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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슨: 팀 켈러를 떠나보내며
by Don Carson
2023-05-24
기리며: 팀 켈러(1950-2023)거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떠나보낸 지금 그로부터 배운 몇 가지를 숙고하려고 한다. 조만간 신중하고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소천 기사가 나오겠지만, 이 글은 그런 종류가 아니다. 나의 겸손한 목표는 그에 관한 몇 가지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아벨처럼 “죽었지만 여전히 말하도록”(히 11:4) 하려는 것이다. 켈러와 나는 직접 대면하기 전에 저술 프로젝트부터 먼저 공동으로 진행했다. 말씀 아래서 드리는 예배(Worship by the Book)라는 제목 아래, 교파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강해 사역에 깊이 헌신한 목회자들이 회중 예배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개요를 각자 한 장씩 맡아 길게 써내는 프로젝트였다. 켈러는 우리를 대표하는 장로교인이었다. 2002년 책이 나올 무렵, 나는 마침내 켈러를 만났다. 첫 미팅은 우리 두 사람이 다 연사로 초청된 런던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였고, 그다음은 뉴욕에서였다. 후자의 경우, 나는 다른 일로 프린스턴에 있었는데, 켈러가 고속 열차를 타고 뉴욕으로 오라고 초청했다. 우리는 노천 카페에서 만나 점심을 즐겼다. 살다 보면 가끔 만나자마자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 켈러가 내게는 그런 친구였다. 우리의 대화는 막힘이 없었다. 할 말이 없어 서로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신학, 교회의 현실, 고백적 복음주의의 강점과 실패, 더 많은 강해 설교에 대한 긴급한 필요성, 미국과 다른 지역의 현재 문화 및 기타 경향에 대한 분석, 특정 성경 구절의 의미, 영적 훈련 등등…. 이게 다가 아니다. 우리는 정말로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가족에 대한 부분도 들어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윔블던, PGA 투어, 월드 시리즈, 스탠리 컵, 또는 그런 것들과 비슷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켈리와 아내 캐시는 뉴욕 시절 내내 아파트에서 살았기에 그의 대화에 정원과 새소리, 꽃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스펄전과는 확실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그에게는 뒷마당 있는 집에 사는 남편이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아주 자주 우리는 전도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약 12년 전, 우리는 서로의 전도 여행을 나누기 위해서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선교 사업을 마치고 방금 돌아왔고, 나는 호주 멜버른에서 막 귀국한 시점이었다. 나와 비교해서 켈러가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야가 한두 개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복음 전도에서 어떻게 더 열매를 맺을 것인가라는 주제에 관한 전망은 그가 확실히 나보다 뛰어났다. 복음 전도는 우리를 지난 사반세기 뉴욕시에서 목격한 그의 놀라운 사역의 열매로 이끈다. 많은 설교자가 대형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모든 대형 교회를 똑같이 평가할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극히 소수의 교회만이 성경 문맹으로 가득 찬 고도로 세속적이고 도시적인 환경에서, 그것도 오로지 초신자의 회심을 통해서 대형 교회를 이뤄냈다. 켈러의 설교는 형태와 디자인이라는 특징에서 볼 때 강해였다. 그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성경 본문의 설명이다. 그가 텍스트의 단위로 보는 건 반절(half-verse)이나 난해한 표현이 아니라 한 단락 또는 장 전체였다. 그는 오래된 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 능력의 일부가 텍스트 적용에 쏟은 그의 노력의 결과로 달성되었다. 그가 다룬 주제가 단지 개인의 죄와 필요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설교에서 대규모의 도덕적이고 문화적 경향에 관한 통찰을 빼지 않았다. 구약의 선지자처럼 그는 주저함 없이 문화와 국가라는 문제를 거론했고, 단지 회개만이 아니라 정의를 촉구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질투했다. 그는 또한 성경 신학의 구조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의 궤적이야말로 사려 깊은 독자들을 거듭거듭 복음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듣는 이로 하여금 성경을 읽는 방법을 알게 하였다. 뉴욕 회중 대부분이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그의 설교는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건 그가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회중을 상대로 거의 12년 동안 설교한 결과였다.그의 독서량은 대단했다. 사회 분석과 시사 문제에 관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역사 신학, 주석, 그리고 광범위한 문헌을 탐독하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을 쏟았다. 일정 기간, 그는 매일 훈련의 과정으로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읽었다. (그가 기독교강요를 처음 읽은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또한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C. S. 루이스를 얼마나 철저하게 소화했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건 루이스의 신학을 흉내 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루이스의 이미지와 언어 사용 능력, 매력적인 변증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향한 헌신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졌다. 켈러 추종자 중 일부는 이 점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의 문화적 분석에는 매료되었는지 몰라도, 그의 설교가 얼마나 깊은 수준에서 역사적 신앙고백주의(historic confessionalism)에 묶여 있는지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설교는 항상 겸손한 경건 속에서 이뤄졌다. 그의 설교가 머리에서 멈추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는 논쟁이 고백, 기도,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깊은 감각을 대체하도록 절대 허용되지 않았다. 삶과 사역에 있어서 그가 암과 투병하던 마지막 몇 년은 그 어느 때보다 이 점이 더 통렬하고 예리하게 발휘되었다. 켈러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그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로 여겼던 사도 요한처럼, 담임목사님이 자신을 특별히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켈러 교회의 교인이 적지 않다. 이것은 제대로 된 양육을 받는 교회가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다. 동시에 차분함(cool)을 잃지 않는 목사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켈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냉정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가 냉정을 “잃은” 모습도 본 적이 없다. 더 넓게 보면, 그의 변증 설교가 특히 더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보다 더 정확하고 공정하게 상대의 주장을 요약하는 놀라운 능력 때문이었다. 점수를 따고 싶은 초보자의 유혹은 때때로 상대방을 이기는 자신의 능력 자체를 파괴하곤 한다. 그러나 켈러는 그런 유혹이 주는 함정에 단 한 번도 걸려서 넘어진 적이 없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똑같은 주장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일한 자기 수양과 기독교적 예의는 숱한 논쟁 속에서 변함없이 드러났다. 궁극적으로 The Gospel Coalition이 된 최초 협의회가 구성된 건 2005년이었다. 켈러는 TVM(Theological Vision of Ministry)이라고 부르는 문서의 초안 작성을 요청받았다. 최초 협의회는 약 마흔 명의 목회자로 구성되었고, 대부분은 TVM에 어떤 변화가 담겨야 하는지에 관해서 확고한 의견을 가진 고집 센 사람들이었다.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작업물이 이런저런 도전을 받을 때, 짜증 내는 방어적 태도로 후퇴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켈러에게서 그런 기미를 본 적이 없다. 협의회원 중 한 형제가 켈러가 초안을 짠 TVM에 대해서 무려 쉰 개가 넘는 개선안을 들고 왔다. 켈러와 그 형제는 그것들을 하나씩 검토했다. 대부분의 경우에 켈러는 그가 제안한 변경 사항이 개선 사항임을 유쾌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그 형제가 제기한 비판적인 의견에 감사했다. 켈러의 태도는 그 형제의 제안이 TVM의 취지를 약화시킨다고 느끼는 부분을 만났을 경우에 더 큰 힘을 발했다. 켈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애초 취지를 밀어붙였고, 그러면서도 반대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의 태도는 TVM(및 기타 문서)의 보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향후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의 특징이 되었다. 우리는 많은 일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서로에게서 배웠다. 협의회 구성원은 모두가 다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기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TGC 위원회 회의가 올해 가장 좋아하는 회의라고 켈러는 여러 번 말하곤 했다. 그게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켈러가 보여준 상호 작용의 모범사례가 회의 참가자의 관계의 질 속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에는 좋은 유머 감각도 도움이 된다. 두 번째 협의회 회의(2006년)에서 내 옆에 앉아 있던 켈러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던 노트북 화면을 내게로 돌렸다. 어떤 신학적 요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켈러가 다른 참가자를 놀라게 한 어떤 말을 한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켈러의 말을 요약해서 비서 중 한 명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비서는 그 내용을 즉시 온라인에 올렸다. “놀라지 마세요! 팀 켈러가 방금 이러저러한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에서 그 내용을 발견한 켈러의 비서가 여전히 내 옆에 앉아 있는 그의 상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목사님, 정말로 이렇게 말했습니까?” 켈러가 말한 내용이 다시 그에게 돌아오는 데에는 채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찮은 사람이라면 신뢰를 저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런 일에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한데, 켈러는 오히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웃어넘겼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약속을 강화했다. “협의회 회의 중에 나온 내용은 협의회장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 (그 후 몇 년 동안 이 간단한 규칙이 과연 얼마나 제대로 지켜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참가자 모두와 공유한 켈러의 웃음소리는 우리가 그 순간을 잘 이겨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켈러가 농담을 위한 농담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우스꽝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캐시,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캐시를 향한 켈러의 배려를 언급하지 않고 나의 회고를 끝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켈러는 설교에서 지나가는 말로라도 아내를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건 그와 나눈 사적인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켈러에게 캐시가 이렇게 생각하더라, 캐시가 은혜와 사역에 관해서 이런 말을 했다는 식의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는 농담으로라도 켈러가 그녀에 대해 무시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단 한 번도, 그렇다,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켈러는 아내를 사랑했고 소중히 여겼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십 년 함께하면서 그들은 서로 더 가까워졌고, 켈러가 병마가 주는 고통의 마지막 시기에 다다랐을 때 그들의 사랑은 절정에 달했다. 병에 걸리고 켈러와 캐시는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부둥켜안고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때보다 서로를 더 사랑한 적은 없었다. 이건 켈러가 내게 털어놓은 이야기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오늘 우리는 위대한 거인 한 사람을 잃었다. 원제: Don Carson Pays Tribute to Tim Keller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팀 켈러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by Ray Ortlund
2023-05-20
기리며: 팀 켈러(1950-2023)“성도들이 그대로 말미암아 마음에 생기를 얻었습니다”(몬 7). 슬프게도 이 구절 속 칭찬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팀 켈러는 다르다. 그에게만은 이 칭찬이 적합하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게 바로 개인적인 감사와 더불어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이다. 팀 켈러는 내가 가장 신뢰한, 우리 세대에서 매우 두드러진 그리스도의 목소리였다. 그가 말하거나 글을 쓸 때, 행여라도 나중에 켈러로 인해서 창피를 당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진실을 외쳤다. 그가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께 진실했다. 1980년대에 나는 켈러의 사역을 처음 접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교수였던 그는 PCA 교회 개척자를 위한 여름 훈련 행사에서 가르쳤다. 그리고 The Gospel Coalition으로서의 그의 지도력이 점차 형성되고 정의되었고, 그 결과 TGC는 다양한 양심적 그리스도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긍정적인 집결 지점이 되었다. 그 후 그의 책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명확성이 필요한 바로 그 포인트를 중심으로, 그는 복음의 의미를 더욱 강조했다. 그리고 뉴욕에 있는 리디머 장로교회의 목사로서 그의 설교는 ‘설득력 있는 신실함’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켈러의 사역에서 세 가지 측면이 눈에 띈다. 1. 충만한 복음진정한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만드는 중심축이 되는 “충만한 복음”은 성경적 복음에 대한 원칙적인 감수성을 의미한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위치를 완전히 바꾸도록 하는 복음에 대한 경외심이다. 그리고 그 전환은 모든 수준의 인간관계에서 매일 만나는 다양한 관계에서 일어난다. 충만한 복음은 그리스도의 실제 모습과 더 일치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방법이다. 그 결과로 이 세상에 그리스도가 더 드러나게 된다. 충만한 복음은 교회도 새롭게 한다. 복음을 축소하던 교회가 복음이 삶 속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도록 힘을 쏟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Center Church에서 “복음은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제목 아래 켈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복음은 단지 ABC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A부터 Z까지이다. 비그리스도인을 구원하는 건 복음이고, 그리스도인은 단지 성경적 원리에 따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함으로써 성숙해진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우리는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 복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복음을 더욱 깊이 믿어 이성과 마음, 그리고 삶의 모든 부분이 변화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이것은 켈러가 약 이십 년 전에 내 사역을 바꾼 방법이다. 지난 시간 많은 영적 선배가 나를 도왔다. 내 아버지 J. I. 패커, 존 스토트, 프랜시스 쉐퍼 등등. 그러나 켈러가 전하는 복음을 전체적인 관점으로 듣기 시작했을 때, 그때까지 내가 갖고 있던 단편적인 생각은 기꺼이 그가 제시하는 더 큰 비전에 자리를 양보했다. 십자가, 은혜, 대속, 전가,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와 같은 친숙한 주제들, 마침내 이 모든 진리와 다른 것들이 하나의 초점, 즉 우리 모두의 필요를 채우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으로 수렴되었다. 그렇다. 켈러는 박식했고 또 명료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나은 그리스도를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매료되었다.나는 그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2000년 7월, 자동차 여행 중이었다. 당시 나는 조지아 오거스타에 있는 제일장로교회 목사였다. 나는 여름휴가가 끝나고 모든 교인이 돌아왔을 때 로마서 강해를 시작하려는 계획이었다. 아내와 내가 휴가를 떠나기 전, 교인 중 한 사람이 리디머 교회에서 한 켈러의 설교 카세트테이프로 가득한 신발 상자를 건넸다. 자,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아에서 아이오와까지 차를 몰고 왕복하는 시간 내내 우리 부부는 켈러의 설교를 들었고, 또 토론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쉬지 않고 반복하는 강조점, 복음 자체의 포괄적 관련성이었다. 당시에 나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복음의 관련성을 제대로 전달하려고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내게 꼭 필요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비로소 나의 복음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그해 여름 오거스타로 돌아가던 중에 들었던 로마서 강해는 나 개인뿐 아니라 사실상 우리 교회의 전환점이 되었다.나는 이 세대에 얼마나 많은 다른 목회자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2. 진정한 부흥처음에 나는 부흥이 켈러의 사역에서 갖는 중요성을 접하고 매우 놀랐다. 일반적으로 진지한 신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흥 및 각성이라는 주제와 그다지 연관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켈러는 그런 전형에 속하지 않았다. 그는 일관성이 있었다. 복음은 개인을 회심시키는 것 이상일 뿐 아니라, 위로부터 쏟아지는 새로움(refreshment)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예: 행 3:20). 따라서 진정한 부흥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관심사가 되어야만 한다. 켈러는 그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그의 신학교 스승인 리처드 러브레이스(Richard Lovelace)는 켈러에게 영적 갱신의 민감성과 관련해서 영향을 미쳤다. 켈러는 부흥에 대비하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는 목회자를 위한 입문서, 러브레이스의 고전인 ‘Dynamics of Spiritual Life’를 존중했다. 켈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나는 고든콘웰(Gordon-Conwell Seminary)에서 러브레이스의 여러 강의를 수강했다. 그중에는 1972년 가을에 첫 강의를 시작하고 나중에 책으로 나온 “Dynamics of Spiritual Life” 코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과목과 함께 나는 부흥의 역사를 다루는 “Evangelical Awakenings” 코스도 수강했다. 이 과정은 내 생각과 사역 방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결정적’이라는 표현도 사실 매우 절제된 것이다. 내 사역을 알고 또 러브레이스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켈러가 사역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를 얻은 곳이 바로 여기였구나!”켈러는 한 개인에게 생명을 주는 복음의 능력에서 인간 존재 전체를 아우르는 복음의 완전한 능력에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복음에 관한 일관된 사고방식이야말로 부흥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3. 선교적 지혜켈러는 미움이 만연한 우리 시대에 공평하고 공손한 공개 증언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외인에 대하여는 지혜로 행하는”(골 4:5)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전도와 제자도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거기에 능했다. 어쩌면 그가 가진 합리성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여기 내슈빌에서 나는 그의 훌륭한 연설을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날의 연설은 나중에 “Post-Everything”이라는 글로 발전했다. 그날 켈러는 오늘날 비전통적인 사람들을 교회에 오게 하려고 기독교가 가진 대담한 신학적 확신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사명은 “모든 것이 지난 시대에(Post-Everythings)”를 사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부르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복음 속 풍성함을 우리부터 제대로 인식함으로 믿음을 더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켈러는 믿지 않는 이들이 가진 우려 사항과 함께 우리가 지향하는 개혁신학이 그들을 향해 얼마나 놀라운 관련성을 가지고 선포될 수 있는지를 조목조목 나열했다.예를 들어, 오늘날 사람들이 중시하는 경험적 성향은 복음이 진리일 뿐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 즉 하나님 그분을 경험하게 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더 주목하게 만든다. 또한 세상의 잘난 체하는 도덕주의에 대한 혐오감은 분명하고도 도전적으로 복음과 독선을 분리한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더욱이, 사회 정의에 대한 우리 세대의 강렬한 열망은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는 헤르만 리델보스와 다른 개혁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주창되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관련해서는 총체적 세계관으로서의 기독교를 주장하는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옹호자가 있다. 따라서 이런 선배를 발판 삼아 누구라도 삶과 문화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요점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신학 자체가 오늘날 뜨거운 이슈에 대해서 얼마든지 설득력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 신학을 꼭꼭 누르며 숨 막히게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가 좀 더 겸손하고 현명한 태도를 가진다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신학 속에는 선교적 지혜가 담겨있고, 그 지혜가 우리를 기다린다. 켈러가 가르쳐준 게 바로 그 부분이다. 나는 켈러만큼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정도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팀 켈러는 이제 우리가 잃어버린 이 세대의 첫 기독교 거물이 되었다. 이것은 냉정한 사실이다.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대의를 위해 헌신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가? 그 기간이 길든 짧든, 나는 이제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게 팀 켈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그렇기에 내가 삶을 마칠 때 나의 인생 전체를 요약하는 진술이 그리스도께 조금은 더 진실해질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팀 켈러,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원제: Ray Ortlund: I Thank God for Tim Keller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팀 켈러를 기리며, 한국에서
by 복음과도시
2023-05-20
기리며: 팀 켈러(1950-2023)고 옥한흠 목사님처럼 그 죽음이 내게 깊은 슬픔과 눈물을 남긴 또 한 분. 어떻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지 가까이서 가르쳐주신 분. 예수님을 닮으신 귀한 분. 복음과 종교 사이를 널뛰던 내게 복음적 목회의 확신을 전해주신 고마운 분. 내 교회만 생각하던 내게 분립개척을 생각하고 연합을 생각하게 해주신 분, 같은 뜻을 품은 좋은 동역자들을 한국과 미국에서 만나게 해주신 분, 내가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목회하게 해주신 분…. 그래서 우리 교회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신 목사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_이인호 목사, 더사랑의교회 팀 켈러 목사님께서 결국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네요. 너무 아쉽지만, 많은 제자를 세우셨으니 복음 사역은 변함없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켈러 목사님이 안 계시다니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_온기섭 목사, 의왕우리교회주님, 왜 이리도 이 땅에 필요한 분을 급히 데려가시나요? 목사님, 고맙습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위선적 삶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삶이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이 삭막한 도시에서 사랑과 연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옥한흠, 하용조 목사님을 보내던 때가 떠오릅니다. 우리 모두 한동안 아프겠지만 더 사랑하라고 팀 목사님을 보내신 주님을 더 바라보라는 사인으로 알고 남은 과업을 이어 나가야 할 것 같네요.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_길성운 목사, 성복중앙교회 팀 켈러 목사님을 통하여 받은 많은 영감에 감사합니다. 그분이 저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력은 CTCK를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동역하고, 개척하고, 교회를 세우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팀 켈러 목사님을 그리워하며 겸손하게 이 사역을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김병년 목사, 다드림교회 좌충우돌하던 개척목회 현장에서, 좌로 우로 치우치며, 고슴도치처럼 양들을 찌르며, 속으로 끙끙대며, 율법주의와 상대주의 사이를 오가고 있을 때마다 책과 영상, 그에게 영향받은 사역자를 통해 팀 켈러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를 만나 감사한 것은 그가 전하고 살아낸 것이 ‘복음을 믿음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걸어온 팀 켈러 목사님께 감사합니다. 믿음의 선배인 그를 따라 겸손하게 우리 구주 예수님과 주님의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땡큐, 땡큐. 땡큐!! _박용주 목사, 나주혁신장로교회 우리 다수에게 어떤 분기점이 되신, 너무나 고마우신 분이 우리보다 조금 먼저 가셨네요. 잘 기리고, 이 나라에서 이 나라답게 아름다운 복음의 사람들이 잘 계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축복하면서, 팀의 길을 잘 바라보겠습니다. 안타까우면서도 복음과도시의 건강한 젊은 동역자님들 생각에 소망이…. _정갑신 목사, 예수향남교회 불과 5년 전에 한국에서 건강한 팀 켈러 목사님을 복음과도시 초기 멤버들과 같이 처음 만났습니다. 그 직후 제가 먼저 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잃었다가 지금은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입성은 팀 켈러가 먼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순서가 어떨지 모르지만,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역하면서 그 나라 입성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_박은조 목사, 은혜샘물교회 떨리는 마음으로 팀 켈러 목사님이 묵으시는 방에 들어가 다음날 있을 장충체육관 집회 설교를 위해 대화를 나누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설명해주시는 내용이 무슨 뜻인지 감이 안 잡혀 녹음해온 대화를 몇 번씩 듣다가 그 깊은 뜻을 깨닫고 혼자서 감탄을 연발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설교가 끝나시고 강단 아래에서 오늘 저녁 너와 내가 하나였다고 격려해주시던 그 따뜻한 눈빛과 미소가 앞으로도 더욱 그리울 것 같습니다. 이 모두가 주님께서 이끌어주신 은혜입니다. 그 은혜 다 갚을 수 없겠지만, 복음적인 교회 개척을 통해 건강한 교회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미력하나마 힘을 다하리라 다짐해봅니다. _곽수광 목사, 푸른나무교회오늘 돌아가셨군요. 72세로 보내드리기에는 너무나 아깝고 안타까운 믿음의 선배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이런 분을 오래 살도록 하시는 게 하나님 나라에 유익할 듯한데, 하나님의 생각과 방식은 우리 생각-방식과 다름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유한한 인생에게 당장 사느냐 죽느냐, 또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는 전혀 이슈가 아니고, 주께서 의도를 가지고 부여하신 삶을 어떻게 살다 가느냐가 중요함을 절감합니다. 여러분, 모두 잘 살고 잘 죽읍시다! _정민영 선교사, (전) 국제위클리프 부총재 같은 시대에 살아가며 잠시라도 뵐 수 있었던 게 큰 특권입니다. 제 가슴에는 “성경 속에 답이 있음을 확신했던 선배” “그 답들을 찾는데 끝까지 헌신했던 분” “복음을 추상적 개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신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평강 안에 안식하시길…. _고성제 목사, 평촌새순교회 팀 켈러 목사님, 나의 스승이시며 목회와 신학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모델이셨던 분! 남기신 글처럼, 이쪽 천국에서 저쪽 더 좋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셨군요. 다시 만날 것을 알지만 헤어짐은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들 유학 보낼 때도, 아들 군대 보낼 때도, 남편 주재원으로 보낼 때도…. 더 좋은 모습으로 곧 만날 것을 알지만 그래도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 없듯이, 팀 목사님을 보내는 이날에 자꾸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1991년 9월 처음 웨스트민스터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도시 사역(Urban Ministry)을 강의하시던 모습, 그때 나이 40대 초반의 팀 목사님이 뉴욕에서 개척한 리디머 교회를 소개하며 강의하셨는데, 아침 8시 30분 강의였음에도 강의실 옆이고 뒤고 많은 청강생이 서서 강의를 듣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Goodbye는 없습니다. See you soon만 있을 뿐…. 벌써 그분의 예수님 향기가 그립습니다. _박노철 목사, 더사랑교회한국에서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제는 천국에서 뵈어야겠네요. 그러나 팀 켈러 소천 이후에 더 큰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C. S. 루이스. 존 스토트에 이어 켈러 목사님도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복음의 정의가 무엇인지, 그 능력과 넓이와 깊이가 무엇인지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우리 한반도에도 계속해서 그런 영적 거장들이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또한 한반도를 향한 켈러 목사님의 소원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_최성은 목사, 지구촌교회
나의 영웅, 팀 켈러
by Collin Hansen
2023-05-20
기리며: 팀 켈러(1950-2023)2021년 1월, 무거운 생각에 짓눌린 채 나는 텅 빈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웅을 대면하는 건 아닌데….티모시 켈러의 영성과 지성의 형성 여정에 관한 책을 쓰기로 막 계약을 맺고 난 뒤였다. 나는 2008년부터 팀과 함께 일했다. 하지만 이 책을 쓰기로 한 이 순간부터는 그의 가장 오래된 친구들, 가장 가까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들은 그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무얼 알게 될까? 그의 옷장 깊은 곳에서 어떤 유물을 찾게 될까?엄청난 특권처럼 느꼈었는데 갑자기 중압감이 몰려왔다.그리고 2년 반이 지나고, 나는 이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나는 그가 살아온 삶을 거의 다 알고 있는, 심지어는 1970년에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일도 알고 있는 사람들, 곧 그의 가족들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서 그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멀찍이 있는 영웅이 아니라 나의 친구로,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도와준, 나의 친구로 알게 되었다. 남 얘기나는 팀 켈러가 다른 사람에 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십자가에 대해 많은 말을 한 사람에게서 우리가 기대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내 목회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그렇지 않은 게 일반이다. 나 역시 고백하기보다는 비판하는 데 더 많은 말을 낭비했다. 안타깝게도, 불평을 들어줄 귀는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그런데 팀 켈러는 달랐다. 그는 단 한 번도 내게 전화해서 자기가 중상모략을 당했다며 화를 내지 않았다. 내가 The Gospel Coalition의 공동 설립자인 그를 당혹스럽게 만든 글을 썼을 때도 그는 결코 불만을 내뱉지 않았다. 켈러 문화 변증 센터의 전무이사로서 내가 쓴 글이나 내 리더십을 비판하는 이메일을 보낸 적도 없다.그와 마지막으로 나눈 전화 통화 몇 차례 중에 내가 좌절감에 빠져서 그만 그에게 목소리를 높였던 게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때 나는 그가 내린 결정에 속이 상해 있었다. 그가 한 일은 내 걱정을 들어주고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끝까지 내가 결코 갚을 수 없는 선물로 내가 하는 일을 축복해 주었다. 그 끔찍한 암으로 죽어가면서 그렇게 했다. 그는 로마서 12:17-18 말씀대로 살았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비판에 관하여팀은 대결을 싫어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길 바랐기 때문에, 화평의 행동을 보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그가 곤란한 대화를 피해서 혼란을 불러일으킬 때가 종종 있었다는 걸 잘 안다. 내가 이 책을 쓰고 난 후, 그가 자신의 관리 능력 부족에 대해 옛 스태프들이 불평한 부분을 읽고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는 몰랐다. 내가 아는 많은 목회자나 사역자들은 대부분 그러한 비판이 공개 기록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팀은 허락했다. 심지어 그는 스태프들을 좌절시킨 책임을 오롯이 짊어졌다. 요한일서 1:9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데는 빠르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더딘 지도자를 만나면 힘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교회 리더십 전반에 걸쳐 그게 일상다반사다. 팀과 함께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설교한 그대로 실천했다. 그는 존 뉴턴이 “논쟁에 관하여”라고 불리는 그의 편지에서 했던 조언을 자주 인용했다. 팀은 가장 가혹한 비평가들의 가시 돋친 말에서도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친구들에게서 오는 비판에는 보통 핵심이 있고, 실제로 당신을 아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을 때 거기에 진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책망이 일부 또는 심지어 크게 잘못되었더라도, 당신이 정말로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신중하지 못하게 행동했거나 발언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비평가가 제시하는 비판이 근거가 틀렸더라도 그의 지적은 일부나마 옳을 것입니다. 그 비판의 근거가 잘못되었더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하고 주님 앞에서 마음을 다해 회개하고 겸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비판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며, 비판하는 이의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비판하는 그 사람을 정중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팀이 이 성찰의 글을 쓴 때는 아직 소셜 미디어가 정점을 찍기 전, 그러니까 그가 정치적, 신학적인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비판의 대중적 표적이 되기 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견해나 태도에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판에 대해 이렇게 반응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마음에 작용하고 있다는 좋은 생각을 품게 된다. 뉴턴이 우리에게 가르쳤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길을 잃은 영혼들이 집으로 가는 길을 찾게 한다. 볼 수 없는 이들이 볼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당신과 나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원한다.소명팀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또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말하는 걸 즐겼다. 무언가에 관해서 얘기하는 걸 즐겼다. 그래서 그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습니까? 바로, 거의 50년 동안 함께한 그의 아내 캐시. 그가 읽은 최신 책이나 논문. 그리고 예수님. 무엇보다 그는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팀의 설교를 들었거나 그가 쓴 많은 책 가운데 하나를 읽었다면, 그것은 곧 당신이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팀에 관한 내 책을 평론한 한 사람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를 말하는 걸 꺼린다고 지적했다. 목회 소명이라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내가 어떻게 그냥 간과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사역자로서 팀의 소명에 관해서 쓰지 않았다. 나는 그것에 관해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도 묻지 않았다.그렇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안다. 1970년에 팀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그가 숨을 거두기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하나님의 은총이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던 수줍음 많은 한 십대를 가장 사랑받는, 세기의 설교자 중 한 명으로 바꾸어놓았다. 팀은 자신을 온전히 아시고 온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나도 그렇게 죽고 싶다. 그처럼,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구주께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알리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나의 영웅 팀 켈러를 만났다. 지난 3년 동안 그를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를 더 존경하게 되었다. 그의 글을 읽거나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서 나는 예수님을 더 사랑했기에, 그는 나의 영웅이었다. 팀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만나, 그가 배운 모든 것을 알게 될 그날이 몹시 기다려진다. 하지만 지금은 팀의 죽음이 결코 채울 수 없는 빈자리로 남았다. 그의 격려가 그리울 것이다. 그의 가르침이 그리울 것이다. 그가 못다 쓴 책들이 그리울 것이다. 그의 우정, 그의 사역에 관한 긴 대화가 그리울 것이다. 우리 세대의 많은 이들에게, 설사 그들이 팀 켈러의 설교만 듣고 그의 책만 읽었더라도, 그는 영적인 아버지가 되었다.남은 우리 때문에 나는 슬프다. 그러나 떠난 그를 슬퍼할 수는 없다. 이제 그는 구주를 마주하여 뵙고 있다.제목: I Met My Hero, Tim Keller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김은홍
슬픔과 아쉬움의 마음을 담아
팀 켈러 목사님의 소천을 알리며
by 이인호
2023-05-20
기리며: 팀 켈러(1950-2023)사랑하는 동역자님들께우리의 스승이고 멘토인 티모시 켈러(Timothy J. Keller) 목사님이 2023년 5월 19일 아침(미국시간)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랑하는 그분이 떠난 소식에 슬픔과 아쉬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곁에 더 오래 머물기를 원하는 분들을 빨리 당신 곁으로 데려가시는 것 같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종종 복음과 율법 사이를 널뛰기하듯 하는 우리에게 복음적 삶이 무엇이고 복음적 목회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인 도시와 점점 단절되어 게토화되어가던 우리에게 어떻게 도시와 소통하며 도시 안에 복음적 생태계를 형성할지 알게 하셨습니다. 내 교회만 잘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다음세대를 생각하게 하였고, 큰 숲을 소망하며 교회개척을 지원하고, 분립개척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한국 교회의 복음적 갱신을 위하여 연합하여 하나되게 하셨습니다.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그의 아들인 마이클 켈러(Michael Keller)가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소천 소식을 전했습니다.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멘토, 친구, 목사이며 학자인 티모시 J. 켈러께서 오늘 아침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단둘이 남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마에 입을 맞추셨고,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마지막 말씀에 위안을 얻습니다. ‘나에게는 떠나는 것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습니다.’ 곧 만나요, 아빠.”참 고마운 팀 켈러 목사님, 그분의 죽음을 우리 모두 진심으로 애통해합니다. 앞으로 추모예배와 관련한 소식은 미국 TGC와 소통하여 여러분에게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아울러 팀 켈러 목사님을 추모하고 그분이 남기신 유산을 기리는 공간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팀 켈러의 가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복음과도시 이사장 이인호 목사
TGC 설립자 팀 켈러 소천
by TGC
2023-05-20
기리며: 팀 켈러(1950-2023)티모시 켈러 목사께서 향년 72세를 일기로 2023년 5월 19일 소천하셨습니다. 그는 2005년 The Gospel Coalition(TGC)을 공동 설립하고 부대표, 부이사장으로 이 사역을 섬기셨습니다. 깊이 애도하며. 우리 TGC는 3년 넘게 췌장암과 싸우다가 5월 19일에 별세한 티모시 켈러(72)를 깊이 애도한다. 그는 2005년 TGC를 공동 설립했으며 부대표와 이사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TGC 이사로서 다음 세대를 위한 복음 중심의 사역을 촉진하기 위해 TGC에 조언과 방향을 계속 제시했다. 팀 켈러는 맨해튼 Redeemer Presbyterian Church를 설립하고 40년 동안 목양했다. 그는 또한 교회 개척 네트워크 Redeemer City to City의 대표이자 공동 설립자로 섬겼다. The Reason for God(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The Prodigal God(탕부 하나님), The Meaning of Marriage(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를 포함한 그의 여러 저서는 수많은 이들의 신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TGC 임시회장 샌디 윌슨(Sandy Willson)은 “오늘 기독교 세계는 오늘 세상을 떠난 큰 지도자 한 분을 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 켈러는 세기의 인물이었다. 내가 아는 한, 개혁신앙을 거리로, 교회로, 학계로 전하는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목회자는 팀 켈러 목사밖에 없다. 그는 이 세대의 가장 유능한 기독교 목사, 변증가, 복음전도사로 기억될 것이다. 팀은 기독교 신앙을 명료하게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겸손하고 자비로운 마음과 끊임없는 열정으로 길 잃은 영혼들에게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을 보여 주었다. 그는 뉴욕 시에 전에 없던 놀라운 교회를 세웠고, Redeemer City to City를 통해 전 세계에 수천 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The Gospel Coalition을 공동 창립했으며, 모든 세대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영감을 주었다. 우리 모두 Kathy와 친애하는 Keller 가족을 위로하며 함께 슬퍼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토록 신실하게 섬긴 주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는 팀의 완전한 기쁨을 기뻐한다.”켈러의 소천 소식을 들은 TGC 공동 설립자 돈 카슨은 “팀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처럼 주저하지 않고 이 시대의 문화와 나라를 향해 정의와 통회를 촉구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망했다. 그는 성경의 궤적, 곧 성경 신학의 구조가 어떻게 사려 깊은 독자들을 거듭거듭 복음으로 이끄는지를 재빨리 파악했다.”2000년대 초반에 켈러는 일반적으로 “신 칼빈주의(new Calvinism)”라고 불리는 개혁신학의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TGC 콘텐츠 담당 부대표이자 편집장인 콜린 핸슨(Collin Hansen)은 2006년 책, Young, Restless, Reformed(현대 미국개혁주의 부활)에서 기록했다. 최근 출간된 Timothy Keller: His Spiritual and Intellectual Formation(하나님의 사람, 팀 켈러)의 저자이자, TGC에서 새로 출범한 켈러 문화 변증 센터(Keller Center for Cultural Apologetics)의 이사인 핸슨은 “우리가 팀을 잃은 것은 우리의 리더를 잃은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친구이자 본받을 사람을 잃은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틀림없이 그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위로를 얻고 잃어버린 세상을 위해 긴급하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나누라고 우리를 격려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많은 친구와 함께 슬퍼하며, 또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의 아내 Kathy와 아들들, 그들의 친지들을 위해 기도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2021년에 핸슨(Hansen), 케빈 드영(Kevin DeYoung), 저스틴 테일러(Justin Taylor)와 함께한 팟캐스트에서 켈러는 말기 암에 대한 경험과 그 경험이 그의 영적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켈러는 “임박한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은 내 죄와 싸우고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존 오웬(John Owen)이 한 방법이 이것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그리스도의 영광에 관한 묵상과 담론’은 기본적으로 그가 임박한 죽음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하려고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켈러는 오웬의 히브리서 주석에서 인용한 다음 글을 포함하여 오웬의 17세기 지혜에 대한 정보를 자주 공유했다: “그의 형언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거룩한 경탄에 빠져 길을 잃을 때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다.”이 땅에서 켈러가 경험한 “거룩한 놀라움”은 전염성이 강했고, 촉매제였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그의 나라를 위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며, 그리스도의 형언할 수 없는 사랑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놀라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기뻐한다. 제목: TGC Co-Founder Tim Keller Dies at 72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김은홍
기리며: 팀 켈러(1950-2023)
by 복음과도시
2023-05-20
• TGC 설립자 팀 켈러 소천_TGC • 슬픔과 아쉬움의 마음을 담아_이인호• 나의 영웅, 팀 켈러_Collin Hansen • 팀 켈러를 기리며, 한국에서_복음과도시• 팀 켈러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_Ray Ortlund• 돈 카슨: 팀 켈러를 떠나보내며_Don Carson • 복음으로 나의 목회 시야를 밝힌 팀 켈러_이인호• 팀 켈러, 조용히 다가와 내 삶을 바꾼 사람_이규현• 팀 켈러, 그를 통하여 변화된 나와 우리 교회_길성운• 50가지, 팀 켈러가 남긴 말_Matt Smethurst • 팀 켈러와의 만남: 격려, 부끄러움, 안도감_고성제• 석양이 더욱 찬란하게 비친 날_Trevin Wax • ‘하나님의 사람, 팀 켈러’에서_Matt Smethurst·Collin Hansen• 복음전도를 향한 팀 켈러의 진심_John Piper • 팀 켈러, 복음을 말하다_Tim Keller • 팀 켈러가 리디머 사역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_Tim Keller • 존 파이퍼: 팀 켈러가 남긴 마지막 당부_John Piper • 팀 켈러의 지성과 영성: 콜린 핸슨, 팀 켈러를 말하다_Collin Hansen • 팀 켈러를 추모하며_TGC
재림을 의심하는 성도에게 어떻게 대답할까?
by Cody Wilbanks
2023-05-20
“예수님이 정말로 재림하실 예정이었다면, 이미 오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거죠?”목사로서 최소한 한 번 이상 나는 이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도 다르지 않을 거다. 예수님의 재림에 의심이 드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지진 같은 엄청난 사건, 또는 말기 불치병이나 유산 같이 좀 더 개인적인 차원의 사건을 만날 때면 우리는 누구나 다 무의미해 보이는 비극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된다. 행여라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예 타락한 채로 내버려 두셨는지, 포기하신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기독교 역사에는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지에 대한 수많은 실패한 예언(예: 윌리엄 밀러, 에드가 위스넌트, 해럴드 캠핑)이 존재한다. 그런 사실 앞에서 아예 예수님에 대해서 그리고 성경과 기독교 지도자의 신뢰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재림에 대한 작은 의심의 씨앗이 아예 절정에 달한 불신앙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소망 가득한 미래가 없다는 결론에 굴복할 위험이 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육신의 생명이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결론, 그리고 나아가서 설혹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이 사는 세상에 관심이 없다는 어리석은 결론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재림에 관한 질문은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직후부터 시작된, 오랜 역사를 가진 의심이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이 의심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진리로 의심을 해결하기우리는 베드로후서 3장에서 진리를 만날 수 있다. 베드로는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여전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비웃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 갔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 때부터 그러하였듯이 그냥 그대로다”(벧후 3:4). 회의적인 세상은 우리를 비웃고 또 정작 우리 마음도 의심으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베드로는 세 가지 신학적 대답을 준다. 1.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하신다(벧후 3:5-7).이 세상에는 더 이상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거 같다. 인간이 초래한 난장판 같은 세상과 아예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 세계에 여전히 깊이 관여하고 계시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과거 활동을 상기시킨다. 그가 지적하는 건 다름 아니라 노아 시대의 홍수이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도 이 세상에 개입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이 세상이 심판의 날까지 하나님에 의해 “축적되고” 또 “보전된다”고 말한다(골 1:17; 히 1:3).베드로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 누구도 감히 하나님이 이 세상이나 우리의 삶에서 활동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매일 그렇듯 오늘 아침에도 해가 떴다. 당신은 여전히 뛰는 심장을 느끼면서 잠에서 깼다. 이 모든 게 우리의 창조주이자 우리를 지키시는 분에게서 오는 선물이다. 하나님이 과거에 창조와 심판의 활동을 하셨다면, 오늘날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똑같이 역사하실 것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은 이 세상을 떠받들고 계신다. 과거에 심판과 구원을 가져오신 것처럼 미래에도 심판과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 2.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벧후 3:8-9a).다음으로 베드로는 하나님의 영원성에 호소한다. 하나님은 창조되지 않으신 분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시다. 시간과의 관계가 우리와는 아예 다르다. 매튜 바렛이 말했듯이,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고, 시간과 관련해서 영원하며, 아예 시간에 구애받지 않게 영원하다.”물론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시간에 구속되어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백 투 더 퓨처의 마티 맥플라이가 영화에서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서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갈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매일 순간순간을 살 뿐이다. 이처럼 우리는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그렇다면 감히 하나님의 때를 판단하는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로마서 9:19-21에서 선택 교리를 반대하는 이들을 향한 바울의 엄중한 대답처럼, 베드로도 유한한 피조물인 우리가 무한하신 창조주를 정확하게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3. 하나님은 오래 참으신다(벧후 3:9).왜 예수님은 아직 재림하지 않으신 걸까?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그의 오래 참는 사랑은 그가 사랑하는 모든 백성이 회개에 이르도록 기다리게 한다. 오늘날 복음이 온 세상에 걸쳐서 전파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있으며, 회개하는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바로 이런 역사가 계속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심판을 미루신다(행 17:30).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직후에 하나님은 왜 모든 피조물을 단숨에 쓸어버리지 않으셨을까? 이런 궁금함이 든 적이 없는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엄청난 악으로 들끓는 세상을 하나님은 왜 심판하지 않으실까?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 나와 당신은 하나님의 원수였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우리를 즉시 멸하지 않으셨을까?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꼭 필요하고 합당하며 적절한 모든 심판을 지연시키셨다. 왜? 그의 백성들이 복음 앞에서 반응하고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이다. 인내하고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을 반대하고 의심하는 이들에게, 또 무엇보다 내 마음에 드는 의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하나님은 한 시도 우리를 떠난 적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므로 조바심 내는 내 마음에 또 똑딱거리는 인간의 시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도 명심하라. 결론은 명확하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므로 우리도 인내해야 한다. 당신과 나는 인내와 거룩한 생활로,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구원의 충만함을 가져오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확고한 약속을 신뢰하도록 부르심 받았다(벧후 3:10-13).인내하라 성도여,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신다. 원제: How to Answer Doubts about the Second Coming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재림
하나님의인내
성도의인내
세상이 ‘피아프처럼’ 절규한다
by 필립 정
2023-05-19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의 연주곡 ‘새들의 노래’는 온갖 새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캐럴 곡이다. 그런데 마치 장송곡같이 어둡고 슬픈 느낌이 난다. 조국 카탈루냐를 독재자 프랑코에게 빼앗긴 카잘스의 마음엔 즐거운 새들의 노래조차 슬픈 마이너 코드처럼 들렸나 보다. 얼마나 조국의 독립을 바랐으면, 그는 이 곡을 연주하기 전 “하늘의 새들이 평화, 평화라고 노래한다”고 하였을까! 그러나 한 천재 음악가의 감정 이입이 아니라 실제 우리 주위의 수많은 동식물이 죽어가며 슬픈 목소리로 절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라지기 전에 인간에게 전해 줄 메시지를 전하고 간다. 마치 죽어가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로 던지고 간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처럼 말이다. 혐오와 폭력, 그리고 복수때로는 인간의 편견이나 고정 관념들이 섬뜩한 광기를 동반한다. ‘유대인은 나쁜 인간들’이라는 편견이 나중에는 유대인과 같이 살 수 없다며 폭력으로 이어졌듯이 ‘야생 동물은 무섭고 더럽다’는 고정 관념도 그런 식으로 폭력으로 이어져 왔다. 지렁이 한 마리를 보고 화들짝 놀라 밟아 버리고, 스쳐 지나가는 쥐 한 마리에도 비명을 지른다. 이런 태도는 어렸을 때부터 학습되고 주입이 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뱀을 악하고 무서운 존재로 교회에서 배워왔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뱀에 대한 두려움이 신앙처럼 고정된다. 다른 벌레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많은 벌레가 율법에 의해 부정한 것으로 불린다. 베드로조차도 벌레를 먹으라(이방인에게 선교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여러 번 거절할 정도로 그 잘못된 신앙과 같은 고정 관념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했다. “어린양과 사자들이 뛰어놀고 독사 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이사야 35장)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매일 자연을 대하는 게 내 직업이다 보니, 이 말씀이 전혀 비현실적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한 대학에서 아이들에게 뱀에 대한 편견을 실험한 적이 있었다. 이미 뱀에 대해 학습된 3세 이상의 아이들은 뱀을 무섭다고 피하였으나, 겨우 젖을 뗀 3세 미만의 아이들은 전혀 뱀을 무서워하지 않고 접근하였다고 한다. 잘못된 학습에서 비롯된 우리의 편견이나 고정 관념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뭇 심각하게 봐야 한다. 즉 내가 마주하는 대상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의 반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피조물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 관념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결코 아니고 인간의 죄성에서 나온 것이라 가인의 후손의 통치 방식(폭력)이 반드시 수반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이 이렇게 편견에서 혐오와 폭력으로 파괴되어 왔다.인간은 자연에 감당치 못할 폭력을 행사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모기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하게 되돌아왔다. 모기는 치명적인 지카 바이러스, 말라리아, 일본 뇌염, 뎅기열,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같은 바이러스를 옮겨 연간 7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다. 그래서 엄연한 해충으로 분류되어 왔다. 그래서 사용된 최고의 살충제가 DDT이다. 우연히 개발되었지만, 후에 모기 살충제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였다. 1930년대 이후 DDT를 사용한 국가(베네수엘라, 인도,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사용 이전에 비해 수천수만 배로 줄어들었다. 모기만이 아니라 개미, 거미, 진드기, 벼룩, 빈대, 심지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까지 완벽하게 제어하여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널리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후 30여 년이 지나지 않아 그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에서 DDT와 그 이상의 독성이 있는 살충제의 무분별한 살포로 각종 벌레가 사라지고 이를 먹이로 하는 새들이 오염되어 멸종되고 있었다. 새봄이 되어도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1962년 미국의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 Carson, 1907-1964)이 쓴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 이런 폐해의 경고가 잘 드러나 있다. 1991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 각국 사람의 체내에 DDT를 비롯한 각종 농약 성분이 발견되었고 남극 지방의 펭귄이나 크릴 새우에게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달걀에도 농약이 남아 있으니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동물의 68퍼센트가 사라졌다. 아마존 열대우림 지대의 광산 개발, 대규모 경작지 개발로 라틴아메리카에서 94퍼센트의 동물이 사라졌다. 식물들의 수분 매개 역할을 하는 동물들이 급격히 사라지자 식물도 40퍼센트 넘게 멸종 위기에 처했다. 식물은 동물의 먹이다. 식물이 없으면 동물도 살 수 없다. 연쇄로 자연이 무너지고 있다. 말을 못 하는 자연은 그렇게 죽음으로 인간에게 되갚아 주고 있다. 여전히 돈을 섬기는 시장 숭배자들에게 자연은 막대한 재산과 생명의 피해로 돌려주고 있다. 뛰는 농산물값, 물과 불로 휩쓸려 가는 산림, 온대 지역 열대화에 따른 열대 박쥐들의 온대 지역 출현,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세상…. 수백만의 생명이 사라졌고 도저히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자연이 인간의 폭력을 제대로 되갚아 주고 있다. 세상은 사랑을 노래하며 그렇게 죽어간다뜬금없이 한 가수의 이야기를 해야만 될 것 같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자면 고통이 함께 따른다. 그녀의 삶을 알고 나면 더 그렇다. ‘팬텀싱어 시즌 4’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아니오.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한 테너 가수가 너무 멋지게 불러 그녀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까지 찾아 듣게 되었다. “그대가 원한다면 달이라도 따오고, 큰돈이라도 훔치고, 조국도 친구도 버릴 수 있어요. 그대가 원한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요.” 이 노래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비행기 추락 사고로 잃고 도저히 더는 노래할 수 없었지만, 다시 노래하기로 결심하고 작사한 곡이다. 그녀의 다른 노래, ‘장밋빛 인생(Ra Vie en Rose)’도 그렇고, 가사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1차 세계대전 중 원하지 않는 아이로 태어나 영양실조와 치명적인 병을 견디고 살아온 그녀, 사랑하는 사람의 배반, 그리고 사별과 이별, 여러 번의 교통사고로 인한 고통,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시작한 모르핀 치료, 그리고 모로핀 중독으로 죽음까지…. 그래서 분명히 희망차게 사랑을 노래해도 슬픈 탄식의 노래로 들릴 뿐이다. 슬프지만 그래도 사랑을 노래하니 사랑의 노래다. 카잘스의 새들의 노래가 아무리 우울하게 들려도 새들의 노래인 것처럼….사람들은 그녀를 ‘노래하는 피아프(참새)’라고 불렀다. 이 별명이 그녀의 이름이 되었다. 에디트 피아프처럼 새들도 분주하게 하늘을 날며 짝을 찾아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풀벌레도 허공을 향해 구애를 하고 공작도 사랑의 날갯짓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새들이 울면 천적에게 자기 위치를 노출해 위험에 빠진다. 그래서 들키지 않으려고 아직 어두운 새벽에 그리 울어 댄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연장된 삶에 필요한 언어들을 허공에 지저귄다. 죽음을 무릅쓰고 하는 얘기라 고되고 힘들지만, 새끼들과 연인들을 향해 염려하며 부르는 사랑의 노래일 수밖에 없다. 죽음의 위협 속에 다른 할 얘기가 없다.피아프는 남자에게 배반당하고 피해를 보고 죽어가면서 또 다른 남자를 향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죽어갔다. 인간은 자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살려 내야 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죄성을 가진 타락한 존재라도 하나님의 형상과 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속성을 지녔으니 자연이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결국은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인간이 다 사라져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리석은 자연은 끝까지 인간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에디트 피아프처럼…. 그래서 동물들은 생명의 위협에 처하면 사람에게 도움을 구한다. 상어에게 쫓기는 물개가 어선에 뛰어들어 살려 달라고 갈구하고, 낚싯바늘에 걸린 상어가 잠수부에게 다가와 입을 벌려 도움을 찾는다. 혹한에 처한 다람쥐는 사람이 사는 집의 문을 두드리며 쉬어 가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갈증에 지쳐가던 커다란 코브라가 입을 벌려 사람이 주는 물을 받아먹고 얌전히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간다. 길 잃은 새끼사슴이 마음씨 착한 아저씨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그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며 애정을 표시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틈틈이 찾아와 고맙다고 표현한다. 어린 까마귀를 돌보아 주자 이 까마귀는 빛나는 돌, 유리를 물어와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다. 병에 머리가 낀 붉은 여우가 제 발로 사람을 찾아와 도와 달라고 청한다.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인간은 자기 체험적인 선지식에서 다른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이 나무의 열매를 먹어 이제 죽게 되었구나’ 하는 식이다. 플라스틱을 개발하고 200년이나 지나서야 ‘이것을 써보니 해양과 토양을 오염시키고 우리 몸은 병들어 죽게 되는구나’ 하는, 아담의 후예다운 탄식이다. 온갖 벌레와 새들이 그 지구의 위기를 노래로 말해주고 도와 달라고 해도 전혀 모르다가 인류가 멸망하게 되어서야 그 비참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만물의 탄식은 구원을 향한 몸부림인 게다. 자연은 인간을 찾아와 애타게 자기들의 언어로 무엇인가 호소하고 탄식하다가 어디로 자취를 감춰 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피아프가 사랑을 노래하며 사라져 갔듯이 자연도 죽어가며 사랑과 구원의 노래를 부른다. 어찌 이 노래를 들으며 기도하지 않고 잠들 수 있을까….
파블로카잘스
에디트피아프
참새
새들의노래
피조물의탄식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by Geoff Chang
2023-05-18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때는 1875년, 당신은 패스터 대학(Pastors’ College)의 2학년 학생이다. 신학, 수학, 문학, 수사학, 성경 언어 등등, 힘든 강의와 연구로 보낸 긴 한 주였다. 게다가 당신은 최근 이스트 런던 가난한 지역에서 복음전도 사역을 시작했기에 저녁에는 거기서 주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더불어서 메트로폴리탄 태버내클 회원으로서 꼭 가야 할 모임뿐 아니라 제자훈련을 시켜야 할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일주일 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금요일 오후이다. 왜냐고? 아주 가까이에서 찰스 스펄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잔뜩 든 스펄전이 따뜻한 인사와 함께 교실에 들어올 때, 당신은 급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펄전, 우리 세기의 가장 유명한 설교자이다. 그에 비해 당신은 단지 평범한 목사일 뿐이다. 간단한 기도와 서론이 끝난 후, 스펄전은 작업에 돌입한다.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미래의 목회자가 꼭 알아야 한다고 그가 꼽은 책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출판물, 고전 작품, 성경 주석, 신학, 철학, 찬송가, 과학 및 기타 모든 장르의 작품이다. 투자할 가치가 있는 책은 스펄전의 칭찬이 따르지만, 의심스러운 책에는 적절한 경고 딱지가 붙는다. 당신은 항상 이 시간을 즐겼고 주의 깊게 메모했다. 스펄전의 추천을 통해 당신은 자신만의 작은 신학 도서관을 만들었고, 스펄전 덕분에 가장 사랑하는 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이라이트 시간이 되었다. 선배 목사로서 스펄전은 설교, 설교 준비, 개인 경건, 비판에 대처하기, 공적 기도 등등, 기독교 사역의 일부 측면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강의했다. 그렇다고 건조하고 학문적인 강의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하나같이 자기 경험에서 길어 올린 따뜻하고 개인적이며 종종 배꼽을 잡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목회자의 사역에 적용할 성경 지혜와 진리에 기반을 둔 교훈으로 가득하다. 머지않아 당신은 힘든 목회 사역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 강의의 기억은 앞으로 오랫동안 당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바로 이 ‘목회자 대학’의 스펄전의 강의에서 기독교 고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Lectures to My Students)가 탄생했다. 귀한 카운셀링이 책은 네 개의 시리즈로 (또는 네 권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가장 유명한 목회자의 삶 전반에 관한 강의를 포함한 열네 개의 강의이다. “목사의 자기 감시” “목사의 개인기도” “목사의 탈진”이 포함되었다. 이 중 몇 개는 스펄전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설교를 다룬다. 본문 선택에서부터 설교 음성의 중요성, 그리고 잘못된 본문의 영성화라는 위험에 이르기까지, 이 설교의 왕이 전하는 모든 실천적 지혜가 담겨 있다.두 번째 시리즈에는 목회의 성장, 회심 설교, 성령에 대한 의존과 같은 다양한 사역 관련 주제에 대한 열 개의 강의가 담겨 있다. 원래 ‘예화의 기술’로 알려진 세 번째 시리즈에 담긴 내용은 주로 설교와 가르침에 초점을 맞춘 일곱 개의 강의이다. 여기에서 스펄전은 예화와 예증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친다. 단지 예화의 사용 방법뿐 아니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까지 제공한다. 주해 및 주석으로도 알려진 네 번째, 마지막 시리즈에는 두 개의 강의가 담겨 있는데, 하나는 “본문 해설(공동 성경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주석 사용에 관해서이다. 나머지 내용은 주석 카탈로그이다. 놀랍게도 스펄전은 무려 1,429개 항목에 대해서 간략하고 통찰력 있는 주석을 제공하는데, 그건 무려 거의 4세기에 걸친 기독교 학문을 아우르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 66권 모든 책을 다 포함한다. 이것은 스펄전 시대에 놀라운 성취였으며 오늘날 설교자들에게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네 권 모두 다 읽을 가치가 있다. (최근에는 주석 카달로그가 별도의 책으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하라.) 나는 스펄전의 글쓰기 스타일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잘 소통된다는 걸 발견했다. 따라서 현대 영어로 수정되지 않은 (수정되었다고 해도 최소한으로 된) 원본 읽기를 추천한다. 돈이 모자라거나 전자책을 선호하는 사람을 위해 전자책과 PDF 스캔본도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 내년에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Spurgeon Library가 Spurgeon.org를 통해 스펄전 사본을 스캔하여 공개하길 바란다. 왜 목사나 교회 지도자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힘들게 얻은 지혜첫째, 이 강의는 사역의 어려움을 포함한 스펄전의 목회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당신이 목회자이고, 목회 중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기절 발작” 또는 영적 침체를 아직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고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다. 현재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라면, 스펄전은 당신이 그 길을 헤쳐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목회적 멘토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라면 누구나 “눈을 감고 귀를 닫으라” 부분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무려 오천 명이 넘는 교회의 목사로서 스펄전은 각종 험담, 비판, 갈등 및 기타 목회의 어려움을 현명하게 걸러내고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했다. 이 책에 담긴 지혜는 목회 생존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스펄전의 성공을 찬양하는 건 쉽다. 그러나 그의 목회가 승리의 연속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스펄전은 목회자라면 모두가 직면하는 재정 문제, 건강 문제, 영적 피로, 비판 및 기타 모든 종류의 시련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에는 모든 시련 속에서도 신실함을 잃지 않은 한 사람의 현명한 조언이 담겨 있다.목회자를 위한 도움둘째, 이 책은 설교에 대한 스펄전의 최고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설교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설교 자체에 대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제시한다. 스펄전 목회 철학의 핵심은 말씀 전파였다.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의 구원과 교회의 연합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종종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다. “교회 강단은 기독교 왕국의 뜨거운 전투장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싸움은 지거나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이다.” 당신이 설교에 지치고 사역에 낙담하기 시작한 목회자라면, 이 책은 설교 사역의 중요성을 새롭게 보고 각성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격려를 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설교에서 성장할까?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설교자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 책에서 스펄전은 설교의 역학을 파고들어 모든 종류의 실용적인 지혜를 제공한다. 당신 경우에 설교자의 자세와 몸짓의 역할에 대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게 언제인가? 예화를 활용해 설교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설교문 작성 과정을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 스펄전은 이 모든 주제, 아니 그 이상을 다룬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에게는 설교 성장을 도울 멘토가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설교의 왕자 앞에서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되는 특권을 누린다. 영광의 소명마지막으로, 스펄전은 목회 사역의 영광스러운 부름을 상기시킨다. 이 책은 매력적이고 유머러스한 많은 사례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 목사로서 우리에게 내려진 막중한 소명을 진지하게 상기시킨다. 제1권의 첫 세 강의(목회자를 거룩함으로 부르심, 부르심에 대한 합당한 견해, 개인적 기도로 부르심)는 목회자라면 매년 반복해서 자기 성찰을 위한 거울로 삼을 내용이다. 많은 설교자가 허영심, 세속성, 유명세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에 스펄전은 냉정과 절제,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목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단지 목회자의 사생활을 넘어 스펄전은 장기적 신실함에 대한 비전도 제시한다. 목회적 진보, 간절함, 성령 의존에 대한 강의는 평생 신실한 목회를 위한 로드맵을 제공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 성장 지표와 소셜 미디어의 영향에 쉽게 빠진다. 스펄전은 당신에게 당부한다. 말씀을 전파하고, 열심히 사역하고,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을 유지하고, 무엇보다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이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스펄전은 모든 강의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목회 사역의 비전을 제시한다. 목회자에게도 멘토는 필요하다. 무려 삼십팔 년 동안 신실하게 교회를 섬긴 목사,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한 스펄전보다 더 좋은 멘토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당장 이 책을 손에 들라. 혼자 읽기보다는 다른 목회자 또는 교회 지도자와 함께 읽고 토론하라. 따뜻한 금요일 오후, 스펄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우리 함께 귀를 기울이자. 원제: Lectures to My Students: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출처: www.desiringgod.org번역: 무제
스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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