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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보름스 저항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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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Ivan Mesa  /  작성일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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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stock

만약 성경의 증거함과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둘은 오류를 범하여 왔고 또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왔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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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이 시작된 순간으로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박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러나 아마도 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거의 4년 후 1521년 4월 18일에 루터가 보름스 회의에 섰을 때였다. 자신의 글들을 철회하도록 압력을 받자, 루터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만약 성경의 증거함과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 둘은 오류를 범하여 왔고 또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왔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의심스러운 것이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만약 양심에 어긋나게 한다면 구원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 아멘.”


이 중대한 사건의 500주년을 맞이하여, 마이클 헤이킨(Michael Haykin), 헤르만 셀더휘이스(Herman Selderhuis), 칼 트루먼(Carl Trueman) 등 종교개혁 학자 세 명에게 루터의 저항이 중요한 이유와 오늘날 교회에 남긴 유산에 대해 500 단어 정도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직 성령


1521년 4월 18일 마틴 루터는 아마도 그의 생애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을 경험했다. 그는 스페인 출신 신성로마황제 찰스 5세 앞에 출석할 것을 요구받았는데, 그 회의는 보름스(Worms)에서 소집하도록 되었고, 그곳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약 40 마일 남쪽, 라인 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었다.


보름스에서 루터가 불타는 죽음에 직면하는 것과 같이 용감하게 저항한 사건은 개신교도라고 불리게 된 자들이 로마와 결별하는 것을 확실하게 하였다. 또한 그것은 루터파, 개혁파, 성공회, 그리고 심지어 재세례파 등 그의 행렬을 따르는 운동이 결정적으로 성경적인 운동이 되도록 했고 말씀의 영성이 경건을 형성하도록 했다.


종교개혁자들이 그 시대에는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루터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앞에서 성경을 그의 유일한 무기로 삼고 맞선 것은 먼훗날의 교회의 성격을 설정한 것이었고, 후에 교회는 군주들의 도움을 사방으로 내던지고 오직 성령만 의지하게 되었다.


마이클 헤이킨(Michael Haykin),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교회사 교수 


영웅도 책도 비상식도 절대적이지 않다 


위험한 일은 황제 앞에 선 루터를 영웅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철회 여부의 결정을 연기하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루터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가 거부한 것을 해야할 것이다. 루터는 ‘나는 교황이나 종교 회의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영웅도, 어떤 기독교 지도자도, 어떤 전통도, 루터와 칼빈이나 그 전에 있었거나 후에 나온 어떤 위대한 신학자를 전적으로 따를 수는 없다. 오직 성경뿐.


“저는 제가 인용한 성경 본문에 메여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지속적으로 울리는 메시지다. 그것은 종교개혁 때 보았듯이 교회 내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신학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고, 돈과 명성과 경력을 잃게 할 수 있으며, 생명까지도 잃게 할 수 있다.


루터가 단지 어떤 신성한 책에 메여있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보름스에서 그는 "성경의 증언"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어떤 책에 의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메여 있어야 한다. 루터는 보름스에서 성경을 단순히 어떤 책으로 생각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경고하지만, 또한 성경이 신성한 본문으로 된 비인격적 책이라는 신학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루터는 성경을 변호하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보름스에서 있었던 루터의 증언에 관련된 교훈이 또 있는데, 그때 그는 또한 분명한 이성적 논증에 의해 유죄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교회는 여러 지적이고 신학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도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믿음을 수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성적 논증이 가능한 견고한 신학이 필요하다. 루터는 보름스에서 우리에게 심도있는 신학 교육을 권장한다. 학문적으로 신학을 하고, 불신앙에 대해 이성적으로 토론할 수 있고 이단을 분별하고 공격할 수 있는 신학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함이다.


루터가 보름스에서 가장 확실하게 만든 핵심은 성경이 구원에 관한 것이며 종교 개혁도 구원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루터에게는 선택 사항이 없었다. 구원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에 철회할 수 없었다. 교회에서 많은 것을 토론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구원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보는가? 우리 설교의 목표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들의 구원하기 위함인가? 크리스천으로서 나의 관심이 나의 세속적 행복인가 아니면 영원한 행복인가?


루터가 보름스에서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한 사망에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성경의 증언"은 그리스도 밖에는 멸망이라고 증거한다. 루터는 보름스에서 그의 양심에 호소한다. 모든 이가 구원받을 필요가 있기에 이것이 계속해서 교회와 모든 신자의 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헤르만 셀더하위스(Herman Selderhuis), 네델란드 Theological University Apeldoorn 교회사 교수


개인주의는 영웅이 아니다 


95개 조항을 못 박은 사건과 같이, 보름스 회의는 오히려 더 정당화가 필요하지만, 개신교를 생각하는 게 불가피하게 한다. 긴박한 상황으로서 신성로마황제 앞에서의 재판은 분명히 대학에서 토론 대회 광고를 게시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만일 가장 눈에 띄는 한 순간을 꼽아본다면, 분명 (아마도 실제로 한 말 그대로는 아닌 것 같지만) 루터가 "여기 내가 서있습니다"라고 말한 순간일 것이다. 그 숙명적인 날의 결론에 의해, 여러 제국의 당파들 간의 우호적인 타협 때문에, 루터의 문제가 사라지거나 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루터의 질문에 대해 작센(Saxony)의 선제후와 카를(Charles) 5세 사이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것은 교회의 주장에 대해 개인이 양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상징하게 되었다. 루터는 자신의 발언에서 그를 반대하는 이들이 그에 대한 비평을 정당하게 하게 하도록 요구했다. 교회가 주장하는 ‘진리’가 성경의 가르침과 이성에 의해 보증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 그 이성은 물론 후대의 독립적인 이성이 아니라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으로 대표되는 이성을 말한다.


여기에 위험이 있다. 개인주의가 왕노릇하고 개인의 양심이 일반적으로 개인의 기호와 동일시되는 세상에서 자라난 우리에게, 루터가 보름스에서 맞선 것이 자신을 진리의 용사로서 나타내기를 원하는 어떤 문제아를 지지하게 만드는 (안도하게 하는) 역사적 유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사람들은 이러한 과거의 정신을 불러 일으켜 그들의 권위와 지혜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영웅처럼 치장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보름스의 배경은 실제로 ‘성경의 사람’이나 부패한 기득권을 깨부신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신학적 교육과 성경 원어와 과거 위대한 사상가들의 신학적 기록들에 흠뻑 젖어있고, 말씀과 성례로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일상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또한 그는 진리에 붙들린 사람이다. 루터의 맞섬은 경력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고, 자신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반응이었고, 그가 아는 모든 것을 제공한 것이었다.  자신이 처하기를 원치 않았을 상황 속에서 말이다.


여기에 교훈이 하나 있다. 특별히 사려 깊은 학습과 열렬한 성직자 정신, 또는 보름스 회의에 있었던 것과 같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대가나 위험 중 어느 것도 감당하지 않고 루터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모두가 말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보름스에서 학식 있고 헌신적인 성직자와 목사였던 루터의 말은 들려져야 할 권리가 있었다. 그의 정신을 소환하여 자기 자신의 격분을 거룩한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말이다.


칼 트루먼(Carl Trueman), 펜실베니아 Grove City College 종교학 교수




원제: Lessons from Luther’s Stand at Worms: 500 Years Ago Toda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강경원


내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의심스러운 것이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만약 양심에 어긋나게 한다면 구원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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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Ivan Mesa

이반 메사는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학위(MDiv, ThM)를 취득하고, 현재 미국 TGC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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