유다 전승에서는 다윗의 또 다른 이름이 ‘엘하난’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골리앗은 엘하난이라고 불리던 다윗이 죽인 것이 된다.정말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까? 아니다. 골리앗은 하나님이 죽이셨다.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골리앗을 물리쳤다. 그러니 엘하난이든 다윗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목하는 삶이 중요하다.신앙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신앙생활을 통해 ‘나’를 드러나고 있는가?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신앙은 삶으로 증명된다
2020-11-11
사무엘하 21장 1-14절1.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2.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3.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4.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5.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6.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7.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8.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9.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10.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11.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12.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블레셋 사람들이 벧산 거리에 매단 것을 그들이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13.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14.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신앙이 종교로 변질되면 ‘열심’만 강조이스라엘에 삼 년 동안 기근이 들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사울이 흘린 피가 기근의 이유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 기브온 사람을 죽였다.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 민족이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할 때 동맹을 맺은 민족이다. 하나님은 그 동맹을 인정해 주셨다.그런데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다. 성경에는 그 이유를 ‘열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열심’은 히브리어 ‘카나’로 어떤 대상을 배타적으로 사랑하는 열정을 말한다. 한마디로 집착하는 사랑이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착하는 사랑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다.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사울은 뭔가 ‘더 열심히’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 결과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까지 죽였다.하나님은 ‘열심’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많은 일보다 많은 사랑을 기대하신다. 삶에서 드러나는 ‘성령의 열매’는 없이 종교적 ‘열심’으로 봉사와 헌신 업적만 쌓는 모습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내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증거가 ‘헌신의 양’인가? ‘성령의 열매’가 드러나는 삶인가?억울함이 풀려야 삶이 풀림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로 했다. 사울 집안의 남자 일곱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주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그 일곱을 나무에 달아 죽였다. 그래도 여전히 기근은 계속된다. 기브온 사람들의 억울함은 풀렸는지 모르지만,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리스바’의 억울함은 남았기 때문이다.현명한 판단이란 억울함이 없게 만드는 판단이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리스바의 아들을 포함한 사울 집안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준 후에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 주셨다.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하셨다. 억울함을 들으신다는 말이다. 우리의 억울함도 들으시겠지만, 우리가 억울하게 만든 사람들의 기도도 들으신다. 억울함이 풀려야 삶이 풀린다.나의 말과 행동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은 없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명수 목사(사랑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무력을 이기는 지혜력
2020-11-10
사무엘하 20장 14-26절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20.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23.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24.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무명하나 지혜로운 여인의 대안아무리 강한 힘도 탁월한 지혜 앞에서는 힘을 못 쓴다. 세바는 이스라엘 곳곳을 다니면서 세력을 모으려고 애썼다. 아벨부터 베림까지 구석구석 다니면서 사람들을 모았다. 이에 세바를 따르는 사람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성안에 모였다. 하지만 요압의 군대는 세바가 숨어 있는 벧마아가의 아벨 성을 포위했다. 아벨 성은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5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했으며 단에서 서쪽에 있었다. 요압은 성을 포위하여 함락시킨 경험이 있다(삼하 11:1, 12:26-31).요압의 군대가 아벨 성을 공격하고자 할 때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큰 소리로 요압에게 면담 요청을 한다. 요압이 가까이 가자 여인은 정중하게 호소한다. 지혜로운 여인은 먼저 아벨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한다. 그 여인은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고 하고 거기서 해결되었음을 강조한다.그런 아벨을 공격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과거와 전통을 멸하는 길임을 호소한다. 그것은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는 반역임을 일깨운다(19절). 왜냐하면 아벨은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 같기 때문이다. 즉 조상 대대로 지켜온 전통과 상징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다. 더 나아가 지금 남북이 갈등과 분열 속에서 신경전을 벌이지만 자신들은 화평을 사랑하고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백성임을 강조한다. 즉 정치와 전쟁과는 상관없는 그저 평화를 사랑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설득한다.이에 요압은 지혜로운 여인의 말을 듣고 해명하기에 바쁘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며 삼키거나 멸하려는 것이 아님을 변명한다(20절). 어쩔 수 없이 아벨을 공격하려던 이유는 다윗 왕을 대적하는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 때문이라며 해명한다. 오히려 세바를 내주기만 하면 순수히 떠날 것을 약속한다(21절).여인은 세바의 머리를 성벽 밖으로 던지겠다고 제안한다. 여인의 지혜로운 제안을 성안의 백성에게 말하니 백성들은 즉각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져준다. 여인의 지혜로 세바 한 사람을 내어주고 아벨성 전체 백성을 살렸다. 요압은 약속대로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게 하고 자신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윗 왕에게 나아간다(22절).한 여인의 지혜로운 대안은 무력과 분노를 잠재우고 평화의 도시를 평화롭게 지킬 수 있었다. 정치적인 대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고한 사람들도 죽일 수 있었던 요압이었다. 세상은 개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력이 아니라 지혜다.인간의 죄와 사망의 권세는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통해서 해결되었다. 다스림은 힘이 아니라 지혜가 더 중요함을 보여준다. 어두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남을 굴복시키는 힘이 아니라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다.지금 나의 신앙생활에서 필요한 지혜는 무엇인가? 부딪히는 상황과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주변의 사람들을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섬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교회 사역 가운데 필요한 지혜는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민철 목사(남양주언덕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반역을 대하는 불합리한 태도
2020-11-09
사무엘하 20장 1-13절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3.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7. 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그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을새 11. 요압의 청년 중 하나가 아마사 곁에 서서 이르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가 누구이며 요압을 따라 다윗을 위하는 자는 누구냐 하니 12.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13. 아마사를 큰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가니라다윗과 적대자들문제가 해결되어도 위험 요소는 항상 존재한다. 다윗이 돌아왔으나 왕으로서의 영향력은 아직도 불안하다. 곳곳에 적대자들과 백성들의 민심이 이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방해꾼이 있는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인 세바(맹세라는 뜻의 이름)다. 성경은 그를 이름과는 달리 불량배라고 평가한다(1절). 아니나 다를까 세바는 자신들이 다윗과 나눌 분깃도 없고 이새의 아들에게 받을 유산이 없다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동한다. 이에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세바를 따른다. 세바로 인해 다시 분열에 휩싸였다. 이와 달리 유다 사람들만 요단강부터 예루살렘까지 다윗을 붙좇았다(2절).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어려운 시대이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때 항상 암초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암초는 무엇인가? 암초를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지금 붙좇으며 지켜야 할 신앙의 원칙은 무엇인가?예루살렘 본궁에 돌아온 다윗은 왕궁을 지키고 있었던 후궁들을 별실에 가두었다. 그들의 목숨은 살려 주었지만 그들이 죽을 때까지 찾지 않았다(3절). 그들을 위한 배려인지 아니면 진노인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후궁들을 수치스럽게 만든 압살롬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요압의 비겁한 속임수다윗은 북 이스라엘에 대비하여 압살롬의 군대장관 이었던 아마사에게 3일 내에 유다 사람을 집합시킬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아마사는 왕의 정한 기일까지 모으지 못하고 지체했다(4절). 이에 다윗은 즉시 아비새를 파송하여 아마사의 일을 대신시킨다. 즉시 다른 사람을 투입한 이유는 그만큼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왕국을 위협할 만큼 압살롬보다 더 악한 상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6절). 이에 다윗은 아비새와 요압의 지휘 아래 가장 용맹스러운 용사들을 파송한다(7절). 아비새에게 부여된 목표는 세바와 베냐민 지파의 반역을 제거하는 것이었다.왕의 군대가 예루살렘 근처 기브온 바위 곁에 이르렀을 때 아마사가 그들을 만나러 나왔다. 그때 요압은 마치 실수로 칼을 떨어뜨린 척한다. 평화의 인사를 하며 안심시킨 뒤 즉시 칼을 주워 아마사를 찔렸다. 평화의 속임수를 통해 평화를 깨뜨리는 살인을 저질렀다(10절). 요압은 세 사람을 죽였다(아브넬, 압살롬, 아마사). 아브넬(삼하 3:27)과 아마사에게는 속임수를 사용했고, 압살롬(삼하 18:14-15)은 혼수상태에서 죽였다. 요압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아마사를 살해 후 요압과 아비새는 세바를 뒤쫓았다. 요압의 청년 중 하나는 길 가운데 있는 아마사의 시체를 밭으로 옮긴 뒤에 옷을 그 위에 덮었다. 그때에 비로소 요압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요압을 따라 세바를 뒤쫓아갔다(13절).속임수가 일상이 되면 죄로 자란다. 죄가 익숙해지면 평화에 무감각하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무력만이 아니다. 반역을 제거하기 위해서 방법도 평화적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화평의 왕으로 오셨다. 십자가의 희생은 죄인과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져왔다. 의견이 다르거나 경쟁 관계의 사람들에게 처신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심지어 원수를 대할 때 지켜야 할 의무는 무엇인가? 지금 평화를 누려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민철 목사(남양주언덕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리더의 분별력
2020-11-08
사무엘하 19장 24-43절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다윗의 인간관계리더는 사람들을 대할 때 분별력과 아량이 필요하다. 다윗이 귀환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의 손자인 므비보셋은 다윗을 만나러 불편한 몸을 이끌고 먼 거리를 왔다. 다윗을 만나러 온 므비보셋은 수염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은 덥수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시바에게 모함 당했지만 (삼하 16:3) 다윗의 도피 생활 동안 애도하는 모습으로 지냈다. 그런 모습으로 다윗에게 충성스러움을 어필했다(24절).다윗은 판단을 보류하고 그런 므비보셋을 보면서 왜 자기와 함께 하지 않았는지 물어본다. 므비보셋은 왕과 함께 가려 했으나 시바가 자신을 속이고 모함했음을 하소연한다. 이전에도 죽은 목숨이었으나 다윗의 선대함으로 살았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면 어찌 염치없이 다시 선처를 바랄 수 있겠는가 하며 이번에도 자신의 목숨을 다윗에게 맡긴다(28절).다윗은 시바에게 속은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는 다윗이 곤경에 처했을 때 음식을 가져온 사람이었다(삼하 16:1-2). 결국 다윗은 양쪽에게 다 이로운 결정을 내린다. 시바에게 주었던 땅을 반반씩 나누도록 했다. 하지만 므비보셋은 다윗 왕이 안전하게 돌아왔으니 땅은 시바가 다 차지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지도자는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이유를 묻거나 혹은 상대방의 실수를 넓은 아량으로 덮어주어야 할 때도 있다. 요즘 무엇을 분별해야 하며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윗이 마하나임에서 망명 생활을 할 때 바르실래는 음식을 공급해 주던 사람이었다(삼하 17:27-29). 그는 나이가 팔십 세이며 큰 부자였다. 노구를 이끌고 이전처럼 계속해서 다윗을 지원하기 위해 요단까지 이르렀다. 이에 다윗은 이전의 은혜를 갚고자 바르실래에게 요단을 건너 예루살렘에 함께 갈 것을 제안한다(33절).바르실래는 자신의 연로함과 건강함의 문제를 들며 다윗이 기분 나쁘지 않게 정중히 사양한다. 대신 자신의 아들 김함을 데리고 가 줄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왕의 선대함을 자신의 아들에게 베풀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다윗은 바르실래의 소원대로 이루어 줄 것을 약속하며 바르실래를 축복하였다(39절). 이후에 다윗은 죽는 순간에도 솔로몬에게 바르실래의 아들들 에게 잘하라고 당부한다(왕상 2:7). 다윗은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며 끝까지 선대하였다. 잊지 못할 은혜는 무엇인가? 누구에게 어떻게 섬김으로 보답할 것인가?당시 이스라엘과 유다의 갈등은 골이 깊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진 것에 대해 분노하였다(41절). 반면 유다 사람들은 다윗이 자기들의 종친이기 때문에 오는 혜택은 당연하다고 여겼다(42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왕국에서 더 많은 몫을 가져 야하며 다윗을 모셔오는데 힘쓴 것은 자기들이라고 주장하였다(43절). 이들의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나중에 솔로몬의 죄와 결합해 분열 왕국으로 나뉘는 결과를 초래한다(왕상 12장 이하).갈등을 풀지 않으면 감정이 쌓여서 극한 결과를 초래한다. 분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할 때 연합이 일어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권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대신한 사랑의 의무였다. 공동체 안에 일어나는 갈등은 무엇이며 상대방에게 사랑으로 베풀어야 할 아량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김민철 목사(남양주언덕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다윗이 재건을 계획하다
2020-11-07
사무엘하 19장 11-23절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다윗이 유다를 택함충성된 자가 쓰임 받는다. 다윗은 혼란스럽고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야 했다. 여기엔 지혜와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다. 다윗은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해 유다 지파를 지목했다. 당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사독과 아비아달을 등용했고,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세세하게 일러주었다(19:11-12).다윗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현주소를 절감했던 후였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추구하며 신의나 의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앞으로 다윗이 잘 통치하기 위해 가슴 속 깊숙하게 새겨진 중요한 키워드는 곧 ‘충성’이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위해 변함없는 충성을 다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곧 유다 지파였다.다윗은 아마사를 먼저 보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게 했다. 다행히 다윗의 전략은 성공했다.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 같이 다윗에게 기울게 됐다(14절). 직전까지 보여줬던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던 정세는 다 뒤로 하고, 유다 지파는 다윗과 함께 같은 마음으로 나라의 재건을 위해 충성을 다짐하게 됐다.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돌들을 명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지만, 사람을 친히 동역자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곧, 영광스러운 인생인 것이다.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의 중요한 조건이 곧 ‘충성’이다. 과거 모세가 그랬고, 여호수아가 그랬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인물들은 다 하나님께 ‘충성’했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충성스러운 자를 찾고 계신다(마 25:23, 딤후 2:2).다윗과 시므이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다. 어느 정도 나라의 혼란이 잦아들자 시므이가 다윗을 급하게 찾아왔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패역한 일을 잊어달라고 다윗에게 간청한다(19절). 또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요셉 족속 중에 가장 먼저 달려와서 다윗을 영접한다고 말한다(20절).그렇다면 시므이가 했던 패역한 일은 무엇이었나?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열심히 저주했던 일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 다윗 앞에서 자신이 처한 족속 중에 가장 먼저 달려와서 왕을 알현하고 있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참 간사하다.이에 다윗은 매우 넓은 아량을 보인다. 물론 훗날 다윗은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벌하라는 유언을 남기긴 하지만(왕상 2:8~9), 당장은 시므이를 용서한다. 과거 시므이의 잘못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몰랐기에 할 수 있었던 치기로 봐준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돌려보낸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정말 맞다.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5분도 예측할 수 없고, 앞으로 될 일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따라서 변화무쌍한, 생각지도 못한 인생길에서 성도가 걸어야 할 발걸음은 오직 하나,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예수님께서 친히 길이라고 말씀해 주셨다(요 14:6). 그 길은, 모든 인생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바른 길, 참된 길이다. 어떤 인생도 자신의 길을 만들 수 없다. 다만 주어진 길을 따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길을 창조하신다.따라서 인생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밖에 없다. 지금 당장 내게 유익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길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길의 성격과 다르다면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지혜다. 오늘 하루도 이러한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구해야 한다.지금 내가 걷고 있는 ‘오늘 하루’의 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혹시 방향이 잘못되진 않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정대진 목사(안산오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깊은 슬픔에서 회복을 준비하다
2020-11-06
사무엘하 19장 1-10절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요압의 항의맡겨진 책임을 위해선 뼈아픈 질책도 받을 때가 있다. 다윗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반역을 제압했다는 승리의 기쁨과 안도감도 분명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만이 다윗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슬픔에 지배당한 다윗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백성들의 수고와 희생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에겐 그날의 승리가 기쁨이 아닌 슬픔으로 여겨졌고, 심지어 싸움에 패배해서 도망치는 사람처럼 부끄러움을 느꼈다(2~3절).이 소식을 들은 요압이 다윗 앞에 나선다. 그리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왕께서 이렇게 슬퍼하시는 건 왕의 부하들을 멸시하시는 겁니다. 차라리 우리가 패하고 압살롬이 살았다면 왕께서 더 기뻐하셨을 듯합니다.”이 말을 들은 다윗은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다윗은 한 아들 압살롬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들의 아버지이기도 하지 않은가! 너무 슬픔에만 잠겨있는 건 아버지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왕을 따르는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요압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제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왕으로서 마땅히 했어야 할 ‘당연한’ 행동이다. 이처럼 요압은 슬픔에 빠져있던 다윗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왕에게 한 말 속에 담겨있는 요압의 진의는 다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왕의 지위에 있는 다윗에게 왕의 책임 또한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따르는 자들이 많을수록 그 책임은 더욱 무거울 것이다.귀환을 준비성도는 인생의 연약함 속에서도 신실함을 추구해야 한다. ‘약삭빠르다’는 말이 있다. “눈치가 빠르거나, 자기 잇속에 맞게 행동하는 데 재빠르다”는 뜻이다. 지금 다윗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가 딱 그랬다. 얼마 전까지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다윗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압살롬을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승리하자 빠르게 태세변환을 한 것이다. 도무지 사람에 대한 예의나 의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약삭빠른 행동을 하고 있다.그들 중 한 사람이 서서 다른 백성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다윗이 했던 업적들을 다시 끄집어내면서, 다윗이 잠시 예루살렘에서 ‘나가셨으나’ 이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셔야’ 한다며, 백성들을 향해 “왜 이 일에 잠잠하고 있냐?”며 외친다. 참으로 낯뜨거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과 목숨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만 그런 게 아니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호산나!” 외쳤던 예루살렘 성 군중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낯빛을 바꾸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외쳤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떨까?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쉽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쉽게 비난하고 정죄하는 그들의 모습이 혹시 내게도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끝까지 신실하셨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똑같이 신실할 수 없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인간의 모습과 한계를 봤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그리고 세상을 향해 좀 더 신실한 삶을 결단하고 사는 게 마땅할 것이다.내 안에 있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오늘 나는 어떤 삶의 태도를 결단할 수 있겠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정대진 목사(안산오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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